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신현준씨

2013.12.20 18:59

“K팝은 인공물이지만 ‘짝퉁스럽다’라고 평가절하는 곤란”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신현준 지음 | 돌베개 | 316쪽 | 1만8000원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51)는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던 1993년 <이매진: 세상으로 만든 노래>라는 책을 출간했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 평전이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생이 되면 록밴드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이 책은 “젊음을 떠나보내는 의례”이자 이후 삶의 방향을 대중음악 평론으로 돌려놓은 전환점이었다.

2001년 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해에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음악산업 시스템의 지구화와 국지화: 한국의 경우>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내며 평론보다는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요컨대 지난 20년의 앞선 절반이 대중음악 평론가의 삶이었다면, 뒤의 10년은 대중음악 연구자의 삶이었던 셈이다.

19일 성공회대에서 만난 신 교수는 “평론이 현장감도 있고 더 재미있지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연구가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는 음반·공연 등 개별 텍스트를 넘어 그 텍스트들이 자리잡고 있는 맥락을 지리·경제·역사·정치·일상’의 관점에서 분석한 대중음악 연구서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기 케이팝, 음악산업, 방송과 음반을 포함한 음악 미디어, 음악과 정치, 홍대앞 인디신을 조명한다.

신 교수는 “이윤 창출 수단으로서의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대중음악을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대중음악은 그러나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하나의 공공적 지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양적·질적 축적을 이뤘다”고 말했다.

[저자와의 대화]‘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신현준씨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것은 ‘케이팝’으로 통칭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다. 아시아 권역의 절대적 인기를 바탕으로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케이팝의 호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신 교수는 그 이유를 ‘위협적 요소를 제거하고 매력적인 요소만 추출한 패키지적 성격’과 ‘특정한 윤리를 전제하는 특정한 미학’으로 설명한다. 케이팝은 미국 대중음악보다 덜 극단적이고 독창성에서는 일본 대중음악보다 떨어지며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매력적이지만 안전한 요소만을 조합해놓은 인공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영미권 대중음악 스타들이 보여주는 과격한 이미지와 달리 케이팝 아이돌은 “공적 세계에서는 착하고 겸손한 존재”로 재현된다. 매력적 용모와 모범적 이미지의 조합 덕분에 케이팝은 “세계 각지의 틴에이저에게 호응을 받고 그들의 부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콘텐츠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평자들은 케이팝의 이런 특성을 두고 ‘짝퉁스러움’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진짜 음악의 아우라가 없는 공산품에 불과하다는 견해다. 그러나 신 교수는 “진품·모조품의 이분법으로 케이팝을 평가하는 것은 일면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아이돌에 대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그 견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더 주목하는 것은 아이돌 음악의 진정성 부족이 아니라 왜 대중음악에서 진정성을 찾으려는 문화적 징후들이 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이돌을 싫어하는 것은 어떤 윤리적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돌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진정성을 희구하는 문화가 사회의 산물이라면, 아이돌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과 닿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와의 대화]‘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신현준씨

아이돌 그룹이 우세종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신 교수는 명확한 전망을 내놓고 있진 않지만 두 가지 불안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2008년 이후 경제상황을 놓고 보면 아이돌 그룹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반면 수익모델은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기획사 SM의 경우에도 수입의 80%가 기업체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온다. 또 높은 비용을 투입하는 현재의 연습생 제도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아이돌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논리적으로 치밀하고 정서적으로 강렬한 현상은 이 헤게모니의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다.”

책은 케이팝 이전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음악과 정치의 문제를 논하는 장을 거쳐 홍대앞 인디신을 다루는 장으로 마무리된다.

이 같은 책의 배치는 ‘라이브 음악’에 대한 신 교수의 애정과 연관돼 있다. “아이돌 음악이든 아티스트의 음악이든 중요한 건 라이브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축돼 있느냐의 문제다. 라이브라는 물적 토대가 없으면 좋은 꽃이 필 수 없다. 라이브 인프라가 강해져야 평범한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좀 더 친밀함과 애착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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