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버스’ 확대 일주일···버스 기사들 “편하지만 노년층 걱정 돼”

2023.03.08 16:07 입력 2023.03.08 16:44 수정

사고 위험·유지비용 줄이려 시행

“현금 승차자 부담 가중은 문제”

8일 서울 은평구의 한 버스 차고지에 ‘현금 없는 버스’ 홍보물이 걸린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김송이 기자

8일 서울 은평구의 한 버스 차고지에 ‘현금 없는 버스’ 홍보물이 걸린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김송이 기자

“처음엔 너무 허전했지” 8일 서울 은평구의 한 버스 종점에서 만난 버스 운전기사 김창석씨(54)는 지난 1일 처음으로 ‘돈통’ 없이 버스에 올랐다. 차고지에서 버스에 오를 때면 늘 손에 스테인레스로 된 현금요금함이 있었는데, 배차표만 들고 타자니 뭔가 빼먹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허전함도 잠시, 김씨는 금방 적응했다. “돈통 안 들고 타니까 아주 편하데.”

서울시가 ‘현금 없는 버스’ 운영을 확대한 지 일주일이 됐다. 시는 2021년부터 사고 위험과 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현금통을 없앤 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해왔다. 확대 운영으로 서울시 버스 4대 중 1대 꼴(108개 노선, 1876대)로 현금요금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금 없는 버스에선 교통카드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만 요금을 낼 수 있다. 카드나 카드 잔액이 없다면 버스 회사 계좌번호가 찍힌 안내서를 받아 계좌이체를 하면 된다.

시행 일주일째인 이날 차고지에서 만난 기사들은 창문 맡에 초록색 파일철과 안내서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현금 탑승객은 하루에 1~2명쯤이라고 한다. 서울 관악구에서 만난 버스기사 신재남씨는 “현금을 내려는 사람이 2일, 4일, 7일에 한 명씩 있었다”고 했다. 버스운수업 관계자 A씨는 “지난달 말까지 현금 승객이 하루 500명 정도였다면, 홍보·시행한 지 일주일 만에 100명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8일 한 서울시 버스에 붙어 있는 ‘현금 없는 버스 시범운영 안내’ 공지. 버스 내 현금함이 사라진 상태다. 전지현 기자

8일 한 서울시 버스에 붙어 있는 ‘현금 없는 버스 시범운영 안내’ 공지. 버스 내 현금함이 사라진 상태다. 전지현 기자

기사들은 “현금요금함이 사실 골칫덩이”라며 “운전하는 입장에선 편해졌다”고 했다. 8년차 기사 이모씨(60)는 “현금 가지고 싸우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5000원권·1만원권을 넣으면 100원 단위까지 거스름돈을 내줘야했고, 동전으로 내면 1300원(서울시 일반 현금 요금)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24년간 버스를 몰아온 김풍림씨는 “현금 오차가 생기는 일도 많았다”며 “(현금요금함이 없어졌으니) 돈을 거슬러주다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버스 운행을 시작하고 끝낼 때 사무실을 오가며 돈통을 옮길 필요가 없어진 것도 반가운 일이다. 11년차 기사 박부흥씨(58)는 “동전 지급기도 함께 있으니 동전이 꽉 차있으면 돈통 무게가 10㎏ 가까이 됐다”고 했다.

서울시 현금 없는 버스에 현금고객용으로 비치된 요금 납부 안내서. 운수회사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전지현 기자

서울시 현금 없는 버스에 현금고객용으로 비치된 요금 납부 안내서. 운수회사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전지현 기자

불편을 겪는 손님이 생길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기사들은 교통카드나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현금만 들고 다니는 노년층이 가장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20년차 버스 기사 김영호씨(66)는 “한 할머니가 계좌이체를 할 줄 모르셔서 나보고 해달라셨는데, 운전 중이니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할머니 승객은 뒤에 서있던 학생의 도움을 받아 이체를 했다고 한다.

다수 시민의 편리함에 가려져 약자들의 불편이 드러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은 “(현금 승객들이) 승차를 못했다고 항의하기보단 ‘내가 준비를 못한 것’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중교통이라는 공공서비스는 누구나 차별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금 승차자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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