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포드의 신화와 미국

초기의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수제품으로 제작되다보니 값도 비싸고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서민들에겐 사치품이나 다름 없었다. 100여년 전 이런 고가의 자동차를 대중에게 안긴 이가 있다. 바로 자동차 대중화의 초석을 쌓은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다. 그가 젊은 나이에 자동차를 바라보며 가졌던 꿈은 “부자들의 전유물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오늘의 역사는 부침을 거듭한 끝에 최초로 값싸고 튼튼한 차를 대량 생산한 인물로 그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자본금 10만달러와 노동자 12명으로 1903년 포드(Ford) 자동차 회사를 창설했다. 지인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Dearborn)에 공장을 마련한 그는 5년 후인 1908년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모델 T’를 세상에 내놓는다. 모델 T는 1999년 ‘세기의 자동차’에 선정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1913년 첫 대량 생산 시스템인 컨베이어식 조립라인을 개발·도입했고 미국 최대의 자동차회사로 우뚝 서게 된다.

“자동차를 서민의 품으로” 포드의 꿈

헨리 포드와 자동차의 인연은 이렇다. 그가 어렸을 적 어머니가 위독해지자 말을 타고 이웃 도시로 의사를 데리러 갔다. 하지만 돌아왔을 땐 이미 어머니는 운명을 달리 했고 슬픔에 휩싸인 그는 그때 ‘말보다 빠른 것을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아주 어릴땐 고장난 시계를 만지작거리다 조금 자라서 증기자동차를 처음 보고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에디슨의 전기회사에 들어가 전기기술을 익힌 후 가솔린 차량을 제작했다. 차량에 문제가 있자 도끼로 자동차를 부순 일화도 있다.

포드사의 설립자 헨리포드.

포드사의 설립자 헨리포드.

미국인들이 헨리 포드를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자동차 대중화의 실현, 중산층의 확대, 부의 재분배 등이 그것이다.

포드의 성공, 특히 자동차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포드 ‘모델 T’는 1903년 제작에 들어가 1908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피케트 공장(Piquette Plant)에서 본격적인 생산·판매에 들어갔다. 배기량 2900cc 4기통 엔진은 22마력의 출력으로 시속 60㎞를 달렸다. ‘모델 T’는 1927년까지 18~19년 사이에 1500만대 이상을 판매해 도요타 코롤라, 폭스바겐 비틀과 함께 세계 3대 베스트셀러로 기록되고 있다.

포드사의 최초의 자동차 ‘모델 T’.

포드사의 최초의 자동차 ‘모델 T’.

‘모델 T’, 자동차 대중화·중산층 확대 실현

‘모델 T’의 천문학적인 판매가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가격 경쟁력 덕분이다. 차값이 대당 2000달러를 넘어서는 고가로 서민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시절 ‘모델 T’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850달러에 판매, 중산층에 강하게 어필했다.

무엇보다 ‘모델 T’의 다량 판매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조립공정 시스템 도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드는 1913년말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을 세계 최초로 소개하면서 섀시 조립을 12시간30분에서 무려 2시간40분으로 단축하는 믿지 못할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로써 3분에 한 대씩 차를 생산하며 노동시간은 10분의 1 수준으로 단축시켰고, 원가절감으로 이어진 효과는 급기야 300달러 이하로 판매가 가능토록 했다. 조립공정의 자동화는 차량 공급의 급속화를 가져왔고 이 흐름은 중산층의 확대로 이어져 결국 미국 경제가 세계를 주도하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하게 된다. ‘모델 T’의 최초 모델 등은 1927년 지어진 미시간주 디어본의 헨리 포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생산공정의 개선으로 생긴 이익의 분배는 당시 하루 9시간에 2.34달러에 불과했던 임금을 8시간에 5달러로 올리는 혁신도 가능케 했다. 당시의 포드사 공장의 직원들의 임금수준은 동종업종에 비해 최소 2배가량 높았다고 한다.

반면 헨리 포드에게는 그의 뛰어난 노동통제 수완을 가리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악명도 따라다닌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작업자를 감시하거나 노조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아 자동차회사들 중 가장 마지막인 1941년 노조가 설립된 일 등이 그러하다.

1964년형 포드 ‘머스탱’. <포드코리아 제공.>

1964년형 포드 ‘머스탱’. <포드코리아 제공.>

미국인의 자존심 ‘머스탱’의 흥행몰이

다국적기업 포드는 오늘날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차들을 여럿 남겼지만 이중에서도 특히 빠져서는 안될 차가 있다. 바로 미국인들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포드의 스포츠카 ‘머스탱’(Ford Mustang·일명 무스탕)이다.

1964년 3월9일 디어본시에서 생산된 머스탱은 같은 해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생전 스포츠 경주대회를 무척이나 즐겼던 헨리 포드의 작고 이후 이런 명차가 개발됐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아무튼 머스탱의 흥행몰이는 대단했다.

머스탱은 주행성과 실용성, 가격 경쟁력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출시 첫 해 40만대 이상의 판매를 올렸다. 이후 수많은 자동차회사들이 이를 벤치마킹했다. 1999년 세기의 자동차에 선정되는 등 머스탱은 자동차 역사에 기념비적인 차로 기억되고 있다.

머스탱 시리즈는 높은 인기를 반증하듯 영화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자동차 추격전의 대명사 ‘블리트’와 영화 007 시리즈 ‘골드 핑거’, 우리나라에 소개된 미드 ‘전격 Z작전’ 등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진화를 거듭한 머스탱은 오늘날까지 남성들의 질주 본능을 자극하면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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