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 영욕의 자동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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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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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동차 브랜드(7)...미국 크라이슬러


  크라이슬러는 1925년 월터 크라이슬러가 설립한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입니다. GM과 포드에 비해서는 20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1960년대 세계시장을 주름잡았었죠. 본사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있으며 포드, GM에 이어 미국내 자동차업계 순위 3위를 차지했었습니다.


  크라이슬러의 창립자 월터 크라이슬러는 증기기관차 기계공에서 GM 산하의 뷰익사장까지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는 뷰익을 나와 1919년 자동차 독자모델을 개발하면서 크라이슬러의 역사는 시작되는데 1925년 정식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초기 대형 럭셔리 모델인 임페리얼을 내놓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죠.
  1930년대에는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을 최초로 차체에 적용한 유선형 자동차 에어플로우를 내놓으면서 크라이슬러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게 됩니다. 시대를 초월한 이 디자인은 당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경제공황에 지친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죠. 그렇지만 1930년대에 시장점유율이 20%대까지 뛰어 오르며 미국 자동차산업의 빅3 체제가 확립됩니다. 선진적인 기술과 디자인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데요. 포드의 T형 자동차가 검정색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크라이슬러는 빨강, 파랑색의 파격적인 차를 만들었죠.


  1950년대 들어 미국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 GM의 코르벳, 포드의 선더버드 등입니다. 이때 등장한 크라이슬러의 C-300은 출력 300마력, 최고시속 206km의 빼어난 성능을 뽐내며 미국자동차의 선조모델로 평가받습니다. C-300을 이어 300B가 출시되면서 알파벳 이름을 딴 레터카 시리즈가 시작되죠. 300B를 시작으로 300C, 300D 순으로 1965년 300L까지 11개의 모델이 나왔으니까요.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크라이슬러에 먹구름이 낀 것은 1970년대의 오일쇼크였습니다. 원유값이 급등하자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차의 인기는 급락하고 대형차가 밀려난 자리에 연비효율이 좋은 일본의 중소형차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에 크라이슬러는 포드의 최고경영자였던 리 아이어코카를 사장으로 영입하며 미국정부로부터 자동차 수입규제와 자금지원 등을 받아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죠. GM이나 포드에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크라이슬러는 일본차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졌고 결국 1998년 독일의 다임러 벤츠에 흡수되고 맙니다. 다임러의 지배하에 있을 때 미국사람들은 미국내 기업부문을 크라이슬러그룹이라고 부르며 추억을 놓지 못했죠.

<크라이슬러 300>


  크라이슬러의 위기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미국내 자동차산업의 위상변화죠. 미국산업의 주역이 정보기술과 금융으로 옮아가면서 정부와 국민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고 퇴직자와 종업원의 의료비를 부담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무거워 일본자동차와 경쟁이 안된다는 이유도 있었죠.
  그러나 전문가들은 크라이슬러 위기의 진짜 원인은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개발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후로 소형차나 하이브리드차의 개발은 늘 뒤졌지요. 어쨌든 2009년에는 다임러와의 관계도 정리가 되고 이후 이탈리아 피아트와 자본의 제휴관계를 맺으면서 2011년에 피아트 계열로 편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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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도준치 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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