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 전도연 “세월호의 슬픔과 치유 담아···펑펑 울고 나니 따뜻함 느껴져”

2019.03.26 18:46 입력 2019.04.02 20:36 수정

배우 전도연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에서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순남’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배우 전도연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에서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순남’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이 이야기는 다르다는 확신
소재로 소비하지 않아 선택
“‘다같이 아파 하자’가 아니라
‘다시 힘을 내자’는 메시지”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과 함께 팽목항에 다녀왔어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빛이 바랬더라구요.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라고 말하는 이 작품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그날, 배우 전도연(46)은 국민 대다수와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사고 소식을 뉴스로 접했고, 막연히 곧 구조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 후로 내내,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남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두 번이나 고사를 하면서도 손에서 시나리오를 놓지 못했다. 지난 25일 <생일>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이 영화가 유가족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한다”며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영화를 고사한 이유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세월호라는 사건,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들었어요. 또 아직도 많은 의견들이 분분한 이 사건에 관련해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이야기가 왜곡되진 않을까 여러 생각이 나더라구요.” 영화를 둘러싼 걱정과 고민은 비단 그의 것만은 아니었다. 영화 개봉 전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상업영화로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전국민적인 트라우마를 남긴 이 사건을 대중이 극영화를 통해 소비할 만큼 충분한 시간적 거리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이 이 영화를 택한 것은 “이 이야기는 다르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펑펑 울었지만, 덮고 나서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산다는 것의 감사함’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 <생일>은 세간의 우려를 비껴간다. 참사를 영화의 소재로 소비하기보다는,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담담히 들여다보는 형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는 2014년 4월16일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 ‘수호’(윤찬영)의 아빠 ‘정일’(설경구)이 사건 이후 2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남겨진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가족의 슬픔을 곧바로 대면하지 않겠다는 신중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정일이 조심스럽게 아내 ‘순남’(전도연)에게 다가갈 때 비로소 가족들의 위태로운 일상이 드러난다. 홀로 딸 ‘예솔’(김보민)을 키우는 순남은 빨래하고 밥 차리고 직장에 나가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도 매일같이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정일은 순남에게 수호의 ‘생일 모임’을 열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수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제껏 이 행사를 외면해왔던 순남은 오랜 망설임 끝에 참여를 결정한다. 생일 모임은 실제 이종언 감독이 2015년 안산에 위치한 치유공간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만들었던 행사로,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생일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자리다. 생일 모임을 계기로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는 감독은 유가족들을 만나며 느낀 감정을 관객에게도 전하기 위해 이 장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총 3대의 카메라로 약 30여분 동안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전도연은 이 장면을 촬영하면서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이 장면을 이틀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찍으며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제가 감독님에게 독하다고 할 정도로 강행군이었죠. 촬영을 마치고 나니 되게 후련하고 든든하고, 고마움이 생기는 거예요. 누군가 슬프고 힘들 때 옆에서 다독여주고 함께 슬퍼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게 됐어요.” 롱테이크신 특유의 생생함 덕분에, 배우가 느낀 이 복합적인 감정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수호의 삶이 남긴 다양한 모양의 궤적들을 다함께 되짚는 과정 속에서, ‘함께 슬퍼하는 경험이 주는 힘’을 체감하게 된다.

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미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참사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얼굴을 비췄다는 것이다. 영화는 참사 이후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정치 공세 속에서 어느새 하나의 상징으로 굳어져버린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름 너머 구체적 삶이 있음에 주목한다. 극중 순남에게 슬픔이 찾아오는 순간들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 앉아 있을 때, 현관 점멸등이 이유도 없이 깜빡일 때, 창밖에서 수호 또래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 이제는 답장이 오지 않는 수호와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볼 때…. 전도연은 이 일상적인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를 일부러 그려넣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왜 삶이 힘들 때 기미같은 게 더 짙어지고 그러잖아요. 외부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심적으로 너무 힘들 때 더 그런 것 같아서, 순남의 얼굴도 그렇게 표현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배우 전도연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에서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순남’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배우 전도연은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에서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순남’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매니지먼트 숲 제공

곧 5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 참사가 남긴 사회적 상처는 아직 너무나 크다. <생일> 관람을 망설이는 관객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전도연은 영화에 대해 “‘다같이 아프자’가 아니라, ‘아프지만 다시 힘을 내자’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절절히 아픔을 경험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어떤 일이 터졌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보통 회피하곤 하잖아요.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한 미안함이 컸죠. 그런데 영화를 찍고 나니 유가족분들께 작게라도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영화를 만든 모든 스태프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이 영화가 만약 그럴 힘을 갖게 된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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