이걸 죽여, 살려?…소나무 숲에 감춰진 ‘3가지 얼굴’

2023.05.05 11:08 입력 2023.05.05 17:16 수정

경북 경주의 소나무 숲. 산림청 제공

경북 경주의 소나무 숲. 산림청 제공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지만 산불에 치명적이고 재선충병 방제에 많은 돈이 드는 나무는 무엇일까. 바로 소나무다. 소나무는 이처럼 3가지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5일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산림 중 소나무 숲은 25%를 차지한다. 수종 별로 보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산림과학원 분석 결과 전체 소나무 숲 중에서 94%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천연림이고, 나머지 6%만 사람이 조성한 인공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소나무 숲은 대부분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소나무가 우리나라의 산림 환경에 적응해 세력을 확산해 나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소나무의 강한 생존력은 최근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산림과학원이 강릉·고성·동해·삼척 등 과거에 산불이 난 지역에 조림된 수종의 1년 후 생존율을 조사한 결과, 소나무는 평균 8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활엽수의 1년 후 생존률 53%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이는 산불 피해지와 같은 척박한 토양에서 소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산림과학원은 밝혔다.

한국인은 소나무를 ‘으뜸 나무’로 여겨
그러나 소나무가 대형산불

소나무는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오죽하면 <애국가>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는 구절도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2022년 일반인 1200명 등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나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나무는 37.9%의 지지를 얻어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2위는 단풍나무(16.8%), 3위는 벚나무(16.2%), 4위는 느티나무(4.4%)였다.

배재수 국립산림과학원장은 한국인들이 소나무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소나무에서 느낄 수 있는 ‘선비의 절개’에서 찾았다. 그는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살아가는데 (우리 민족이) 이 모습을 선비의 절개와 같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소나무를 으뜸 나무(百木之長)로 생각했던 과거의 인식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조선 후기에 가정용 온돌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집 주변 숲에 있는 나무의 가지와 잎을 땔감으로 많이 사용해 왔는데, 건조한 땅에 잘 자라는 소나무 숲이 주변에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친숙한 이미지가 형성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서울 남산의 소나무 숲. 산림청 제공

서울 남산의 소나무 숲. 산림청 제공

하지만 요즘은 소나무와 소나무 숲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나무 숲이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불에 잘 타는 송진을 가득 머금고 있다. 일단 불이 붙으면 나무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고, 불을 계속 확산시킨다.

최근 발생한 산불을 보면, 소나무 숲이 산불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지난달 11일 발생한 강원 강릉 산불 당시 강풍을 탄 불이 소나무 숲을 잇달아 태우면서 민가·펜션 등에 큰 피해를 냈다. 산림 당국과 소방 당국은 당시 소나무 숲이 많아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나무에 대한 또다른 부정적 이미지는 재선충병 때문에 만들어졌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붉게 시들어 말라 죽는다. 그래서 ‘소나무의 구제역’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확산하고 있다. 이 병은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의 성충이 매개한다.

정부는 매년 재선충병 방제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2022년 한 해에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투입한 예산은 560억원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는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까지 제기한다.

지난달 11일 산불이 강릉의 소나무 숲을 태우고 있다. 산림청 제공

지난달 11일 산불이 강릉의 소나무 숲을 태우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불 후 산주, 송이 등 이유로 소나무 원해
당국, 향후 소나무 비율 줄이기로

소나무가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고, 재선충병으로 예산을 축내는 상황에서 소나무를 또 심을 필요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심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산불이 난 곳을 복원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조성한 숲에서 소나무 비율은 36%로 가장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산주(산림 소유주)가 소나무를 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2000년 동해안에서 대형 산불이 난 후 실시한 조사에서 산림 소유자의 84.6%는 송이 생산 등을 이유로 소나무를 심기를 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도 산주들이 소나무 식재를 원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산림청 등 산림당국은 산불 피해지에 대한 복원 작업을 진행하면서 산주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선 당국은 산불 피해지 산림 복원은 인공적인 조림에 의한 복원과 자연적인 복원 등 2가지 방법을 동시에 동원하고 있다. 2022년 발생한 울진 산불피해지의 복원은 조림복원(49%)과 자연복원(51%) 등 2가지 방법을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수종의 경우 대형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의 비율을 줄이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산불 피해지에 심은 나무 수종은 과학적인 근거와 산주 등의 의견을 반영해 활엽수 51%, 침엽수 49%로 결정했다. 대형 산불 확산 요인으로 꼽히는 소나무의 비율은 36% 수준이다.

배 원장은 “앞으로 산불 피해지에 대해 장기간의 모니터링을 하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산불에 강하면서 사회·경제·환경적으로 가치가 있는 쪽으로 산림을 복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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