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일본의 대표 스포츠카 ‘마쓰다 RX-7’

마쓰다(Mazda) RX-7 모델은 일본인 특유의 열정과 끈기를 상징하는 스포츠카다. 남의 나라 엔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뚝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일본 국민들의 애정 또한 남다르다. 일본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마쓰다 RX-7은 여전히 최고의 일본산 스포츠카로 평가받고 있다.

‘마쓰다 자동차’는 원래 코르크 마개를 생산하던 도요(東洋)코르크공업(주)이 전신이다. 1927년 도요공업(東洋工業·동양공업)으로 개명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트럭을 생산, 자동차 메이커로 이름을 올린다. 1960년에야 첫 4륜차를 만들었고, 이들은 대부분 자국 시장을 겨냥한 소형차들이었다.

이후 1984년 실질적인 창업자 마쓰다 주지로(松田重次郞)의 이름을 따 마쓰다로 다시 개명했다.(도요코르크공업의 창업주는 히로시마산업은행장 출신의 우미츠카 신파치(海塚新八)였다. 1921년 경영권을 거머쥔 마쓰다는 이후 이륜차와 삼륜차 등을 제작하며 마쓰다자동차의 실직적인 창업자로 기록되고 있다.)

1세대 마쓰다 RX-7 <출처: 마쓰다>

1세대 마쓰다 RX-7 <출처: 마쓰다>

마쓰다가 첫 생산한 자동차는 ‘R360’이다. 공랭식 356㏄ 16마력에 최고시속 84㎞의 성능을 보였다. 이 모델은 1962년 후속모델 ‘P360 캐롤’이 출시된 이후인 1966년까지 자국내 경차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토요타·닛산과의 경쟁... 고성능의 로터리 엔진 판권 사들여 = 이 즈음 지구 반대편 독일에서는 독특하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엔진이 개발됐다. 독일 NSU사의 기술자 반켈 박사가 개발한 로터리 엔진(Rotary Engine·또는 반켈 엔진이라고 부른다)이 그것이다. 하우징(Housing)과 로터(Rotor)로 회전운동을 하는 방식인데,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 관성에 의한 충격이 없으며 움직임이 원활한 장점이 가지고 있었다.

마쓰다가 1960년 첫 생산한 자동차 ‘R360’. <출처: (cc) Taisyo at Wikipedia>

마쓰다가 1960년 첫 생산한 자동차 ‘R360’. <출처: (cc) Taisyo at Wikipedia>

특히 엔진의 전체 움직임이 회전운동에 의하고 로터가 스스로 흡기 포트와 배기 포트를 개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밸브 기구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일반 피스톤 엔진에 비해 구조가 단단하고 부품도 적게 들어간다. 마쓰다는 여기에 주목했다. 당시 마쓰다는 토요타나 닛산에 비해 규모나 기술에서 내세울 게 없었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기술의 핵심인 엔진의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이다. 1954년 로터리 엔진이 개발되자 GM과 시트로앵 등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판권을 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모든 인맥과 막대한 자금(28억엔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을 동원한 끝에 1960년 로터리 엔진의 판권을 사들인 마쓰다는 이 때부터 실용화를 위한 개발과 연구에 밤낮없이 몰두하기 시작했다. 1년여 동안 5,000여개의 엔진을 제작했다 다시 폐기하는 수순을 반복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로터리 엔진 개발과정에 투입된 수십명의 엔지니어에게는 로터리 엔진 개발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고, 그 가족들에게도 개발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졌을 만큼 보안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

