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마릴린 먼로의 영혼이 속삭이듯 들려주는 ‘슬픈 삶’

2011.03.11 21:01 입력 2011.03.12 02:11 수정

[책과 삶]마릴린 먼로의 영혼이 속삭이듯 들려주는 ‘슬픈 삶’

▲ 블론드(전3권)… 조이스 캐럴 오츠 | 올

섹스 심벌, 금발의 미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극작가 아서 밀러를 포함한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 우리가 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1926~62)에게서 떠올리는 것들은 이 정도로 요약될 터이다. 앤디 워홀이 반복적으로 실크 스크린에 찍어낸 그의 얼굴처럼, 우리는 그의 한껏 포장된 섹시한 이미지와 비극적 삶을 함께 소비한다.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72)의 장편소설 <블론드>는 화려한 겉포장을 벗겨낸 마릴린 먼로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오츠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로 여성의 관점에서 성과 폭력, 가부장제 사회에 짓눌린 여성의 삶 등을 그려왔다.

오츠는 마릴린 먼로보다는 금발의 섹시한 외모 안에 숨은 ‘노마 진 베이커’(마릴린 먼로의 본명)라는 여성의 삶에 주목한다. “나는 ‘마릴린 먼로’라는 단어로 끝낼 생각이었다”고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 작가는 마릴린 먼로가 되기 이전 노마 진 베이커의 삶에 상당 부분 작품을 할애한다. 애초 계획과 달리 소설은 마릴린 먼로의 인생 전체를 다룬 3권 분량의 두꺼운 책이 되었지만, 1권 전체가 마릴린 먼로가 되기 이전 유년 시절의 삶을 다룬다. 적어도 1권의 끝은 ‘마릴린 먼로’로 끝나는 셈이다.

[책과 삶]마릴린 먼로의 영혼이 속삭이듯 들려주는 ‘슬픈 삶’

노마 진 베이커는 불행한 여자였다. 어머니 글래디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화학약품을 다루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직원으로 우울증과 약물 중독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어머니의 아름다운 외모는 노마 진 베이커의 자산이 되었지만, 할리우드 배우를 향한 욕망과 이뤄질 수 없는 꿈은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낡은 차를 끌고 할리우드 스타들의 고급 주택가를 순례하는 것이 그들 모녀의 주말 행사였으며, 글래디스는 노마 진 베이커가 자신에게 달라붙거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애정 결핍과 불안정한 유년시절은 이후 마릴린 먼로의 비극적 삶의 단초가 됐다.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 갈 곳이 없어진 노마 진 베이커는 고아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위탁가정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안정적인 삶을 꿈꾸었지만, 그의 수양 아버지가 노마 진 베이커를 바라보는 욕망어린 눈빛에 불안해진 수양 어머니는 그를 겨우 열여섯의 나이에 서둘러 결혼시킨다. 남편을 얻은 그는 처음으로 믿고 의지할 데가 생긴 듯 행복해 했지만 그들은 너무 어렸고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난 후 노마 진 베이커는 독립해 군수공장에 취직하고, 그곳에서 눈에 띄어 잡지 모델로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곧 마릴린 먼로가 된다.

오츠는 문장들 가운데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소설 속 다른 등장인물들 내면의 목소리가 틈입하는 서술 방식을 통해 마릴린 먼로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그 목소리는 마릴린 먼로의 영혼이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 독자는 그가 마음 속에서 울려내는 비명이나 슬픔, 불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오츠는 또한 경제공황과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의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및 여성의 불리한 지위를 그려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노마 진 베이커의 어머니는 한갓 허영심 때문에 미쳐간 게 아니라 화학약품의 독기에 몸과 마음까지 망가진다. 부모도, 남편도 기댈 곳 하나 없었던 노마 진 베이커는 남자들이 자신을 욕망하는 것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난 매춘부도 아니고 헤픈 여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다른 식으로는 날 팔아치울 방법이 없었으니까. 나는 팔려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날 욕망할 테고 그래야 나도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 강성희·송기철 옮김. 1권 1만2000원, 2·3권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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