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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깨진 `세기의 결합`..크라이슬러 앞날은

김윤경 기자I 2007.05.15 13:30:19

합병주도 슈렘프 전 회장에 `회사망쳤다` 비난
9년전 360억불에 인수한 크라이슬러 75억불에 매각
제체 회장 회생노력 역부족..`수요부진+비용부담`
서버러스, 고강도 구조조정 예상..업계 판도변화 `주목`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지난 1998년 전세계 주목을 끌며 합쳤던 독일 다임러벤츠와 `아이아코카 신화`의 주인공 미국 크라이슬러가 결국 9년만에 갈라섰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에 지분 80.1%를 75억달러에 넘기기로 합의했다고 14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관련기사 ☞ 크라이슬러, 서버러스 손에..매각규모 75억弗(상보)

360억달러 규모의 `세기의 결합`을 이끈 주인공 위르겐 슈렘프 전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은 크라이슬러 인수를 통해 닷지 트럭에서부터 메르세데스 세단까지를 아우르는 글로벌 자동차 제국을 꿈꿨다.
 
일본 미츠비시 모터스 인수를 추진했고, 현대자동차와의 제휴도 꾀했다.

그러나 그는 크라이슬러 인수 후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005년말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임기를 2년 남겨둔 채였다.

`세기의 결합`이 깨지기까지 시장의 평가는 냉엄했다. 9년전 남부럽잖을 스타급으로 떠올랐던 그는 이제는 회사를 망친 주범으로 재차 지목되고 있다. 

◇슈렘프 전 회장, `스타`에서 `회사망친 장본인` 전락 
▲ 위르겐 슈렘프 전 회장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결합으로 자동차 제품군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지만, 호언장담과 달리 회사 가치가 뚝 떨어졌다. 때문에 슈렘프 전 회장에겐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지난 2004년 미츠비시가 대대적인 손실을 기록하자 투자를 전면 철회했고, 같은 해 현대차(005380) 지분 10%도 팔아버렸다.
 
그렇지만 크라이슬러는 이미 2000년부터 적자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2001년 6억6200만달러의 적자를 내자 주주들은 슈렘프 전 회장의 사임을 종용했다.
 
크라이슬러는 지난 1분기에도 9억800만달러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회계 기준이 올해부터 바뀌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엔 6억800만달러의 손실을 냈다. 리 아이아코카 전 최고경영자(CEO)가 파산보호 상태에서 회사를 구해낸 이래 세 번째로 큰 손실 규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다임러크라이슬러 주가는 합병 1년 반 뒤까지 절정을 이뤘지만, 떨어지기 시작한 이래 회복을 꾀하지 못했다.

슈렘프 전 회장 사임 소식이 전해진 2005년 7월28일 주가가 11% 이상 뛰기도 했지만 일시적이었다. 지난 1998년 11월17일 합병사 주식이 거래되기 시작한 이래 다임러크라이슬러 주가는 15% 하락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비판 주주 연합 대표이자 슈렘프 전 회장에 대한 전기의 저자이기도 한 위르겐 그래스린은 "슈렘프는 확실시 다임러 역사는 물론 독일 주식회사 역사상 회사 자본을 가장 크게 망친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독일 최대 민간 투자자 연합 DSW의 대변인인 위르겐 쿠츠도 "다임러와 크라이슬러 합병은 이같은 결합이 얼마나 짧은 기간에 대규모 자본을 망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합이)너무 늦었고, 너무 비싸게 이뤄져 주주들에게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아이아코카 전 CEO도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결합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제체 회장 회생노력 `역부족`..매각 카드 불가피
▲ 디터 제체 회장

 
슈렘프 전 회장의 뒤를 이은 디터 제체 회장은 구원투수가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헤미 V-8 엔진을 장착한 크라이슬러 300C 세단과 램(Ram) 픽업트럭 등 인기 모델을 도입해 회사를 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솔린 가격 급등에 수요 부진까지 겹치며 업황 전체가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던 터라 회사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노조 반대로 비용 절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차별화할 첨단 기술 개발도 이뤄지지 못했다.
 
제체 회장은 결국 지난 2월초 "모든 가능성이 있다"며 매각 가능성을 내비치기에 이르렀다.
 
그의 발언에 사모펀드에서부터 `기업 사냥꾼` 커크 커코리언, 제너럴모터스(GM)와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까지 인수 희망자가 몰려들었고 최종 승자는 서버러스로 결론났다. 그러나 매각 규모는 합병 규모의 5분의 1 토막 밖에 되지 않았다.  

◇서버러스, 대대적인 수술 나설까..美 업계 재편 `회오리` 예상도   
 
서버러스는 인수 자금 75억달러로 지주회사 `크라이슬러 홀딩`을 만들고, 이를 통해 크라이슬러에 60억5000만달러를 수혈할 예정이다. 50억달러는 산업시설에, 10억5000만달러는 금융 서비스 부문에 투입된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서버러스로부터 13억5000만달러를 받지만, 16억달러를 인수 완료전 토해내야 한다. 크라이슬러의 현금 흐름을 보조하기 위해서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사명을 다임러로 되돌릴 예정이다.
 
서버러스는 현재 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인 톰 라소다의 직책을 유지할 방침이지만, 이번 합병의 자문을 맡았던 다임러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의 볼프강 베른하르트, 포드 출신의 데이빗 써스필스 등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줄 예정이다.
 
수익을 최선으로 하는 서버러스의 인수로 크라이슬러엔 고강도 구조조정 예상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고용보장을 주장해 왔던 전미자동차노조(UAW)를 어떻게 무마시키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노조 반발을 무마하고 크라이슬러의 비용절감 숙제를 해결한다면 GM과 포드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업계 전반의 일대 변화도 예상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망했다. 연금 등 노동비용 증가로 고전해 온 이들 업체들에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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