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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기의 사랑 그리고 마릴린 먼로

작성자묵은지|작성시간16.08.21|조회수645 목록 댓글 0

세기世紀 사랑 그리고

마릴린 먼로


글,편집: 묵은지

아주 오래전의 일로 기억되는데 언젠가 T.V에서 흘러간 명화(名畵) 시리즈로 방영(放映)했던 '마릴린 먼로'와 '톰 이웰'이 주연(主演)한 영화 '7년만의 외출'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영화에서 확실하게 기억되는 건 마릴린 먼로가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스커트를 급히 내리는 유명한 장면(場面)이 나옵니다. 너무도 그 모습이 매혹적으로 보였는지 '심쿵'한 사내들이 지금까지 수없이 패러디로 연출 했던 것으로 아는데 그만큼 이 포즈는 마릴린 먼로의 상징(象徵)적인 것으로 되었습니다. 묵은지가 몇 해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캘리포니아 유니버샬시티에 있는 '유니버샬 스튜디오'를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볼거리가 풍부(豊富)한 덕에 정신없이 구경 삼매경(三昧境)에 빠졌었는데 어디선가 화사(華奢)한 옷차림의 여인이 밝은 미소로 다가와 친절히 말을 건네더군요. 그 여인이 바로 마릴린 먼로로 분장한 그 곳 요원(要員)이었습니다. 반가움의 표시로 격한(?) 포옹(抱擁)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기념 사진까지 같이 촬영을 하였는데 사진에서 느껴지나요? 그녀의 풍만(豊滿)한 몸매가...ㅋㅋㅋ 물어 뭐하겠습니까? 묵은지는 이 날 꽤나 흥분(興奮)이 되면서 기분이 아주 "엄지척, 베리 굿~!"이었습니다.    

아무리 분장을 했다 하더라도 미국 땅에서 묵은지를 감싸고 있는 여인이 다름아닌 바로 세기(世紀)의 사랑을 나눴다는 '마릴린 먼로'라니...묵은지는 잠시 정신(精神)이 몽롱(朦朧)했었습니다. 아니 황홀(恍惚)했다고나 할까요? 그 시절(時節), 세상의 모든 남자들의 연인(戀人)이라면 좀 과장된 표현(表現)일까요? 그 섹시의 심볼이며 세상의 모든 '로맨티스트'들의 온갖 부러움을 독차지한 마릴린 먼로를 묵은지는 똑똑히 기억(記憶)하고 있었기에 흥분(興奮)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歲月)이 흐른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먼로의 일생(一生)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묵은지가 먼로에 대해 너무 과(過)한 부러움을 사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릴린 먼로는 그 시대(時代)에 최고의 사랑을 구가(謳歌)하고 짧은 행복(幸福)을 누리다 요절(夭折)한 그런 여인으로 떠올렸는데 결코 그런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찌보면 그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서둘러 세상을 떠난 비운(悲運)의 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릴린 먼로는 세계 대공황(大恐慌)이 일기 직전인 1926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아버지도 모르는 사생아(私生兒)로 태어났으며 정신적 장애(障碍)를 가진 어머니로 인하여 부득이 하게 어머니의 품을 떠나 고아원에 맞겨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 후 고아원을 나온 먼로는 양부모(養父母)를 만났으나 양부(養父)에게 성폭행(性暴行)을 당하는 등 당시(當時)의 혼란스러운 세상 만큼이나 어릴적부터 심한 삶의 고통(苦痛)속에 성장(成長)을 하였던 것입니다. 먼로가 처음, 같은 학교 연극반(演劇班)에서 만난 '제임스 도허티'와 결혼을 하는데 이 때 나이가 16세였습니다. 두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한 것 보다는 생활고(生活苦)로 인한 타개책(打開策)이었으며 결국 4년후에 이혼(離婚)을 하고 근처 군수공장(軍需工場)에서 페인트 칠을 하는 잡부(雜夫) 일을 하며 생계(生計)를 꾸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잡부로 일을 하고 있다지만 그 뛰어난 몸매와 미모(美貌)는 누구에게라도 금방 눈에 띄게 되는가 봅니다. 이 지역(地域)을 드나들던 영향력(影響力)있는 사진작가(寫眞作家)의 눈에 들은 먼로는 모델로 발탁(拔擢)되는 행운을 얻게되고 처음 누드모델로 활동을 하게됩니다.이를 계기(契機)로 먼로는 영화(映畵)의 단역(端役)으로 출연(出演)을 하게 되었고 이 후로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을 하면서 차츰 영화계(映畵界)에서 주목(注目)을 받기 시작합니다.   


