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이 달라졌다. ‘핫’해진 독도 바다에 무슨 일이

2021.08.21 10:33 입력 2021.08.21 13:43 수정

잠수사들이 탐구 23호에서 내린 뒤 고무보트를 타고 독도로 이동하고 있다.  김원진 기자

잠수사들이 탐구 23호에서 내린 뒤 고무보트를 타고 독도로 이동하고 있다. 김원진 기자

낯선 표범 무늬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뜻 암초에 묻혀 지내는 돌돔처럼 보였다. 공기통을 지고 다가가 보니 강담돔이었다. 길이만 40㎝, 고급 횟감으로도 알려진 강담돔이 화면에 담겼다. “원래는 동해 남부나 제주도에서 주로 보이는 물고기인데….” 지난 8월 8일 독도 인근 10m 수심에도 나타났다. “요즘 물이 따뜻해져 (독도까지) 올라왔을 수도 있어요.” 영상을 찍은 김정수 한국연안환경생태연구소 연구지원팀장이 말했다. “독도 연안에서 강담돔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독도 연안 잠수조사만 20번 넘게 했다.

“어, 황놀래기, 황놀래기.” 송영선 국립수산과학원 독도수산연구센터(이하 독도센터) 연구사가 얼굴을 모니터에 바짝 댔다. 잠수사들이 독도 인근 수심 10m 부근을 찍은 장면이 보였다. “저건 개볼락인데요.” 송영선 연구사는 먹장어(꼼장어)로 박사학위를 딴 ‘장어 박사’면서 어종 분류 전문가다. “저거는 세로줄무늬가 보이잖아요. 용치놀래기고요. 어, 저건 쏨뱅이요. 계속 지나가는 건 자리돔이에요.” 아열대어종인 자리돔은 최근 독도 인근 바다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독도는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아 기후변화 연구에 가장 좋은 지표가 될 수 있는 섬”(윤석진 독도센터 연구사)이다. 관광객이 매해 20만명 안팎으로 방문하지만, 동도 선착장에 20~30분 머물거나, 파도가 거칠 때는 입도가 어려워 배에서 독도를 구경하는 게 전부다. 어업활동의 규모도 크지 않다. 전복, 소라, 해삼 채취와 대게나 오징어잡이 정도만 이뤄진다.

지난 8월 6일 시작한 독도센터의 ‘독도·울릉도 주변해역 수산자원 조사’ 7박8일 일정에 동행했다. 독도센터는 매해 2·5·8·11월 독도해역으로 정기조사를 나간다. 이번이 63번째 조사였다.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명시한 ‘독도 기본계획’에 근거해 이뤄진다. 독도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인근·연안·근해로 나눈 뒤 수심별로 서식하는 어종이나 동물플랑크톤, 난자치어 등을 조사한다.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김용준 탐구 23호 선장) 독도조사 여정은 이번에도 순탄치 않았지만, 뜨거워진 독도 바다 생태계는 가늠할 수 있었다.

수사자원 조사선 탐구 23호. 김원진 기자

수사자원 조사선 탐구 23호. 김원진 기자

쉽지 않은 조사

지난 8월 4일 오후, 탐구 23호가 경남 사천 삼천포신항에 정박했다. 탐구 23호는 한국에 4대뿐인 대규모 수산자원 어획시험이 가능한 조사선이다. 가장 최근 진수된 ‘신형’ 배로 1679t 크기다. 조사선에선 해양생태계나 해양환경 조사가 이뤄진다.

탐구 23호는 다음날 오전 11시쯤, 거제도를 빠져나간 뒤 부산을 지나 독도로 갈 예정이었다. 평균 13노트(시속 24㎞)로 20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탑승 예정자 중 코로나19 검사 통보를 받은 직원이 나오면서 출항 12시간 전 일정이 연기됐다. 다음날인 8월 6일 오후 3시에야 독도로 떠날 수 있었다. 배가 출항하자 이번에는 9호 태풍이 북상했다. 연구진과 선장은 조사일정을 단축하기로 했다. “일주일짜리 조사를 이틀 만에 하는 건 또 처음이네요.” 윤석진 연구사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출항 다음날인 8월 7일 정오 무렵, 탐구 23호에서 독도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도는 약 460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난 암초로, 동도와 서도로 나뉜다. 약 200만년이 더 흐른 뒤에야 해수면 위로 올라와 섬이 됐다. 현재 서도에는 경북 울릉군청 공무원과 소방대원이 상주하고 동도는 독도경비대가 지킨다. 바닷물이 유독 깊은 수심 때문인지 파랗다.

