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문과 장충동 성곽 흔적

2020.12.29 17:21
우철훈 기자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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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에는 창의문(북소문), 혜화문(동소문), 광희문(남소문), 소의문(서소문) 4소문이 있었다.

광희문은 시구문(屍軀門)·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원 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지금 위치에 다시 세웠다. 문 밖은 노제 장소였기 때문에 무당집들이 많아 신당리(神堂里)로 불렸는데, 갑오개혁 이후 신당리(新堂里)로 바뀌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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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남아있는 성곽에서 광희문까지는 성곽이 남아있지 않다. 광희문 앞 도로에 성곽이 있었다는 표시만 있을 뿐이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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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에서 보면 멀리 낙산의 성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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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문 성벽을 따라가다 장충동 주택가로 들어서면 성곽은 다시 자취를 감춘다. 한양도성 순성길을 따라 걷다 골목에서 성곽의 자취를 발견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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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일대에 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고, 해방 후 1960~70년대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했다.

현재 성돌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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