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버섯

2016.10.24 21:08
서남대 | 의대 교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버섯’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달걀버섯.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버섯’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달걀버섯.

유난히 비가 잦은 가을입니다. 숲이 눅눅합니다. 숲 바닥과 발의 만남이 포근합니다. 마냥 걸어도 좋을 느낌입니다. 숲이 눅눅해지면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분해의 운명을 짊어지고 숲에 깃들인 친구들이 뿜어내는 냄새지요. 그중 하나 버섯이 있습니다. 버섯이 세상과 만나려면 우선 비가 있어야 합니다. 마를 대로 마른 가을 숲에서 버섯은 뵈지 않습니다. 이번 가을은 버섯 풍년입니다. 발의 포근함과 더불어 버섯의 아름다움에 취하기 좋은 날입니다.

[김성호의 자연에 길을 묻다]가을과 버섯

버섯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입니다. 그리고 판단합니다. 이래서 먹을 수 있다. 이러니 먹을 수 없다. 먹기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을 정합니다. 그 기준은 이렇습니다. 독버섯은 색깔이 화려하며, 세로로 잘 찢어지지 않고, 대에 띠가 없으며, 곤충이나 다른 동물이 먹지 않고, 은수저의 색을 변하게 한다. 또한, 독버섯이라도 가지나 들기름과 함께 요리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반대로 식용버섯은 색깔이 화려하지 않으며, 세로로 잘 찢어지고, 대에 띠가 있으며, 곤충이나 다른 동물이 잘 먹고 은수저의 색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은 버섯에 대한 상식으로 되어 있으며, 상식이니 믿습니다.

사진의 버섯은 붉은색이 강하며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실제 가장 화려한 버섯으로 꼽히는 달걀버섯입니다. 나는 달걀버섯을 만나 그 앞에 엎드려 사진까지 찍었으니 캘 수 있었고요. 만약 내가 먹으려 한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말릴 것입니다. 나와 친하지 않더라도 그리할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리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버섯의 맛을 감상할 기회를 막는 것입니다. 달걀버섯은 버섯 중 제왕(帝王)이라는 뜻으로 ‘가이사리아(Caesaria)’라 불립니다. 네로 황제에게 달걀버섯을 진상하면 같은 무게의 황금을 고마움의 표시로 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자연에 스스로 깃든 생명을 내 몸에 넣은 것은 가능한 삼가고 있습니다. 버섯에 대한 마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달걀버섯도 수없이 만났지만 먹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버섯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그리 알면 되는 것이지 그 맛까지 궁금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 또한 흔합니다. 버섯이 많이 발생하는 가을이면 적잖은 사람이 버섯 때문에 목숨을 잃습니다. 썩은 나무 그루터기에 피어나는 노란다발 때문입니다. 화려하지 않은 데다 노르스름하게 잘 구운 빵 같아 보이는 노란다발은 버섯으로 인한 사망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맹독버섯입니다.

독버섯은 먹으면 바로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기준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상식처럼 되어 있는 독버섯에 대한 속설은 항목마다 예외가 많습니다. 더군다나 버섯의 모습은 생육시기에 따라 변합니다. 같은 종이라도 서식환경과 영양 상태에 따라 모양과 색이 다릅니다. 전문가조차 쉽게 동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지금 이 순간에도 독버섯 때문에 생명을 잃는 일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버섯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 든 버섯 채취가도 있고, 용감한 버섯 채취가도 있다. 하지만 나이 들고 용감한 버섯 채취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태계는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분해자라는 세 개의 커다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 톱니 하나가 빠지면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끝없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죽음이 이어지며, 죽음 뒤에는 분해가 있습니다. 생태계는 그렇게 순환합니다. 버섯은 분해자 쪽에 치우쳐 있는 생명체입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다하면 그 사체를 분해하여 그중 일부를 취해 자신이 살고, 나머지는 다른 생명체의 것으로 되돌려 줍니다. 분해자가 없다면 무엇이 분해되지 않고 고스란히 쌓이는 것이며 이는 곧 생태계 순환의 끝을 의미합니다.

물론 버섯은 소중한 먹을거리입니다. 그런데 먹을거리로 삼을 식용버섯은 재배하면 되며, 실제 다양한 식용버섯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재배한 버섯으로도 식탁은 이미 무겁습니다. 버섯은 또한 귀한 약리성분을 지니고 있어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 소중한 약리성분을 찾는 것은 약리학자들에게 맡겨도 좋겠고요. 그러니 숲속의 야생 버섯은 자연에서 자기의 몫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버섯 채취가 생계의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버섯과 인연을 맺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 동안 버섯으로 인해 알게 된 것은 하나뿐입니다. 버섯을 알려면 우선 버섯과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인데, 버섯의 벗이 되려면 버섯보다 많이 큰 내가 먼저 버섯의 높이로 땅에 엎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내려다만 보면서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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