연구진은 독도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조사를 시작했다. 잠자리채처럼 생긴 대형그물인 봉고네트 2개와 수통 모양의 수온염분측정기를 바다에 내렸다. 130m 길이 트롤을 수심 100~200m까지 내릴 때에는 선원 20여명과 연구진이 전부 그물을 붙잡았다. 연구원들은 트롤에 잡혀 올라온 도루묵 16마리와 오징어 1마리의 길이를 하나하나 쟀다.

독도센터 연구원들이 봉고네트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왼쪽).  독도연구센터 연구원이 수온염분측정기 (CTD)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원진 기자

독도센터 연구원들이 봉고네트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왼쪽). 독도연구센터 연구원이 수온염분측정기 (CTD)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원진 기자

첫날 조사는 모크네스(다중 플랑크톤 채집기) 작업이 늦게까지 이어져 밤 9시 넘어 끝났다. 모크네스는 그물이 층별로 나뉘어 있어 수심대마다 동물플랑크톤과 어란, 자치어 분포를 살펴볼 수 있는 그물이다. 원래 밤 작업은 어선이 설치한 어망·어구와 엉킬 수 있어 위험하다. 김용준 선장은 “밤에는 어선들이 설치해놓은 어망·어구가 잘 안 보인다”라고 했다. 조사장비와 엉켜 손상된 어구를 물어준 적도 있다.

늘어나는 아열대어종

독도에 닿은 이튿날 아침, 잠수사들을 따라갔다. 이들은 서도에 먼저 짐을 풀었다. 서도에는 산란을 위해 날아왔거나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괭이갈매기들이 자리 잡고 산다. 괭이갈매기는 연구원들의 독도 조사를 종종 방해한다. 연구진은 참홍어에 카메라와 센서를 설치해 생태계를 살펴보는 ‘바이오 로깅’ 조사를 하는데, “괭이갈매기가 날아와 참홍어를 낚아채려고 해 장비를 잃어버릴 뻔하거나 케이블을 물어간 일”(안재영 연구원)도 겪었다.

옷을 갈아입은 잠수사들은 동도 선착장 뒤편으로 향했다. 이날 수온은 29도. 손, 발을 담가보니 물이 미지근했다. 잠수사들은 독도 조사가 ‘작업’이면서 특별한 기회라고 했다. “연구 목적이 있어야 허가가 나와 오기 어려운 곳”(김정수 팀장·잠수사)이고, “시야가 좋아 독도만큼 작업환경이 좋은 해역이 드물기”(박수원 잠수사) 때문이다. 두 잠수사 모두 독도 인근 잠수조사 횟수만 10번이 넘었다.

독도연구센터 연구원이 그물에 걸린 난자치어 등을 모아 이동하고 있다(왼쪽). 독도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수 등은 통에 담아둔다. 김원진 기자

독도연구센터 연구원이 그물에 걸린 난자치어 등을 모아 이동하고 있다(왼쪽). 독도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수 등은 통에 담아둔다. 김원진 기자

김정수 팀장은 랜턴을 머리에 매고 수중동굴로 들어갔다. “빛이 안 들어오니까 동도 쪽 동굴에는 해조류는 없고요.” 동굴을 나와 수심 5~10m를 돌아다녀 보니 “해조류는 대황(미역과 해조류), 물고기는 자리돔이 가장 많이” 보였다. 자리돔은 독도 인근 해역의 기후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어종이다. 아열대어종으로 최근 독도 인근에서 가장 많이 출현한다. 자리돔은 2013년 독도 인근에서 557마리 발견됐다. 2018년 7631마리, 2020년 6745마리까지 출현 개체수가 10배 넘게 늘었다.

흔히 한일관계에서 독도를 접하지만, 독도는 기후변화에 따른 어종변화가 일어나는 장소다. 산업혁명 이후 온실효과로 바다가 흡수한 에너지양이 “지난 150년간(1871년부터) 매초 1.5개의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터진 만큼”(영국 옥스퍼드대 로르 잔나 교수)이라는 분석을, 독도 인근 연안도 비껴가진 못했다. 독도 인근에는 아열대어종인 용치놀래기(2013년 167마리→2020년 773마리)가 증가했고, 열대에서 서식하는 파랑돔도 유입됐다. 윤석진 연구사는 “현재 독도 인근에 많이 출현하고 있는 어종은 과거에 비해 서식 수온범위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잠수조사 전 잠수사들이 독도 서도에 모여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왼쪽). 독도 인근 해역 조사를 하기 전 잠수사들이 공기통을 서도 선착장에 꺼내뒀다. 김원진 기자

잠수조사 전 잠수사들이 독도 서도에 모여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왼쪽). 독도 인근 해역 조사를 하기 전 잠수사들이 공기통을 서도 선착장에 꺼내뒀다. 김원진 기자

