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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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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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의 셰익스피어'

어린 시절 만화 영화로 접했던,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원작으로 만나게 되었다. 훌륭한 저술가가 늘 그렇듯 '미국의 셰익스피어'이자 '미국 문학의 링컨'이라고 불린 마크 트웨인은 수많은 유명 작가에게 뮤즈가 되었고, 그의 원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두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모든 현대 문학은 이 책 한 권에서 비롯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이 작품을 제외하고는 미국 문학사를 논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이번 독서가 즐거웠던 이유를 꼽자면, 헉 핀의 자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기상천외하고 다사다난한 모험담이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도덕과 윤리'에 대한 아주 독특한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의 작품 속에서 니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불건전한 소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청소년에게 아주 유해하다. 헉은 도를 지나칠만큼 숱하게 거짓말을 할 뿐 아니라, '빌린다'는 명목하게 '도둑질'을 서슴없이 행하는 인물이다. 남의 부엌에서 양초 몇 개를 슬쩍하면서 5센트 은화를 식탁에 두고 오는 톰의 행동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욕설도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번역된 책에는 원서의 뉘앙스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지만, 문법에 어긋나는 등장인물들의 말투나 온갖 욕설이 난무한다. 흑인 노예를 '검둥이'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갱단을 조직하겠다고 하는 톰과 헉은 '누구를 털고, 누군가를 죽인다'는 표현도 서슴치 않는다.

나를 갱단에서 빼버리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죽일 가족이나 누구나가 있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른 애들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왓츤 아줌마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아줌마를 죽이면 되는 거지요.

하지만 그는 불건전한 것이 아니다. 대신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겨진다. 한마디로 그는 잘 '모른다'. 우리가 속세에서 흔하게 쓰는 욕설과 어른들이 흔하게 태우는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며, 소유물에 대한 경계심도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이 소설의 전편격인 [톰 소여의 모험] 말미에 강도들이 동굴 안에 숨겨놓은 거액의 황금을 발견하는데, 고작 소금을 쏟은 일로 액운이 올 것을 두려워하며, 액운을 막을 목적으로 판사에게 매도 증서를 받고 전부 넘겨버리고 만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시대상에 의한 학습의 결과물이다. 그 어리석을 만큼 순수한 소년은 과연 무엇을 추구할 것이며, 다음에 어떤 행동을 보여줄 것인가?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생각을 그 순수한 이성에게 투영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허클베리 핀의 신성 모독

과부댁은 자기 친척도 아닌 데다가 이미 죽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모세에 관한 일을 가지고 골통을 썩힙니다.

왓츤 아줌마는 매일마다 기도를 드리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목사가 가난한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에게 돈을 꿔주는 것이 되어 그 돈의 백 배가 되어 틀림없이 되돌아오게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단 말이제. ...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나두 이젠 그 돈을 되돌려받을 수 없게 되었고...

헉은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 미국 사회의 정신적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청교도 정신, 기독교의 도덕성과 윤리를 깡그리 무시하고 조롱한다. 또한 그러한 정신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어른들'의 세상을 꼬집는다. 판사는 허클베리 핀이 가진 6천달러를 탐하고, 왕과 공작이라 자칭하는 사기꾼들은 위선적일 뿐 아니라 사회의 암적인 존재이다.

자유 ; 도시로부터 미시시피 강으로의 탈출

헉은 더글러스 과부댁과 그녀의 동생 노처녀 왓츤의 훈육 속에서 고통스러워하지만 잘 적응해 나간다. 그러던 와중에 헉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그를 학대하고 유괴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여, '자유'로 상징되는, 미시시피 강으로 카누를 끌고 나와, 강 한복판에 있는 잭슨 섬으로 숨게되고 거기에서 흑인 노예 짐과 만나며, 비로소 모험이 시작된다. 그 후 부터는 작가 자신이 [경고문]이라는 짤막한 글에서, "이 야이가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면밀하지 않은 플롯으로 얼기설기 모험담이 이어진다.

