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프로필

2019. 7. 12. 16:56

이웃추가

어릴 때 마크 트웨인이란 작가의 이름은 기억 못했지만 <톰소여의 모험><왕자와 거지><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같은 책은 주변에 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나는 <왕자와 거지>만 읽었고 나머지 책들은 남자 아이들의 모험이야기라는 생각에 유명한 제목만 기억할 뿐. 사실 이런 책들이 너무 많다. 필독도서 목록에 있는 책들은 제목을 하도 들어 마치 시험문제 외우는 것처럼 암기된 셈이다. 속 알맹이는 몰라도 작가와 제목 연결하기 하면 아마도 줄줄 댈 수 있지 않을까. 마크 트웨인은 헤밍웨이, 윌리암 포크너, J.D 샐린저 같은 미국 작가들의 아버지로 불린다니 이 책 한 권이 미국문학사에서 갖는 위치가 짐작된다. 첫 장부터 제목이 준 선입견은 싹 사라지고 596쪽에 달하는 장편을 키득거리다, 감탄하다, 어이없어하다 금방 재미나게 읽었다. 이렇게 읽는 속도가 붙는 책은 드물지 않을까.

p.51 에 있는 헉의 아버지를 펜으로 그려보았다.

줄거리

제목 그대로 허클베리 핀이라는 열서너 살 된 한 소년이 겪는 갖가지 모험담이다. 헉 핀은 미주리 주 세인트 피터스버그 마을의 술주정뱅이의 아들로서, 같은 마을의 더글러스 과부댁의 양자가 되어 그녀의 동생인 노처녀 왓츤의 훈육을 받는다.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에 때로는 염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대로 잘 적응한다. 이 무렵 헉 핀이 뜻하지 않게 돈을 손에 넣었다는 얘기를 듣고 술주정뱅이인 아버지가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글은 배워서 뭐하냐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는 급기야 헉을 산속 오두막으로 납치하여 감금한다. 여기서부터 헉의 모험은 시작된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아버지로부터 탈출하여 미시시피 강 한복판에 있는 잭슨 섬에 숨는다. 거기서 도망나온 왓츤의 흑인 노예 짐을 만나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남쪽으로 여행한다. 백인 소년과 흑인 노예가 겪는 갖가지 사건들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아칸소 주 파이크스빌에 도착한 헉과 짐이 이모집을 찾아온 톰 소여와 벌이는 한바탕 대소동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미시시피 강(Mississippi River)

미시시피 강 (출처- 위키백과)

📍나일, 아마존, 양쯔 강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긴 강이다.(6,210km)

📍아마존, 콩고에 이어 유역면적이 세계 3위

📍미국 50개 주(州)에서 31개 주가 포함되고 캐나다 서스캐츈, 앨버타 주의 일부가 포함됨

📍아메리카 인디언의 말로 '위대한 강'이란 뜻

📍강 유역에는 밀, 옥수수, 목화, 쌀, 사탕수수 농업지대이고 납, 아연광이 분포해 있다.

뗏목 생활이란 여간 멋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러러보면 온통 별이 사방에서 반짝이는 하늘이 있고, 우리들은 벌렁 드러누워 별들을 쳐다보며 누가 별을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저절로 생긴 것일까 하고 토론을 벌이곤 했지요 - 짐은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라 했고, 나는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렇게 많은 별을 만들자면 아마 여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중략)

밤중에 한두 번 증기선이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따금 연통에서 불꽃을 무수히 뱉어놓았고, 그 불꽃은 마치 비처럼 강 속으로 떨어져내려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p.271

열서너 살 짜리 헉이 강을 제 집 앞마당에 놀듯이 휘젓고 다니는 것을 읽다가 미시시피 강을 검색해보고 역시 녀석의 청산유수같은 언변만큼이나 대담용맹함에 다시 놀랐다.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강 서쪽 하니벌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신문사 식자공, 견습기자를 하다가 미시시피 강 수로 안내인 훈련을 받고 정식 면허증 까지 받은 마크 트웨인의 자신감이 묻어나온 걸까. 동네 실개천도 아닌 엄청난 폭의 강에서 뗏목 하나로 마치 침대 위에서 편안한 잠을 자듯 종횡무진이다. 자신이 고향집 처럼 느끼는 강에도 여전히 홍수와 급류, 암초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지만 강과 뗏목은 자유, 안정, 평화,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하고 강변과 그 주변 마을들은 악의, 기만, 폭력을 상징한다고 옮긴이 김욱동 교수는 해설을 덧붙였다. 읽으면서 헉과 짐의 상황상 늘 남의 눈을 피해 밤에 이동하며 뗏목 위에서 별빛 하늘아래 누워 적막한 강물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땐 나도 같이 옆에 누워있는 평화를 느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죄가 깨끗이 씻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곧장 기도를 드리지 않고 편지를 아래에다 내려놓고서 앉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참 이렇게 되기가 천만 다행이야, 하마터면 지옥에 떨어질 뻔했잖아 하고 말이지요. 그러고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강을 따라 내려오던 우리들의 여행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짐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낮이면 낮, 밤이면 밤, 어떤 때는 달빛이 비치는 밤, 또 어떤 때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우리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웃어대면서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왔지요.(중략)

