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무라카미 다카시, “나는 결함투성인 인간이다”

2013.08.06 13:10 입력 2013.08.06 13:45 수정
경향아티클 서정임 수석기자

서구 주류 미술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일본의 하위문화 ‘오타쿠’에서 시작해, 그것이 이루어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평면성과 양식성을 일본 전통미술과 접목시킨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이러한 결합을 원천으로 그는 모든 것을 평편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수퍼플랫’ 개념을 창안해 <수퍼플랫>(2000), <컬러리아주>(2002), <리틀보이>(2005) 등 수퍼플랫 3부작 전시를 선보이며 서구 미술계에 아시아적인 팝아트를 각인시키고 국제적인 명성을 확립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패전의 트라우마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하나의 ‘평면’으로 해체된 전후 일본사회를 비평함과 동시에, 데이터베이스화한 정보들을 탈맥락적으로 소비하는 인터넷 문화를 정의하고, 쾌락과 부패가 공존하는 현대 소비사회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아시아 팝아트의 모델을 제시하면서, 동시대를 반영하는 팝아트의 비평적 역할을 보여주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다양한 면모는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의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미키 마우스, 도라에몽 등을 결합한 ‘Mr. DOB’, ‘Miss Ko²’, 일본 전통 신화와 관련된 판타지적 캐릭터 ‘Kaikai & Kiki, Mr. DOB’의 돌연변이 ‘Tan Tan Bo’ 등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풍선 등 39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에 이번 아시아 회고전을 위한 기자간담회부터 작가와의 대화,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까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만났다. 그는 엄청난 스케줄로 인해 많이 지쳐있었지만, 그 특유의 동문서답하는 듯한 엉뚱함 속에 숨겨진 비수와 같은 예리함으로 인터뷰 내내 기자를 웃게 만들면서도 깊은 사유에 빠지게 했다.

© Takashi Murakami / 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 Takashi Murakami / 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article(이하 a). 한국 회고전을 위한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렇고, 인터뷰할 때 질문을 던지면 뭔가를 연상하듯 눈을 감고 답변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murakami takashi(이하 mt). 내가 회사를 경영한다든지, 학교에서 무언가를 가르친다든지, 혹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전문가라면 얘기할 때 질서 정연하게 정리해서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어 내 페이스로 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못하는 사람이다. 특히 뭔가 말로 설명하는 것에 굉장히 서툴다. 그런 부분 때문에 『슈퍼 플랫』이란 책까지 쓰게 됐다.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게 지루하기도 했고, 계속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내 머리 자체가 혼란스러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질문을 던질 때 나는 이것을 잘라서 나름대로 콜라주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주얼적인 이미지가 뒤죽박죽되어서 얘기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나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결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결함을 메우기 위해 시각예술품을 완성한다.

a.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 때문에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대중에게 비춰진 다카시와 실제의 다카시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있었을 것 같다.
mt. 복잡하고 귀찮기도 한, 그런 내 자신이 아닌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캐릭터가 나와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고 그 때문에 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많은 이들 앞에 설 때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 작년 12월부터 홍콩, 올해 5월, 7월까지 전시를 하게 됐는데, 그때마다 만난 사람들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잘 대답해주는 그런 완벽한 인물상인 무라카미에게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결함투성인 사람이다. 즉, 성공한 사람이 아니고 맥락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이 이 세상에 살아도 되는 유일한 이유는 결함이 있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귀족과 같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고 복잡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일본화로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만큼, 일본 전통회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미술의 고유 전통과 현대의 하위문화인 오타쿠 문화를 작업으로 결합시켰다. 당신이 정의하는 오타쿠의 세계란?
mt. 오타쿠 문화가 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오타쿠 세계의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것에 대해 일본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설명한다면 오타쿠 문화의 중심은 만화이다. 만화에는 문장과 문법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그림을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그만큼 허들이 높다. 또 한 가지는 게임이다. 그 규칙을 익히면 금세 세계적인 것이 된다. 내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타쿠 세계 속 원주민(일본 내 오타쿠 문화의 중심에 속한 이들)의 감성으로, 그들 그림의 에센스를 간략화하고 정리해서 이런 것은 어떤 의미이기도 하지만 어떤 방향성도 있다는 식으로 분류학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타쿠 세계에 속한 원주민들은 그런 분류학은 필요 없다며 열이 받을 것이다.

a. 오타쿠 세계의 원주민 문화에 분류학을 시도하려면 그만큼 자기 스스로 오타쿠가 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오타쿠인가?
mt. 원래 오타쿠의 기원은 일본의 엘리트 집단인 게이오 대학의 SF연구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부르주아이긴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하위문화 즐겨보는 게 어때?” 이런 식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실제로 오타쿠는 늙은 여성들이 자신을 비하해서, 상대방을 일컬을 때 ‘옥사마’, ‘오타쿠’라고 말하는 단어이다. 그것을 게이오 대학의 연구회에 있는 사람들이 얘기를 했고, 그것을 하위문화 평론가 나카모리 아키오(Akio Nakamori)가 이건 버릴 수 없는 말이라고 해서 『망가 브릭코(-漫画ブリッコ)』이라는 포르노 잡지에 해설했다. 이후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오타쿠 문화라는 것이 SF와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보는 체험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타쿠가 애초 매우 높은 계급에 있었던 게이오 대학에서 나왔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 오타쿠가 되는 것에 좌절했다. 당시 게이오 대학과 동경대학에는 오타쿠가 많았다. 인터넷 시대가 아니었던 그 시기에는 기억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SF의 어떤 구절, 인용을 얘기할 수 없으면 친구끼리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기억력이 매우 나빴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대화를 하는 것에 참여하지 못하니까 좌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타쿠적인 콘텐츠는 좋아해서 항상 지켜봤다. 정리하자면 오타쿠가 될 수 없었던 오타쿠이다.

