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이렇게 사랑받는데...30년째 '불법'인 K타투

2021.06.05 07:38 입력 2021.06.06 08:33 수정

김도윤 타투이스트가 타투 시술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김도윤 타투이스트가 타투 시술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피고인 김도윤씨 나오세요”

지난 5월 28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의 법정. 타투이스트 김도윤 작가(41)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그의 혐의는 ‘무면허 의료행위’다. 앞서 약식재판으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지만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한국에서 타투는 왜 불법인가. 왜 타투이스트들은 전과자가 돼야 하는가. 지난 15년간 이런 의문에 속박당해온 그는 ‘타투가 불법’이라고 말하는 한국의 법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법정에서 검사는 말했다. “의료인 외에는 의료행위 할 수 없음에도 문신 시술을 함으로써… (중략) 판례를 볼 때 의료법 위반이 인정됩니다.”

한국에서 타투가 불법지대에 놓이게 된 것은 1992년부터다. 당시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인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이후 이 판례는 뒤집히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모든 타투이스트들의 타투 시술은 ‘불법’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정부·지자체로부터 타투이스트 자격증을 받으면 보건·위생 지침을 지키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타투를 보수적으로 바라보던 일본의 대법원마저 지난해 가을 ‘타투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놨다. 사실상 한국만이 ‘타투 불법국’으로 남았다.

법의 논리는 약 30년째 제자리지만, 최근 수년간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세계가 찾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김도윤씨는 브래드 피트, 릴리 콜린스, 스티브 연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인에게 타투를 새겨준 작가다. 김 작가뿐 아니다. 많은 한국 타투이스트가 해외 손님의 ‘러브콜’을 받는다. 이들은 ‘파인 타투(코리안 스타일)’로 불리는 장르까지 개척해냈다. 만약 타투가 합법이었다면, 지금쯤 ‘K타투’는 한국사회의 또 다른 상징이 됐을지도 모른다.

해외에선 ‘아티스트’, 국내에선 ‘범법자’. 좁히기 힘든 간극 속에서 예술노동을 이어가는 한국 타투이스트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김도윤 타투이스트의 작품들. 김도윤 타투이스트(작가명 ‘도이’) 인스타그램 캡처

김도윤 타투이스트의 작품들. 김도윤 타투이스트(작가명 ‘도이’) 인스타그램 캡처

■피부에 새긴 예술품

기도하는 듯 살포시 모은 두손, 알록달록한 반창고, 어릴 적 크레용으로 그렸을 법한 꽃나무, 어머니가 써준 ‘사랑하는 우리 ○○’. 타투 하면 조직폭력배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하지만 SNS에 ‘타투’를 검색해 본다면 금세 알게 될 것이다. 타투는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려는 이들의 ‘몸 안의 예술품’이 된 지 오래다. ‘타투는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작품활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결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한국 타투이스트들이다.

35세의 직장인 하나인씨(가명)의 갈비뼈 아래에는 어머니가 생일에 써준 ‘사랑하는 우리 나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어머니의 글씨를 그대로 따서 3년 전 시술을 받았다. 그는 김도윤 타투이스트의 블로그를 보고 이런 타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김 작가의 블로그엔 연필이나 붓펜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필기체의 ‘레터링 타투’가 여럿 있었다. ‘착하게 살자’ 유의 문자 타투만 생각해왔던 하씨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하씨의 몸에는 3개의 타투가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소설 <어린 왕자>의 문구를 새겼다. ‘내가 보고 싶을 때는 하늘의 별을 봐. 그 별들 중에서 내가 웃고 있을 거야’라는 대목이다. 좋아하는 그림을 자신만의 스케치로 재해석해 새긴 타투도 있다.

53세의 정인선씨도 최근 쇄골 밑에 ‘타지 않고 빛나리’라는 라틴어 글자를 새겼다. 글자 옆에는 알폰스무하 아르누보 문양을 배치했다. 정씨는 “원래 글을 쓰며 살아왔는데 슬럼프가 찾아와 글이 하나도 써지지 않았다”면서 “슬럼프라는 진흙탕 속에서 이대로 죽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새기고 싶었다”고 했다. 쇄골에 타투를 새긴 정씨를 두고 ‘주변 엄마들’은 쑥덕댔다. 고향의 지인은 ‘미쳤느냐’는 반응까지 보였다고 한다. 남들이 어떻게 떠들든 정씨에게 타투는 “만족감이라는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되는” 존재다. ‘타지 않고 빛나리’라는 타투는 스스로 세운 ‘삶의 이정표’다. “샤워할 때마다 거울을 보며 ‘내일도 잘해보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타투만 놓고 말하자면 하나인씨와 정인선씨는 ‘한국에 살아서’ 풍성한 타투 예술을 접하는 행운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타투는 ‘하드보일드’ 스타일 일색으로, 평범한 시민은 이질감을 느끼던 예술이었다. 일본 야쿠자들의 타투로 알려진 ‘이레즈미’, 고대 부족들의 주술적 문양이 주축인 ‘트라이벌’, 해골이나 칼 등 금기시되던 그림을 거침없이 그려내는 ‘올드스쿨’, 멕시코계 미국인 갱들로부터 시작된 ‘치카노’ 등 대표적인 예다.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수년 전부터 기존 스타일을 해체하거나 재해석하고 심지어 ‘파인 타투’라는 새 장르까지 만들었다. 섬세하고 정갈한 디자인과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해낸 복숭아, 고양이, 초승달, 꽃, 단청문양, 레터링 등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만의 타투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한국 타투이스트들의 이러한 작품세계는 점차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성소민 타투이스트(왼쪽), 김도윤 타투이스트(오른쪽).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김영민 기자viola@kyunghyang.com

