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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연꽃축제

[[연꽃]]연못에 연꽃이 없더라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06.09.10|조회수731 목록 댓글 0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 / 법정스님

 

 

요즘 강원도 고랭지에는 감자꽃이 한창이라 더러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엽게 피어난 그 꽃과 은은한 향기에 반쯤 취할 때가 있다. 감자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는 이 고장에 와 지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감자를 먹을 때 그 꽃과 향기도 함께 음미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식탁은 보다 풍성하고 향기로워질 것이다.

 



풀과 나무는 다들 자기 나름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웃을 닮으려 하지 않고 패랭이는 패랭이답게, 싸리는 싸리답게 그 자신의 삶을 꽃피우고 있다. 생명이 깃들여 있는 것은 어떤 형태로건 저마다 삶의 가장 내밀한 속뜰을, 꽃을 피워 보이고 있다. 그래야 그 꽃자리에 이 다음 생으로 이어질 열매를 맺는다.

 

○ 과시 수단이 된 꽃
우리들이 살아가는 고달프고 팍팍한 나날에 만약 꽃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꽃은 단순한 눈요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곱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우리 이웃이다.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과 조화를, 거칠고 메말라가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이 열어 보이면서 깨우쳐 주는 고마운 존재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밥주머니를 채우는 먹이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때로는 고기 한근보다 꽃 한송이가 더 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위장을 채우는 일과 마음에 위로를 받는 일,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중요한 몫이다.


그런데 이렇듯 아름답고 향기롭고 조촐한 꽃이 어떤 과시나 과소비로 전락된다면,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꽃에 대한 모독이요 고문이다. 단 몇시간을 치장하기 위해 그 많은 꽃들을 꺾어다 늘어놓는 일은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할지라도 그것은 꽃다운 일이 못된다. 장례식을 비롯하여 행사장에 무더기 무더기로 동원되어 시들어가는 꽃들을 대할 때마다 탐욕스럽기까지 한 인간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거부반응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무고한 꽃들을 괴롭히지 말 일이다. 과시와 허세와 탐욕으로 여리고 사랑스런 꽃을 짓밟지말 일이다.


7월은 연꽃이 피는 계절. 엊그제 전주 덕진공원에 가서 연꽃을 보고 왔다. 해마다 7월 중순이면 마음먹고 덕진에 가서 한나절 연못가를 어정거리면서 연꽃과 놀다가 오는 것이 내게는 연중 행사처럼 되어있다.


장마철이라 그날은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다른 구경꾼도 없었다. 우산을 받쳐들고 연못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서 연꽃만이 지닌 신비스런 향기를 들으면서(맡는다는 표현은 좀 동물적이니까) 연잎에 구르는 빗방울을 한참 지켜 보았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방울도 연잎에서는 겨우 좁쌀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함께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없이 쏟아버리는데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 보면서, 아하 연잎은 자신의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연꽃을 제대로 보고 그 신비스런 향기를 들으려면 이슬이 걷히기 전 이른 아침이어야 한다.

 

○ 종교적 편견에 수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독립기념관에 들러 보았다. 한가지 일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존경하는 원로 화가로부터 작년에 들은 말인데, 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 정원에 대해서 관계기관으로부터 자문이 있어, 연못에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련을 심도록 했다. 그래서 화가가 몸소 나서서 멀리 지방에까지 내려가 어렵사리 구해다가 심었다.


그후 연이 잘 크는지 보기 위해 가보았더니, 아 이 무슨 변고인가, 연은 어디로 가고 빈 못만 덩그러니 있더라는 것.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빈 연못으로 있는지 그 까닭을 알아봤더니, 새로 바뀐 관리책임자 되는 사람이 왜 이런 곳에 불교의 꽃을 심어 놓았느냐고 화를 내면서 당장 뽑아 치워버리라고 해서 그리 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안내판에는 「백련못」이라고 똑똑히 써 있었는데 8천평 가까운 그 백련못에 연은 한포기도 없었다.


이런 현상은 독립기념관만이 아니고 경북궁과 창덕궁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연꽃철이 되어 혹시나 해서 어제 빗길을 무릅쓰고 경복궁과 창덕궁의 비원을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경복궁 서북쪽에 큰 연못이 있어 나는 서울근교에 살때 연꽃을 보러 일부러 찾아간 적이 몇차례 있었다. 거기 연못속에 향원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송대의 한학자가 연꽃을 기린 글 ‘애련설’에서 따온 이름으로,연꽃 향기가 멀리서 은은히 풍겨온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연못에는 연꽃도 그 향기도 자취가 없이 비단 잉어떼의 비린내만 풍기고 있었다. 경회루 연못도 마찬가지였다.
비원에는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에서 따온 부용정과 부용지가 있지만 역시 연꽃은 볼 수 없었다. 불교에 대한 박해가 말할 수 없이 심했던 조선왕조때 심어서 가꾸어온 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뽑혀나간 이 연꽃의 수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꽃에게 물어보라. 꽃이 무슨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 불교 경전에서 연꽃을 비유로 드는 것은 어지럽고 흐린 세상에 살면서도 거기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다. 불교신자들은 연꽃보다 오히려 백합이나 장미꽃을 더 많이 불전에 공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동아일보  1993-07-25  05면  (해설)  판  칼럼. 논단 >
[2001년 6월 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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