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따스해진 날씨, 이른 봄날의 창덕궁 그리고 창경궁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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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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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 오후의 창덕궁은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비와 흙이 뒤섞여 나는 냄새와 자연 친화적인 고궁의 조화가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만 같아서, 그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창덕궁으로 향하고는 한다. 그렇다고 꼭 여름에만 고궁을 찾는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늘 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고궁은 묘하게도 매번 색다른 공기를 머금고 있으니까. 조금은 따스해진 늦겨울의 오후, 나는 또 창덕궁을 찾고야 말았다.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궁궐이다. 지어진 시기는 경복궁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일종의 예비 궁궐로 사용했던 곳이다. 본격적으로 궁궐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폐허가 되면서 법궁의 역할을 떠맡았고, 이후의 왕들은 주로 창덕궁에 머물렀다.

애초에 법궁으로 지어진 게 아니어서 그럴까. 창덕궁의 구조는 네모반듯한 경복궁과는 다르게 자유분방하다. 정문에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으로 향하는 길은 무려 두 번이나 방향을 튼다. 광화문에서 근정전까지 일자로 쭉 이어지는 경복궁을 생각하면 실로 파격적인 일인 셈이다.

창덕궁은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어졌다. 지형과 주변 자연환경에 어울릴 수 있도록 전각을 배치했다.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 설계자의 의도가 담겼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창덕궁을 좋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풍경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창덕궁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할 때도 바로 이러한 점을 높이 샀단다.

어디 우리만 그랬을까. 조선의 역대 왕들도 창덕궁을 좋아했다. 경복궁보다 창덕궁에 관심을 쏟는 왕이 더 많았다. 그런 까닭에 임진왜란 직후 버려지다시피 했던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의 복원 작업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물론, 몇 번이나 화재 피해를 보았다고는 하지만.

내가 창덕궁을 둘러본 게 한두 번은 아니다만, 몇 가지 살펴보아야 할 요소는 꼭 다시 한번씩 짚고 넘어간다. 마치 복습이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볼 때마다 즐겁거든. 앞서 언급했던 '두 번 꺾여 들어가는 어도' 이외에도, 다양한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다. 청색 기와가 대표적이다. 지나치게 비쌌던 청색 기와는 왕실에서도 쉽게 쓸 수 있을 만한 재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창덕궁 내에는 청색 기와를 얹은 건물이 있는데, 바로 선정전이다. 왕의 집무실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당시 사람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왕의 개인적인 공간이었던 희정당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탄자와 유리 창문, 근대식 부엌 등이다. 전기를 사용해 불을 켜는 가로등이나 샹들리에 등도 인상적이다. 고급 호텔의 현관에서 나 볼 법한 풍경을 이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왕들을 태웠던 차량이 이곳에서 대기하기도 했단다. 1800~1900년대 조선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는 보수 공사 중.

낙선재는 다른 곳과는 다른, 뭔가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족인 영친왕 내외가 살았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헌종이 후궁을 위해 마련했던 공간인데, 단청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덕분에 궁궐 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소소한 분위기가 가득 감돌고 있다. 그 뒤로는 왕의 정원인 후원이 이어진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고 해서 비밀의 정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데, 겨울철에는 사실 크게 누릴 수 있을 만한 곳은 아니다. 만약 둘러보기를 원한다면 미리 후원 입구로 찾아가 입장 가능 여부와 예약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 것을 권한다.

/ 창덕궁 /

- 위치: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 관람시간: 1~2월 09:00~18:00 (17:00 입장 마감)

- 관람요금: 3,000원 (만25세~만64세) / 후원 5,000원 별도

- 휴관일: 매주 월요일


창경궁

창덕궁 후원 입구가 있는 곳에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 존재한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보조 기능을 수행했던 궁궐로, 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태종이 만든 공간이다. 원래 이름은 수강궁. 창경궁은 성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궁궐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단다. 명정전과 문정전, 통명전 등을 세우고 창덕궁의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창경궁 역시 부침의 역사를 숱하게도 겪었다. 시작은 임진왜란이었다. 전쟁 중에 도성 내에 있던 모든 궁궐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는데, 창경궁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직후에 가장 먼저 창덕궁과 창경궁을 복원했지만, 10여 년 후에 이괄의 난으로 다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화재가 더 발생했다고.

1900년대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등이 들어서며 공원화가 이루어졌다. 수많은 전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꾸민 것이다. 이때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뀌었다. 창경원에 있는 대온실이 그때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이다. 당시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식물원이었다. 이 창경원은 1970년대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유원지로 자리매김했다.

창경원은 1984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창경궁으로 돌아왔다. 창경원에 있던 동물원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공원화가 되어 있던 경내를 궁궐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텅 빈 채 남아 있지만, 곳곳에서 창경궁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창경궁은 2019년부터 상설 야간 개방을 한다. 은은한 조명으로 궁궐의 밤을 밝히는데, 그 모습이 꽤 아름답다. 창덕궁에 방문했다면 창경궁 야간 개방까지 함께 감상하기를 권한다. 명정전부터 춘당지, 대온실로 이어지는 야경 산책로가 매력적이니까.

/ 창경궁 /

- 위치: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 관람시간: 09:00~21:00 (20:00 입장 마감)

- 관람요금: 1,000원 (만25세~만64세)

- 휴관일: 매주 월요일

김노을
김노을 국내여행

여행작가 / 인터뷰어 협업 문의는 메일로 받습니다. travstor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