독일인 반켈 박사가 개발한 로터리엔진. 반켈엔진으로도 불린다. <출처: (cc) Amux at Wikipedia>

독일인 반켈 박사가 개발한 로터리엔진. 반켈엔진으로도 불린다. <출처: (cc) Amux at Wikipedia>

그럼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실한 연료효율(평균연비는 5㎞/ℓ정도다)이나 스파크 플러그 주변의 균열 등은 여전히 문제였다. 이때는 NSU도 로터리 엔진 개발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판권을 사들인 마쓰다는 개발에 전사적으로 덤벼들었다. 이 과정에서 1964년 첫 번째 모델인 배기량 1,999㏄급의 2인승 110S 코스모와 1967년엔 세계 최초로 로터리 엔진을 탑재한 양산차 ‘코스모 스포츠’를 개발됐으며 2-3년 후엔 미국시장에 진출, 연간 12만여대의 대미수출대수를 기록했다.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 <출처: (cc) Taisyo at Wikipedia>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 <출처: (cc) Taisyo at Wikipedia>

시련은 곧바로 닥쳐왔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를 전후로 마쓰다는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연료 효율이 좋지 않은 로터리 엔진의 마쓰다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마쓰다가 버티지 못하고 도산할 것이란 루머까지 나돌면서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이에 마쓰다는 “2년내 로터리 엔진의 연비를 40%까지 향상시키겠다”고 선언하며 위기를 정면돌파 할 뜻을 내비쳤다.

2세대 마쓰다 RX-7 <출처: (cc) Keaneo at Wikipedia>

2세대 마쓰다 RX-7 <출처: (cc) Keaneo at Wikipedia>

연비 향상시킨 RX-7 등장... 미국시장 공략 = 스미토모은행의 관리와 25%의 주식을 인수한 포드 덕택에 위기를 넘긴 마쓰다는 두 개의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RX-7(사반나 RX-7) 모델을 1978년 세상에 공개했다. 감각적인 유럽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보닛의 높이를 낮춘 쐐기형의 디자인은 출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개폐형 헤드램프가 장착된 전면부는 부드러운 선이 강조됐고 패스트백(Fastback) 타입의 후면부는 우아함이 돋보였다. 전체적으로 에어로 다이나믹한 디자인이 물 흐르듯 이어져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3세대 마쓰다 RX-7 <출처: (cc) Taisyo at Wikipedia>

3세대 마쓰다 RX-7 <출처: (cc) Taisyo at Wikipedia>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던 노하우는 RX-7의 서스펜션(Suspension·현가장치)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첨단시스템도 적용됐는데, 전자제어로 댐핑력(Damping)이 조절되는 AAS(Automatic Adjusting Suspension)는 노멀과 스포츠모드 종류 중 하나의 서스펜션 상태를 선택해 운행할 수 있다. 전통적인 2+2인승의 스포츠 쿠페형인 RX-7의 로터리 엔진은 1,146㏄(트윈 로터)의 배기량에도 100마력 이상의 힘을 자랑했다. 1983년에는 165마력의 터보 과급기형이 나와 최고속력이 225㎞/h에 이르렀다.

특히 스포츠카의 성능을 자랑하면서 유럽의 스포츠카보다 값이 싸 일본과 해외에서, 특히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힘 좋고 가격이 저렴한 ‘닷산 240Z’ (닛산이 1969년 발표한 모델. 일본 스포츠카의 시조로 불린다)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마쓰다의 경영진은 이를 지켜보면서 RX-7 역시 미국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1985년 2세대 모델이 나오기까지 총 47만여대의 RX-7이 판매됐는데 이중 38만여대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2000년~2003년까지 생산된 마쓰다 RX-7 RS <출처: 마쓰다>

2000년~2003년까지 생산된 마쓰다 RX-7 RS <출처: 마쓰다>

RX-7은 진화를 거듭했다. 신형 RX-7은 포르쉐 944나 924의 경쟁자로 평가받았고 컨버터블형(1987년), 터보과급기형과 신형 모델 에우노스 코스모(1989년)이 잇따라 출시됐으며 1991년엔 제3세대 RX-7이 등장했다. 역시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이 모델은 트윈 터보과급기 장착으로 255마력의 출력을 뿜어냈다. 참고로 1991년 르망 경주에서 우승한 4-로터 5,194㏄ 엔진의 RX-7 모델은 9,000rpm에서 700마력의 출력을 내기도 했다. 제4세대 RX-7(1999년)은 280마력의 출력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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