<br />< Takashi in Superflat Wonderland> 전경. ©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 Takashi in Superflat Wonderland> 전경. ©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a. 일본 내에서, 특히 당신은 오타쿠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mt. 그렇다. 일본 사회 내에서 무라카미라는 인간의 존재감은 매우 부정적이다. 오타쿠 문화를 앞세워 외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매우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꼬리표가 내게 붙어 있다. 나를 나쁘게 평가하는 논리는 이렇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표면만 차용해 서양적인 예술에 접목시켜 세계적으로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게다가 199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 이후 사회풍조는 아트 비즈니스를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사기꾼이 되고 악(惡)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나의 활동을 보며 사기꾼이 외국에 거짓말을 하러 가고, 그 거짓말을 듣고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오타킹’이라 불리는 오카다 도시오(Toshio Okada)는 한때 무라카미 다카시는 오타쿠를 바보 취급하고 착취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 덕에 일본 사회에서 점점 나의 존재감은 옅어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비평에 대해 의기소침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국의 문화, 개인의 문화가 다른 장소로 이동했을 때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고 당연한 것이다.

a. 당신은 ‘아시아의 워홀’이라 불린다. 이는 사실 자본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그것의 속성을 잘 이용하는 영리한 작가라는 점과, 상업주의에 속한 작가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mt. 그 말이 맞다. 하루라도 빨리 워홀이라는 왕관을 벗어 버리도록 노력하겠다.

a. 최근 미키 마우스, 도라에몽 등을 결합한 ‘Mr. DOB’에 이어 작품에 ‘Tan Tan Bo’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mt. ‘Mr. DOB’는 20년 전 나에게 있어 인생을 건 도박과 같은 것이었다. 도라에몽과 미키마우스를 생각해서 만들기는 했지만, 당시 나는 뭐든지 괜찮으니까 뭔가 아이콘을 만들어야 했고, 그것을 되풀이하다 보면 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든 몇 번이든 같은 방면으로 가다 보면 진실과 가까워지는, 그렇게 믿게 되는 인간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내 오랜 인생을 걸고 해보고 싶었다.
언어아트의 핵심은 인간 그 자체의 근원, 즉 낚시를 하다 고기가 먹이를 그냥 가져가는 것과 같다. 그런 식으로 실체가 없는 철학적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쓸데없는 말들, 예를 들어 ‘도보지데(‘왜?’란 의미의 ‘도시테?’를 ‘도보지테 도보지테?’로 발음하는 것)‘와 같은 것을 먹이로 던졌고, 사람들이 그것을 잘 물었다. 지금은 성공했지만, 고기가 물때까지 나는 20년 동안 계속 속였다. 그 결과가 ‘Mr. DOB’이다. 그리고 한 번 낚싯줄에 걸리게 되면, 또다시 같은 수로 잡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얘기를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사기꾼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런 사기적인 부분에 약한 존재이다.
‘Tan Tan Bo’의 경우 꼭 ‘Mr. DOB’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 캐릭터로 하는 편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좋았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니까 대변을 보고 싶고, 대변을 보는 동안에 생각나는 게 구토하는 동물이었다. 그래서 “아! 그래 이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토하는 모습은 서양사회에서 히트를 쳤다. 아마 문화적인 배경 때문인 듯하다. 이후, 나는 이것을 시리즈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십 수 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무리 회상 해봐도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 토를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을 백지화시키고 모여드는 정보를 시냅스(synapse)하며 삥-하고 전기가 켜지는 순간을 계속 기다리는 중이다.

a. 3.11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내의 현대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것이 최근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에서 등장하고 있다. 당신 역시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와 함께 자선 경매를 한다든가, 기부를 하는 등 여러 활동을 했다. 그렇다면 작업에서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나?
mt. 3만 명이 순식간에 죽었다. 충격을 넘어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이후 후쿠시마 원전이 폭파해 다량의 방사능 재가 동경에 날아왔는데, 정부가 그것을 숨긴다든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나는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아티스트라는 직업의 사람은 사람들의 위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진 이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심했고, 이전까지 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개인적이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가려하고 있다. 즉, 초기 작품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예술이 가진 머니 게임 같은 테제를 내세웠다면, 그것과는 다르게 최근 작품들에선 개인적인 부분,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a.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개인적이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mt. 그것은 과부하 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컴퓨터아트, 버추얼아트에서 리얼리티를 찾았다면 지금은 ‘소셜 리얼리티’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 연결 속에서의 리얼리티의 변화 속에서 다음 주제를 찾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 속에서 아티스트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때문에 가상현실을 거쳐 SNS로 대표되는 소셜 리얼리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절망과 외로움, 치유에 대한 욕망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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