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빨간 현대 수박의 조상은 아프리카 수단 ‘코도판 멜론’

2021.05.26 19:00
수박의 기원 추적
Pixabay 제공
픽사베이 제공

여름 과일의 대명사 수박.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수박을 맛보는 것은 천사들의 음식을 아는 것”이라고 칭송했다. 인간이 수박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약 5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4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이 지금과 같은 달콤한 수박을 디저트로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과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수박의 기원이 미스터리였다. 지금 사람들이 주로 먹는 수박(Citrullus lanatus)은 분류학적으로는 박과(Cucurbitaceae)에 속하는 식물이다. 오이, 호박, 참외, 머스크멜론 등과 같은 과에 포함된다. 


과학자들은 수박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재배됐으며, 이후 지중해 국가를 거쳐 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남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유자 멜론(Cirtrullus amarus)이 수박의 조상인지, 서아프리카에서 자라는 에구시 멜론(Citrullus mucosospermus)이 수박의 조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까지는 남아프리카의 유자 멜론이 수박의 조상이었을 것이라는 이론에 무게가 더 쏠렸다. 


수전 레너 미국 세인트루이트 워싱턴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다양한 품종의 수박 유전자를 비교 분석해 현대 수박이 유자 멜론도 에구시 멜론도 아닌 제3의 품종에서 진화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북동아프리카의 수단 지역에서 재배하는 코도판 멜론(C. lanatus)이 현대 수박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4일자에 발표했다. 코도판 멜론은 씁쓸한 맛이 없고 과육이 있으며 속은 흰색이다. 


연구진은 수박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독일 뮌헨식물원과 미국 뉴욕주 이타카의 코넬식물원에서 코도판 멜론을 포함해 수박의 조상으로 거론되는 여러 품종의 씨앗을 심어 직접 키웠다. 그리고 각 품종의 게놈을 분석해 유전적 차이를 조사했다. 게놈 해독에는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와 일루미나의 시퀀싱 장비가 사용됐다.  


조사 결과 연구진이 사용한 현대의 수박 품종(97103)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품종은 코도판 멜론이었다. 이들 두 품종 사이에는 유전자 1만5824개가 달랐다. 연구진은 코도판 멜론이 진화 과정에서 쓴맛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잃어버렸고, 그 결과 지금 수박처럼 단맛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400개 이상의 대립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코도판 멜론의 속살이 흰색인 이유에 대해 빨간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당 함량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짝을 이루며,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적 번식을 통해 흰색 대신 지금의 빨간색 속살을 가진 수박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긍표 중앙대 생명자원공학부 식물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박과 식물 안에서는 수박과 유전적으로는 오이가 가장 가깝다”며 “그간 유자 멜론이 현재 수박에 가장 근접한 야생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수박 재배종의 기원이 코도판 멜론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코도판 멜론과 현대 수박의 게놈을 비교하면서 병충해에 강한 질병 저항 유전자 3개도 확인했다. 레너 교수는 “최근 재배되는 수박은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져 곰팡이, 바이러스, 벌레 등에 의한 질병에 취약하다”며 “이번에 발견한 질병 저항 유전자 3개를 이용해 병충해에 강한 수박 품종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재배종과 가장 가까운 코도판 멜론에서 저항성 유전자가 확인된 만큼 향후 분자 육종 등을 통해 질병에 강한 수박 품종을 개발할 때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수박 연구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다. 2013년과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유전학’에는 수박의 유전자 지도가 공개됐는데, 이 연구도 중국 연구진이 발표했다. 이 교수는 “한국 수박은 육종 기술을 이용해 세계에서 당도가 가장 높고 과육이 아삭해 인기가 많다“며 “최근 중국에서도 이른바 호피 무늬가 특징인 한국 수박으로 품종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