성소민 타투이스트(왼쪽), 김도윤 타투이스트(오른쪽).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김영민 기자viola@kyunghyang.com

■한국이 개척한 장르 ‘파인 타투’

“혹시 미국에서 작업할 계획 없으신가요?”, “올여름에 한국에 가요. 작가님께 타투받을 수 있습니까.”

해외의 ‘타투 애호가’들이 한국의 타투신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타투이스트들이 인스타그램에 작품을 공유하면서부터 해외 손님들의 영문 쪽지 문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즈음부터 홍콩, 싱가포르 등 동양권은 물론 서구의 타투숍에서도 ‘코리안 스타일’ 타투 문의가 많아졌다. 타투 때문에 ‘한국 여행’을 오는 손님도 생겨났다. 다만 2017년부터는 김도윤 작가의 제안으로 ‘코리안 스타일’ 대신 ‘파인 타투’라는 장르로 불리고 있다. 뉴욕, 파리, 홍콩 등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 어디를 가도 ‘파인 타투’를 내건 타투숍을 찾을 수 있다.

‘꽃 타투’ 전문인 성소민 작가(29)도 ‘파인 타투’ 장르의 세계적인 타투이스트 중 한명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해외에서 온 고객이 전체의 70%였을 정도다. 2016년엔 해외 타투숍의 초청을 받아 미국, 영국, 스웨덴, 독일에서도 작업했다. 미국의 경우 시간당 1000~1500달러(약 111만~167만원)를 받았다.

성 작가의 타투는 ‘피부에 스며든 고혹미’가 특징이다. “오래된 책자의 꽃을 보는 것처럼 클래식하고 오리지널한 느낌”을 추구하는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는 꽃의 잎맥부터 보기 시작한다”고 했다. 꽃잎의 세세한 주름과 여리고 얇은 질감, 촘촘히 퍼져나가는 잎맥이 그가 새긴 타투 속에서 재현된다. 파랑과 보라 혹은 빨강과 주황 사이 ‘어딘가’에 머무른 색감과 다채로운 농담도 그의 타투를 오래도록 뜯어보게 만든다.

성소민 타투이스트의 작품. 성소민 타투이스트(작가명 ‘플라워’) 인스타드램 캡처

성소민 타투이스트의 작품. 성소민 타투이스트(작가명 ‘플라워’) 인스타드램 캡처

그는 각자의 피부색, 몸의 굴곡, 피부결을 고려하면서 그림이 어떻게 ‘스며들지’를 늘 고민한다고 했다. 타투의 위치를 고민하는 ‘레이어링’도 특별히 신경쓰는 대목이다. 얇고 가는 팔목에 “무거운” 타투는 해주지 않는다.

타투는 작가가 피부에 그리는 ‘회화’지만, 이와 동시에 ‘이용자 참여 예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혹은 이별, 누군가의 탄생, 새로운 결심 등을 새기고자 타투이스트를 찾는다. 그들이 예술품으로 간직하고 싶어하는 감정과 이미지는 타투이스트들을 자극하는 또 다른 영감이 된다.

때로는 독특한 방식을 제안해 자극을 주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김도윤 작가의 경우 배우 정려원씨가 그런 ‘단골 손님’이다. 회화 작업을 오랫동안 해온 ‘화가’ 정려원을 통해 그는 “레터링 타투가 꼭 프린트한 것처럼 완벽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도윤 타투이스트의 작품들. 삐뚤빼뚤 붙인 듯한 스티커 질감, 크레용의 질감을 표현해 냈다. 김도윤 타투이스트(작가명 ‘도이’) 인스타그램 캡처

김도윤 타투이스트의 작품들. 삐뚤빼뚤 붙인 듯한 스티커 질감, 크레용의 질감을 표현해 냈다. 김도윤 타투이스트(작가명 ‘도이’) 인스타그램 캡처

■아티스트와 범법자 사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예술세계를 구축했건만,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은 범법지대에서 일한다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신고하겠다’면서 금전을 요구하는 손님들 앞에서 이들은 자신의 노동이 ‘불법’임을 체감한다.

