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이스라엘 독립

2011.05.13 21:21

‘이중계약의 땅’ 분쟁의 불씨로

1세기경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태인들은 제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키지만 크게 패하고 만다. 유태인들은 고향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졌고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도 종교와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랑을 시작한다.

2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돌던 유태민족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다. 중세 기독교부터 이어온 ‘예수의 살해범’이라는 편견은 시간이 지나며 ‘혐오’로 깊어졌다. 무수한 차별은 물론 나치에 의한 학살까지 자행된다. 이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태인들은 유럽보다 편견이 덜한 신대륙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았고 경제 등 각 분야, 특히 금융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룬다. 만약 인구 수나 교역량 등 외형적 기준이 아닌 노벨상 수상 같은 학술적 업적, 전 세계 금융·상권에 대한 영향력 등 민족의 질적 측면만을 고려해 경쟁력을 따진다면 아마도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부(富)를 바탕으로 힘을 키운 유태인들은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에 유태민족 국가를 재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2차대전이 끝난 후 1948년 5월14일 팔레스타인 땅 일부를 불하받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하지만 옛 주인 유태인과 현 거주자인 아랍인들의 동거는 불가능했다.

[어제의 오늘]1948년 이스라엘 독립

1차대전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유태인과 아랍인들에게 일종의 이중계약인 두 개의 약속을 한다. 하나는 영국 외무장관 제임스 벨푸어가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태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한 이른바 ‘벨푸어 선언’이다.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서 미국 내 영향력이 커진 유태인들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영국의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이 “아랍인들이 연합군으로 참전하면 종전 후 독일을 지원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한다”고 밝힌 ‘맥마흔 선언’이다. 결국 영국이 승전을 위해 심은 두 개의 씨앗은 중동분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처럼 외세가 개입한 독립의 부작용이다. 이스라엘 독립 후 지금까지 63년간 팔레스타인은 ‘중동의 화약고’로 포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 사망 후 공개된 육성 녹음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한 미국에 대한 공격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알카에다 테러로 인한 비극의 뿌리가 미국의 중동정책에 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유태계의 영향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도 쉽게 발을 뺄 수는 없다. 국제사회의 중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바라건대 최근 이어지는 아랍의 민주화 물결이 분쟁 당사자들의 주체적 화해에도 긍정적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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