먼로는 비록 단역이지만 비중(比重)있는 배역(配役)으로 '쇼킹 미스 필그림'이라는 영화에 데뷔, 그 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중(大衆)들에게 차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는데 1953년 섹시한 엉덩이 걸음이 돋보인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일약(一躍)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 때부터 먼로는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돌아오지 않는 강', '뜨거운 것이 좋아','7년만의 외출' 등 수많은 영화를 히트 시키면서 엄청난 인기(人氣)를 누리는 배우(俳優)가 되었습니다. 특히 먼로의 표정(表情)에서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하게 주시(注視)하는 시선(視線)은 가히 뭇 남성들의 심장(心臟)을 흔드는 백치미(白痴美)의 진수(眞髓)를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한창 인기(人氣)를 몰아가던 이 때 먼로에게 비극(悲劇)의 사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野球選手)인 '조 디마지오'와의 운명적(運命的) 만남이 비극의 그 

시초(始初)가 될 줄이야...디마지오는 뉴욕 양키스의 선수 였는데 지금까지 어떤 선수도 깨지 못한 56경기 연속안타(連續安打)의 놀라운 기록(記錄)을 세우며 1955년 명예(名譽)의 전당(殿堂)에 영광(榮光)스럽게 헌액(獻額)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디마지오는 먼로를 만날 즈음에는 이미 부상(負傷)으로 한 물간 신세(身世)의 선수였고 먼로는 26세의 한창 재기발랄(才氣潑剌)한 인기정상(頂上)의 여배우(女俳優) 였습니다. 누가봐도 디마지오는 먼로에 비교(比較)해 경상도 말로 택도 없는 존재(存在)였습니다. 하지만 남녀(男女) 사이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했던가요? 그들은 1954년 세상의 이목(耳目)을 집중(集中)받으며 부러움 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먼로와 디마지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보수적(保守的)이고 권위적(權威的)인 디마지오는 자유분방(自由奔放)한 먼로가 늘 탐탁치 않았고 그때마다 다툼과 폭력(暴力)을 휘둘러 먼로의 눈가에는 항상 멍자국으로 진한 눈화장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먼로와 디마지오가 파경(破鏡)을 맞는 결정적(決定的)인 계기를 맞게 되는데 바로 계획에도 없었던 한국을 갑자기 방문(訪問)해 정전(停戰)중인 미군(美軍)을 위한 위문공연(慰問公演) 일정(日程)에 들어간 것입니다. 자신과 상의(相議)없이 일방적으로 진행(進行)된 스케줄에 격분(激憤)한 디마지오가 먼로에게 강한 불만(不滿)을 갖고 심한 다툼과 폭력을 휘두른 것입니다.   

디마지오의 폭력은 극(極)에 달하면서 심지어는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지경에 까지 오게 되었고 이를 견디다 못한 먼로는 결국 결혼한지 270여 일만에 이혼을 결심(決心)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먼로는 지속적(持續的)인 폭력에 시달리면서 두려움과 정서불안(情緖不安) 등으로 알콜과 약물중독(藥物中毒)까지 겹치면서 정신적(精神的)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졌습니다. 그 와중에 먼로는 당대(當代) 최고의 극작가(劇作家)로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아서 밀러'와 세번재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아서 밀러 역시 '매카시즘'에 시달리며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로 몰리면서 이 결혼도 곧 막(幕)을 내리게 됩니다. 매카시즘이란 그 당시 '조지프 매카시'라는 공화당 상원의원이 자신의 정치적(政治的)인 생명을 연장(延長)키 위한 이념적(理念的) 정치공작(政治工作)으로 그 당시 미국내 정치상황을 복잡한 이념적 사회문제로 몰고 간 꽤나 시끄러운 사건(事件)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매카시 의원이 "미국내 공산주의자가 있으니 색출(索出)하자"라는 주장을 했던 것인데, 그때의 세상은 먼로의 행복을 허용(許容)하지 않으려 했는가 봅니다. 어떻게든 마음을 잡고 재기(再起)를 하려는 먼로에게 또다시 이혼이라니... 세상은 자꾸만 고달픈 인생 역경(逆境)을 떠 넘겨주기만 했습니다. 먼로는 유명세를 탄 이후, 최악(最惡)의 시련(試鍊)을 겪게됩니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스캔들로 뒤숭숭하던 때 대통령의 생일잔치에 참석한 먼로는 술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Thank you mr President'라는 자작곡(自作曲)을 불렀는데 젊잖은 좌중(座中)에도 불구하고 큰 박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역시 그녀의 섹시한 매력에 흠뻑젖어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먼로를 가까이 했다고 하는데 문제는 재클린의 질투(嫉妬)입니다. 몸에 꽉끼는 드레스를 입고 유혹적(誘惑的)인 몸짓으로 현직(現職) 대통령의 생일잔치 자리를 술에 취해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먼로가 재클린 눈에 곱게 보일리가 만무(萬無)합니다.   