3년차 타투이스트 김태호씨(가명)는 보건소의 ‘불시검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예고 없이 작업실을 찾아온 보건소 직원은 “의료인 면허가 없는데 의료시술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했다. 알고보니 타투가 번졌다며 비용을 요구했던 손님 A씨가 신고한 것이었다. 김씨는 손님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실랑이 하는 게 힘들어서” A씨가 제시한 600만원을 건넨 터였다. 그러자 A씨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200만원을 더 달라고 했다. 그는 이 요구는 거절했다. 보건소 직원이 찾아온 시점은 김씨가 거절 의사를 밝힌 다음날이었다.

한달 후 김씨는 벌금 50만원을 물게 됐다.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타투이스트들은 주로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김씨를 괴롭힌 건 벌금의 액수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든 몇번이고 신고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압도됐다. “손님 기분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동료들의 조언으로 김씨는 A씨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썼다. 이후 A씨의 감정이 누그러들었다고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고객의 선의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의 경우 성희롱과 성추행에도 노출돼 있다. 타투 시술 중 ‘제 손이 그쪽 가슴에 닿았어요’와 같은 말을 하거나, SNS로 성기 사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만약 성추행을 겪은 타투이스트가 신고를 한다면 그는 ‘불법 타투’의 사안으로도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한 여성 작가는 “‘너네는 내가 신고하면 끝이야’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하니까 타투이스트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소민 작가의 타투를 한 남성 모델의 사진. 작품 전시용으로 제작됐다.   성소민 작가 제공

성소민 작가의 타투를 한 남성 모델의 사진. 작품 전시용으로 제작됐다. 성소민 작가 제공

■“안 무너질 줄 알았는데…”

타투이스트란 직업 때문에 삶의 계획이 흔들리는 이들도 있다. 2016년부터 타투이스트로 일해온 이한선씨(가명)는 지난해 손님 B씨로부터 “시술한 부위에 문제가 생겼으니 치료비 2000만원을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씨는 “병원에 함께 가서 시술 내용을 설명 하고 병원비를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가 손님에게 받은 시술비는 10만원이었다.

A씨의 고발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올해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형 500만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영리를 취했다(타투 시술 비용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보건범죄 단속 특별조치법’을 적용받은 탓이다. 대개 타투는 현금으로 거래되지만 A씨로부터는 계좌로 돈을 받았다가 문제가 커졌다.

캐나다인과 결혼해, 이민을 준비 하고 있던 그는 당장 모든 계획을 허물게 됐다. 집행유예 기간(3년)이 끝난 후로부터 5년이 지나야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으니, 장장 8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영주권 없이는 캐나다에서 타투이스트로 활동할 수 없다. 그의 캐나다인 남편은 한국에서 타투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혹시 마약을 했거나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꾸릴 신혼의 꿈도 위태롭다. ‘전과’ 탓에 관광비자로 한해 6개월씩만 캐나다에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이다.

수십번의 신고를 겪고 활동을 접는 작가들도 있다. 5년간 타투이스트로 일해 온 나다현(가명) 작가의 경우 지난 겨울 경찰이 스무차례 넘게 작업실에 찾아왔다. 석달간 일주일에 2~3번은 경찰이 들이닥친 셈이다. 그는 “경찰이 열번째쯤 왔을 때 더이상 작업실을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경찰조차 “혹시 원한을 산 사람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나는 안 무너질 줄 알았다”던 그는 언제든 공권력의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의 위력을 절절히 느끼고 있다.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타투 작업을 하면서도 문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씨는 곧 타투를 그만둘 계획이다. “똑같은 주제, 똑같은 재료로 그림을 그려 평가받는 교육에 질려” 미대를 중퇴했던 그에게 타투는 ‘인생의 돌파구’였다. 그는 “이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타투용 물감.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타투용 물감. 우철훈 선임기자photowoo@kyunghyang.com

■내 노동은 왜 ‘불법’인가

“제 주변의 어린 작업자들이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혹은 그 직전까지 떠밀리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표면적인 원인은 우울증이었지만 이들이 나락으로 몰린 이유는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열심히 그림을 그린 대가로 얻은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는 전과와 벌금, 징역 그리고 부서진 삶입니다.”

5월 28일 법정에 선 김도윤 작가가 ‘최후진술’에서 한 말이다. 그는 판사 앞에 선 이 상황이 “제 기도의 응답”이라고 했다. 때때로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는 후배들을 보며 그는 타투 노동이 존중받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지난해 타투이스트들의 노조 ‘타투유니온’을 조직한 그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타투산업법(가칭) 제정안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엔 동료들과 헌법소원심판도 청구했다.

그동안에도 입법부·사법부의 문을 두드리는 시도는 있었다. 17~20대 국회의 타투 법안들은 의사단체 반발로 번번이 폐기됐고 헌법재판소는 7차례의 유사 헌법소원을 각하·기각했다. 법은 30년째 타투 시술이 ‘의료행위’라고 말한다.

타투는 왜 불법이어야 하는가. “매체(피부)가 다를 뿐인 회화이자 예술작업”이라는 타투이스트들의 목소리는 왜 한국의 사법에는 닿지 않는 것일까. 세계적인 타투이스트 김도윤의 ‘불법 타투’ 선고는 다음달 7일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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