짐은 늘 나를 '귀염둥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며 귀여워해 줬고, 나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고 기꺼이 해주었지요. 맨 마지막으로 나는 뗏목에 천연두 환자가 타고 있다고 하여 짐을 구해냈을 때 짐이 아주 고마워하며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하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p.450

소설이 발표된 것은 1884년, 17세기 초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식민지 개척자들의 청교도 정신이 점차 빛을 잃고 남북전쟁이후 급격히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당시 미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기독교 윤리였다. 왓츤 아줌마에 배운 성서의 내용이 알게 모르게 배어있는 헉은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내면의 갈등을 많이 한다. 짐은 어쨌든 탈출한 흑인 노예로 현상금이 걸려 있는 처지다. 강을 따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짐이지만 탈출한 노예를 은닉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정신이 번쩍난 헉은 짐의 주인인 왓츤 아줌마에게 짐의 소재를 알리는 편지를 썼다가 결국엔 조금도 거리낌없이 편지를 북북 찢으며 말한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난 암만 좋은 일을 하려고 별러도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을 하는 걸 배우지 못한 인간한테는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위급한 상황에 부딪히면 뒤를 밀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니 결국 손을 들고 말지요.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가만 있자 내가 옳은 일을 해서 짐을 남의 손에 넘겨 주었다고 하면,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기분이 좋지 못했을거야.- 아마 지금과 같은 기분이었을 거야. 나는 다시 생각해보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이 들고, 나쁜 짓을 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똑같다면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본댔자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만 딱 막히고 말았지요. 이 문제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젠 이 일로 마음을 쓰는 일을 아예 그만두고, 이제부터는 그때 그때에 제일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p.222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헉이 사용하는 남서부 지방 사투리와 비어, 속어등으로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불건전한 도서로 비난을 많이 받았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도 미국 전역에 걸쳐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사람을 속이는 술수나 입만 열면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는 거짓말이 어찌나 능수능란한지 감탄스럽지만 헉을 악동으로만 취급할 순 없다. 사건을 겪을 때마다 풍부한 감수성으로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다양한 인간들의 악랄함을 보면서(그에 비하면 헉의 비행은 애교스럽다) 절망하기도 하고 자신 역시 천박하고 비열하다고 느낀다.

책 첫 줄에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라고 시작되는데 그 톰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헉과 합작하여 헛간에 갇힌 흑인 노예 짐을 탈출시키는 내용은 '기상천외, 얼토당토' 어떤 표현을 써도 모자른다. 일을 당한 톰의 샐리 이모조차도 기막혀 하며 "사내녀석들이란..."하고 넘어가주며 이야기가 끝나지만 귀여운 악동들의 긴 여행 속에 작가 마크 트웨인이 담고자 했던 이야기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기독교 윤리를 기반으로 건국된 짧은 미국 역사에서 남북전쟁, 노예제도로 빚어진 미국사회의 신분과 법규, 틀을 우리나라로 치면 중1 정도의 남자아이가 '움직이는 길' 이라는 별명을 지닌 미시시피 강을 거침없이 쏘다니며 한껏 무시한 셈이다. 하지만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해도 괜찮다. 빠른 물살을 타고 강줄기를 따라 내빼는 뗏목의 속도만큼 쉴 새없는 이야기의 재미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사랑받는 명작인가보다.

민음사 책 겉표지의 명화는 미국작가 Winslow Homer(1836~1910)의 Boys in a Pasture 이다. 마치 작가가 이 작품을 읽고 그린 듯 두 소년이 헉과 톰처럼 평화롭게 초원에서 쉬고 있다. 저 토실한 맨발을 간질간질 간지르고 싶다.

Janet
Janet 일상·생각

To Write is To Live 삶과 글이 닮아가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