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속 음악가 이야기- 차이코프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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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21.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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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와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는 음악사상 전무후무한 특이한 관계로 기록된다. 두 남녀가 처음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을 때 차이코프스키는 36세였고, 폰 메크 부인은 7명의 자녀를 가진 46세의 미망인 여성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몹시 사랑한 그녀는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경제적 후원을 하겠다는 독특한 제안을 해왔다. 차이코프스키는 쾌히 승낙했고, 그후 14년간 큰 액수의 연금을 받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방대한 양의 편지는 뒷날 차이코프스키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두 남녀가 오랫동안 친밀한 서신을 주고받으면서도 왜 정작 만나기는 꺼렸을까? 그 이유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정을 나눈다는 고귀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요, 또 하나는 폰 메크 부인이 변태성욕자였던 생전의 남편에게 너무 시달려 불감증에 걸렸고,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얼음덩어리에 돌멩이를 부딧쳐보았자 무슨 열이 나오겠는가?"
이것이 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측의 지론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협주곡으론 피아노 협주곡 3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1곡을 썼다. 그런데 무슨 악연이 있었던지 지금은 명곡으로 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바이올린 협주곡은 처음에는 심한 박대를 받았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1874년 완성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 초대 원장이었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작곡했으나 루빈슈타인은 대뜸 혹평을 하며 거절했다.
"이것도 음악인가?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는 부적당하고 독창성도 전혀 없네."
화가 난 차이코프스키는 자기 작품을 잘 연주해주는 독일의 명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곡을 보냈다. 악보를 보고 감동한 뷜로는 마침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보스턴에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초연했다. 러시아 작곡가의 곡이 외국에서 초연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결과는 대성공. 그후 루빈슈타인도 이 곡의 진가를 인정하고 차이코프스키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한편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타네예프가 처음부터 혼쾌히 초연을 맡아주었다. 그때  차이코프스키는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곡은 별볼일 없을 것 같군. 내 협주곡은 퇴짜를 맞아야 명곡이 되는데 …."
과연 그의 예측대로 오늘날 피아노 협주곡 제2, 3번은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당시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작곡되었으나 아우어로부터 '연주 불가능한 곡'이라는 혹평을 받고 거절당해 아돌프 브로즈키라는 다른 러시아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초연했다. 이 곡 또한 지금은 4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드는 명곡으로 대접받고 있다.

♪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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