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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층 건물 양산…이상한 ‘초고층 재난관리법’

   
지난 9일 오전 울산 남구 주상복합건물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로 연기가 퍼져나가고 있다. <연합>

높이 200mㆍ50층 이상 건물

30층마다 피난안전층 의무화

건물주, 손실 줄이려 높이 제한

113mㆍ33층 울산 삼환아르누보

규제 대상 아닌데도 2개층 활용

재난 대응력 높여 대형 참사 막아

전문가 “층수 상한선 고집 버리고

준초고층 안전대책 재정비해야”



획일적인 건축물 규제가 한국 특유의 ‘마천루 상한선’과 기형적인 승강기 기준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초고층 규제를 피하기 위해 49층 아파트가 급증하고, 불합리한 피난용 승강기 기준 탓에 ‘피난층 전용 승강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최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울산 주상복합건물(삼환아르누보)은 피난안전구역 덕분에 사상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15층ㆍ28층 피난대피층과 옥상으로 대피한 77명이 전원 구조됐다.

현행 ‘초고층 재난관리법(초고층 및 지하 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대한 특별법)’에 따르면 높이 200m 또는 50층 이상인 초고층 건물은 30층마다 한 층을 모두 비워 피난안전구역(피난안전층)으로 만들어야 한다. 2010년 부산의 38층 주상복합 마린시티 우신 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생긴 규정이다. 국내 최고층인 123층 서울 롯데월드타워엔 20층마다 1개씩 총 5개의 대피층이 있다.

울산 삼환아르누보는 높이 113m의 33층짜리 건물로 피난안전층 의무설치 대상이 아닌데도, 두 곳에 설치해 참사를 막았다. 삼환아르누보처럼 준초고층 건물인데도 피난안전층을 설치한 곳으로는 광교중흥S클래스, 평택 힐스테이트 고덕스카이시티, 세종 리더스포레 등이 있다.

한 층을 통째로 비워야 하는 피난안전층은 건물주 입장에선 꽤 큰 손실이다. 분양해야 하는 층을 통째로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와 심의위원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사전재난영향성검토 역시 리스크 투성이다. 한국에서 초고층 규제 대상(50층ㆍ200m)을 피해 49층으로 짓는 건물이 유독 급증하는 이유다. 서울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뚝섬 부영 호텔ㆍ아파트, 여의도 MBC부지 복합시설, e편한세상 일산 어반스카이, 해운대 그랜드호텔 등이 모두 49층이다.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전임회장인 정광량 동양구조안전기술 대표는 “49층 이하 준초고층 건축물은 피난층 또는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계단을 설치하면 된다”면서 “피난안전층을 비롯해 초고층 건물에 대한 복합규제를 피하기 위해 각 도시의 랜드마크 빌딩이 모두 49층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국내 31층 이상 고층건물 1912개동 가운데 50층 이상 초고층은 103개동으로 5.4%에 그친다. 반면 31∼49층은 94.6%(1809개동)로 압도적으로 많다. 규제를 피해 49층 마천루 상한선이 만들어진 셈이다. 정 대표는 “50층과 49층은 1개층 차이로 재난 발생 시 대응력이 완전히 달라진다. 삼환아르누보의 경우엔 사람 안다치고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다.

스프링클러 설치기준 역시 신축 건물의 층수 상한선으로 작용하던 때가 있었다. 과거 소방법은 16층 이상 공동주택만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었다. 그러자 15층짜리 공동주택이 한때 급증했다. 이후 2004년(11층 이상)과 2017년(6층 이상) 스프링클러 설치대상이 꾸준히 확대되면서 특정 층수 건물이 늘어나는 경우가 사라졌다.

피난용 승강기도 규제로 인해 기형적인 기준이 만들어졌다. 30층 이상 건물은 직통계단 이외에도 피난용 승강기를 따로 설치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승객용으로 쓰다가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하면 피난용으로 쓸수 있도록 만든 고성능 승강기다. 문제는 피난안전층이 있는 건물과 없는 건물 간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다보니 모든 층에서 승강기가 다 서면 피난시간이 늘어 되레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그러자 서울시는 2016년 ‘초고층 건축물 승강기설치 가이드라인’에 ‘피난층전용 승강기’라는 새 개념을 도입했다.

국내 1위 소방전문업체인 한방유비스의 황현수 대표는 “피난용 승강기의 기본 개념에 충실해 제도를 운영하면 되는데, 자꾸 땜질식으로 규정을 만들다보니 외국에선 볼 수 없는 ‘피난층전용 승강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면서 “피난층 여부에 따라 피난용 승강기를 운영하는 식으로 규정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광량 대표도 “울산 화재사고를 본보기로 피난안전층과 외부 마감재, 피난용 승강기 등 준초고층 건물의 안전대책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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