“원래 방어나 이런 것들도 수백마리씩 돌아다니는데 요새는 잘 안 보이네요.” 박수원 잠수사가 말했다. 온대성 어종인 방어가 아열대성 어종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해양환경공단의 독도 갯녹음 제거작업에도 참여했다. “몇년 전만 해도 독도 바다 밑이 산으로 치면 그냥 민둥산이었어요.” 갯녹음은 석회 조류가 붙은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수온 상승이 갯녹음 발생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다 사막화로도 불린다. 늘어난 성게가 해조류를 먹어치울 때 갯녹음은 더 심해진다. “그래도 지난해에 보니 성게가 전보다 많이 줄었다”(박수원 잠수사)는 이야기처럼, 독도 인근 성게 밀도는 줄어드는 추세다. 해양환경공단에 따르면 성게 제거작업 전인 2014년 ㎡당 3.6개체에서 작업 후에는 절반(㎡당 1.9개체) 가까이 감소했다.

잠수사들은 이날 오전 동도 인근 2개 정점에서 조사를 마쳤다. 다시 서도로 이동해 라면과 소시지로 배를 채우고, 오후에는 서도 인근을 조사하려 했다. “아이고, 바람이 터져버렸네. 보세요. 지금은 새도 못 날아다니는데….” 이종택 경북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 주무관이 서도 앞에 치는 파도를 보고 말했다. 예상보다 일찍 비바람이 거세지면서 오후 잠수조사가 취소됐다.

잠수사들이 독도 연안의 얕은 바다(5~10m)를 훑는다면, 수심 10~100m에서의 변화는 어획조사로 확인한다. 이날 새벽 연구진들은 첫날 저녁에 했던 조사를 반복했다. 최근 수년간 독도 바다에서 참홍어의 감소가 정기조사에서 확인됐다. 참홍어는 독도 연안에서 2006년과 2007년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2년 이후에는 독도 연안에 나타나는 개체수 중 상위 1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참홍어는 차가운 물에 사는 한류성 어종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동해 수온 증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독도 동도에 있는 ‘독도이사부길’ 표지판, 독도 서도에 있는 ‘독도안용복길’ 표지판, 독도 동도에 있는 ‘독도’ 표지석. 김원진 기자

왼쪽부터 독도 동도에 있는 ‘독도이사부길’ 표지판, 독도 서도에 있는 ‘독도안용복길’ 표지판, 독도 동도에 있는 ‘독도’ 표지석. 김원진 기자

독도조사의 또 다른 이유

8월 8일 오후 6시, 독도조사가 하루 반나절 만에 끝났다. 예정된 독도조사 기간은 닷새였다. 올라오는 9호 태풍 때문에 속초항으로 피항이 결정됐다. 기상상황을 보니 최소 3일은 속초항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이번 조사 때는 순시선이 안 따라붙었네요.” 김용준 선장이 말했다. 한참 진행 중이던 도쿄올림픽 때문이었을까. 해경 자료를 보면 일본 순시선은 독도영해선 외곽을 3~4일 간격으로 순찰한다. 해경이 순시선의 출현을 확인한 횟수가 2017년 80회에서 2019년 100회로 늘었다.

순시선의 수산자원 조사 방해 활동도 2017년 3건에서 2019년에는 16건으로 증가했다. 순시선이 무전으로 조사선에 조사 중단을 요구하면, 조사선은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직접 대응은 해경이 한다. 문현규 탐구 23호 선박 직원은 “순시선이 육안으로 보일 때쯤 우리 해경에서도 붙어 조사선이랑 순시선이 500m 간격으로 나란히 움직여요”라고 말했다. 순시선에는 초단파(VHF) 무전기로 “‘23호, 나와달라’ 이렇게 한국말을 하는 선원이 타기도”(김용준 선장) 한다.

일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은 독도영유권 분쟁을 부각시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려 꾸준히 시도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분쟁은 없다”며 재판 회부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분쟁을 쟁점화해 재판이 이뤄질 때를 대비해 조사를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석진 연구사는 독도 해양생태계 조사의 중요성을 시파단섬 분쟁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영유권 분쟁 시 ‘실효적 지배’를 따져본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 시파단섬 분쟁 때 말레이시아의 ‘거북보존법령’이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말레이시아는 법령에 근거해 거북알 채취 규제를 했고, 이는 행정권 행사를 한 실효적 지배의 대표 증거였다. 독도 인근과 연안 해양조사 활동 또한 실효적 지배의 주요 근거다. 독도센터에서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고 조사활동을 이어나가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8월 12일 울릉도 조사로 63번째 독도 연안 정기조사가 끝났다. 아열대성어종은 증가하고 갯녹음이 짙어졌으며 한류성어종은 자취를 감춘다. 하나씩 떼어놓으면 소소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데이터가 말하는 방향은 하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이곳이 뜨거워지고 있다.” 극적이진 않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이것이 바다가 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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