순수한 양심의 깨달음

짓꿎은 장난 일색이자 도둑놈에 거짓말쟁이인 허클베리 핀은 반드시 '악'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순수한 이성은, 세상과 대면하며 모험 통해 점차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

검둥이한테 가서 내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기로 결심하기까지는 15분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이 일을 해내고 말았지요. 그리고 나중에 가서도 그에게 사과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이 일이 있고부터는 다시는 그에게 비열한 장난을 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짐이 그렇게까지 마음 상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아마 처음부터 그런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장난에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흑인 짐을 보며 자신의 행동을 크게 뉘우친다.

나는 이 처녀의 돈도을 저 뱀 같은 늙은이가 훔치도록 잠자코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던 도둑질과 거짓말이 때론 어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선한 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을 보며 분개하고, 그를 안티히어로antihero로서 악당을 무찌르는 악당으로 거듭나게 한다.

부패하지 않은 건강하고 풍부한 감수성과 인간성

그가 건강한 감수성과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그의 공감능력, 혹은 동정심 속에서 드러난다. 그는 사기꾼에게 속아 전재산을 빼앗길 뻔 한 고아들 뿐 아니라, 좀 전까지도 두려워하고 분개하였던 악당이 불쌍한 처지에 처하자, 그에게 마저도 동정의 시선을 건낸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 보니 왕과 공작을 가로장 위에다 올려 앉히고는 지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 이 가엾은 악당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지요. 아무리 해도 이 두 놈을 더 이상 미워할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 인간이란 다른 인간에 대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술주정꾼의 묘기를 보면서도 그의 안전을 더욱 걱정하는가 하면, 심지어 처벌받는 살인자에게마저 동정을 보인다.

비록 사람을 죽인 범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공경에 빠지게 되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나라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텐데, 내가 그런 꼴이 되면 내 기분이 어떨까 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지요.

그런 그와는 반대로 '가문의 원수'라는 이유로 서로 죽고 죽이는 두 가문의 일화는, 하찮은 명목하에 원한을 멈출 수 없는 어른들의 일그러진 가치관을 우스운 꼴로 전락시킨다.

원한이라는 건 말야. 한 사나이가 다른 한 사나이와 싸움을 하고 그 놈을 죽여. 그러면 그 사나이의 형제가 또 상대 사나이를 죽이지. 그렇게 되면 양쪽의 다른 형제들이 모두 나서서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그러다 사촌들까지 합세하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죽게 되고, 그렇게 되면 원한도 없어진다 그런 얘기지.

정신적 각성 ; 흑인 노예 '짐'의 자유에 대하여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일리노이주 케이로에 가까워지자 곧 자유인이 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흑인 노예 짐은 환호한다. 이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헉은 자신이 흑인 노예를 도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당대 사회의 가치관과 충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지금 내 앞에는 내가 도망치는 것을 도와준 거나 다름없는 검둥이가 있는데, 자기 아들들을 - 내가 알지도 못하고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친 일도 없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애들을 훔쳐 내겠다고까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카누를 타고 그를 고발하러 가던 중, 그 행동이 더 큰 가책을 불러일으킬거라 생각하고 단념하며, 뗏목에는 천연두에 걸린 아버지가 있다는 거짓말로 무장 경비병을 따돌린다.

가만 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본댔자 소용없는 일 아닌가?

짐이 아주 고마워하며, 나더러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진 가장 좋은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하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라는 작은 외침으로, 시대의 윤리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설사 그것이 끔찍스러운 생각이고 무서운 말일지라도 내뱉은 이상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으로 하는 것이다. 개인의 직관과 양심에 따른 행동은 사회가 정한 규범과 제약을 뛰어남는 것이라고 마크 트웨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난관이니 위험을 제공할의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그걸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머리를 짜내 많은 난관과 위험을 무릅쓰고 그 사나이를 구출해야만 그만큼 명예로운 일이 되는 거야.

이런 개구장이 같은 이유로 짐을 탈옥시키는 톰과, 그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그를 정성을 다해 돌보는 짐, 그리고 자유를 찾아 인디언 마을로 떠나는 헉의 이야기. 그 속에 '자유'와 '각성'을 통한 '평등한 인권'을 통한 갈망이 이 소설 전반에 흐르는 중요한 골자인 셈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읽은 이상, 다음 도서로서 다시 니체 (혹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짐을 가둬둘 권리 같은 건 없어!

이 지구 위를 걷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인간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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