재클린은 자기 남편인 케네디와 먼로의 사이를 눈치채고 먼로에 대한 증오감(憎惡感)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남편의 생일파티에 먼로가 참석(參席)한다는 소식에 격노(激怒)하여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 였는데 먼로는 이 추문(醜聞)으로 인해 촬영중인 영화에서 해고(解雇)가 되었고 대중(大衆)들의 시선을 벗어난 은둔(隱遁)생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번의 이혼과 계속되는 폭력, 약물중독과 정신적 고통으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먼로는 대중들의 시선을 피해 음지(陰地)의 생활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먼로는 은둔생활 동안 약물(藥物)을 끊고 재기(再起)를 위한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로의 재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먼로는 점점 파멸(破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먼로가 이렇게 어려운 시련(試鍊)을 당하고 있을 때 디마지오가 먼로 앞에 나타나 재결합(再結合)을 원하였습니다. 깊숙한 수렁에 빠져있던 먼로에게 디마지오의 프로포즈는 어둠을 비추는 밝은 빛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헤어진지 7년만의 재결합은 그들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기쁨으로 축복(祝福)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식을 다시 올리기로 했으며 결혼식 이틀전에 뉴욕의 센트럴파크 산책길을 두사람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여러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그날밤, 먼로는 디마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조,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해요.."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마치 유언(遺言)을 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먼로는 그다음날 알몸의 변사체(變死體)로 발견됩니다. 1962년 8월 5일, 가정부(家政婦)의 신고(申告)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확인(確認)되었는데 먼로는 자신의 침대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나체(裸體)인 상태로 엎드린채 숨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인(死因)은 약물과다(藥物過多) 복용으로 인한 사망(死亡)으로 판정(判定)이 났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죽은 뒤에도 온갖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가(家)의 음모론(陰謀論)이나 마피아와의 연루설(連累說)은 상당한 설득력(說得力)으로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로 오르내렸습니다. 실제로 디마지오는 케네디가의 음모론에 무게를 두고 평생(平生)을 케네디 일가(一家)에 대한 증오심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먼로가 죽은 후에 디마지오는 매주 그녀의 무덤에 꽃을 들고 찾았는데 무덤앞에 선 디마지오는 자신의 상습적(常習的)인 폭력과 죽음의 위험에서 먼로를 지켜주지 못한 죄의식(罪意識)으로 죽을 때까지 괴로워 했다고 합니다. 


그러게 이제와서 뒤늦게 디마지오가 뉘우치고 후회(後悔)한들 죽은 먼로가 살아 돌아오진 않을 것이고 슬퍼해 준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그저 세상과 부모를 잘못만나 짧은 생(生) 마저 불행하게 삶을 살아야 했던 마릴린 먼로가 가엽고 불쌍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기좋은 소리로 '세기의 사랑'이니 뭐니 하지만 그래봤자 그 짧은 인생, 아무 대답없는 저 세상으로 가면서 허무(虛無)하게 막을 내리고 만 것인데 개뿔...세기(世紀)의 사랑은 무슨 세기의 사랑이란 말입니까. 이미 세월(歲月)은 수 십여년이 흘러 그때의 안개속에 묻혀버린 흑막(黑幕)을 밝히기는 어렵겠지만 아직까지도 마릴린 먼로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이 살고 있는한 그 원한(怨恨)의 의혹(疑惑)들이 풀릴 때가 있을 것으로 묵은지는 믿고 싶습니다. 하여튼 디마지오 역시 자신이 죽음을 맞이 했을 때 유명(有名)한 마지막 말이 있는데 "이제 먼로를 다시 만날수 있겠군"이란 말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에구~ 살아 있을때 서로 잘 좀 하지...괜히 묵은지 마음도 짠합니다. 마릴린 먼로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많은 어록(語錄)을 남겼습니다. 어릴때부터 겪어 온 고생(苦生)이어서 인지 남다른 인생 철학(哲學)을 지녔다고들 하는데 실제 그녀가 한 말들을 알아보니 과연 명언(名言)들이 많았습니다. 평소에 독서(讀書)를 즐겨 책을 많이 읽었던 먼로는 삶 자체도 드라마틱하여 좋은 명언을 많이 남길수 가 있었던 것같습니다.         

짧은 생을 살다간 비운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이렇게 점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지만 그녀가 남긴 은막(銀幕)의 발자취와 세상에 뿌린 사랑의 향기(香氣)는 영원(永遠)할 것입니다. 비록 생을 일찍 마쳤지만 여배우로써 이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교훈(敎訓)을 남긴 그녀의 삶의 행보(行步)는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물론, 간접적(間接的)이나마 그녀의 품에 안겨 본 '심쿵'했던 묵은지의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겁니다. 

마릴린 먼로여 사랑합니다~!!!    


세기의 사랑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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