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0부터 100까지 런던101] -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나다: 82점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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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영국문화원 공식블로그

2018. 1.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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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지닌 터너’라고 불리는 노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 전시회

빅토리안 시대의 고풍스런 골목골목과 함께 현대 스트리트 아트가 공존하는 런던에는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이러한 비밀스런 런던 스토리 101가지를 담은 책, 『0부터 100까지 런던101』이 출간되었는데요, 영국문화원 블로그를 통해서 그 내용의 일부를 공개해드립니다. 알·쓸·신·잡 런던편이라고 할 『런던 101』 연재에 많은 관심과 사랑 바랍니다.

영원한 소년, 데이비드 호크니가 돌아왔다. '82점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를 갖고!

2016년 7월부터 10월까지 런던의 한복판에 있는 갤러리,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열린 전시회(David Hockney RA: 82 Portraits and 1 Still-life) 제목처럼,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82점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 등 모두 83점의 그림을 내걸었다.

© David Hockney, 사진 Richard Schmidt © Royal Academy of Art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82세의 화가가 선보인 그림들은 소년같은 그의 미소처럼 화사하다. 화가는 2014년부터 2016년 초까지 로스앤젤레스의 작업실로 지인들을 한 명씩 초대했다. 평생의 절친, 그림을 팔아주는 큐레이터, 작업실에서 일하는 직원, 화가의 누나· 등. 한 사람이 보통 사흘 동안 하루 6시간씩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일정이 바쁜 모델은 이틀에 작업을 끝냈다. 목탄으로 아웃라인을 스케치하고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을 했는데, 중간에 고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작업했다.

© David Hockney, 사진 Richard Schmidt ©Royal Academy of Art

같은 의자, 다른 사람 82인 초상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포즈는 제각각이다. 정면으로 앉아서 웃고 있는 사람, 삐딱하게 앉아있는 사람, 턱을 괴고 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 무릎을 모으고,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얌전하게 올려놓고 있는 사람.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백인, 흑인 등. 같은 의자에 앉아 모델이 되었다는 공통점 말고는 표정도, 옷차림도, 신발도 다르다. 이들 초상화의 캔버스 크기는 모두 121.92 x 91.44cm. 걸터앉는 긴 의자 위에 올려놓은 빨간 피망, 노란 레몬과 바나나 등을 그린 유일한 정물화도 같은 크기의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로얄 아카데이 오브 아트와의 인터뷰에서 작업과정 자체가 즐거웠다고 말한다.

로얄 아카데이 오브 아트와의 인터뷰 / 출처: 유튜브

모델을 해준 사람들이 작업실로 오는 게 좋았어요. 제 귀가 거의 안 들리고 외출할 엄두가 안 나서요. 작업실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사흘 동안 저도 그를 더 잘 알게 되고, 그도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죠. 사람들도 20시간 동안 누가 자신을 주목해서 보는 경험이 특별했나 봐요. 저는 의자 위치를 약간씩 바꿔서 다른 포즈를 취하게 했을 뿐이죠. 사람은 다 다른 얼굴, 다른 내면을 갖고 있어요. 사람마다 다른 면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려보니 즐거웠어요.

초상화 82점에 덧붙여 정물화 1점을 전시에 포함한 것은 즉흥적이었다. 82점의 초상화 작업이 끝난 후에 화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정물화를 1점 그렸다고.

© David Hockney, 사진 Richard Schmidt © Royal Academy of Art

극과 극의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와 데이비드 호크니

이들 초상화와 정물화에는 데이비드 호크니 스타일의 생생한 색채가 화폭마다 빛을 발한다. 축제 행렬처럼 분홍, 주홍, 파랑, 노랑의 ‘블링블링’한 색들이 저마다 춤추며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조나단 존스는 “이 전시는 (화려한 색채의 화가) 앙리 마티스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했다. 존스는 “호크니는 루시안 프로이드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루시안 프로이드(1922-2011)주 1)는 누구인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어 일그러진 초상화들주 2)을 많이 남긴 화가이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가 어둡고 추하다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상화는 밝고 싱싱하다. 호크니의 초상화 속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 여인의 표정도 밝은 색상들에 가려 어두워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인물이 슬프고 괴로울지라도 캔버스의 전체 색채는 눈부시게 밝다. 우리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림과는 별도로 노년의 루시안 프로이드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얼굴 사진을 비교해보면 마치 지옥과 천국에 사는 두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반드시 어느 쪽이 옳고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다른 태도일 뿐이다. 두 사람은 2002년에 석 달을 같이 보낸 적이 있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열 다섯 살 연하의 데이비드 호크니를 작업실로 초대해 초상화 주 3)를 그렸다. 호크니도 프로이드와 그의 조수의 초상화를 그렸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에서 현존하는 화가 중에 최고의 그림 값을 받으면서도 평이 분명하게 갈린다. 그의 그림을 본 사람은 찬사를 보내거나, 고개를 돌려버린다. 특히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비평가들은 호크니의 그림이 상업적으로 성공했을지언정 인간적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1937년 영국 중부 요크셔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ege of Art) 재학 시절에 이미 유명 미술 거래상의 눈에 띄었다. 특히 미국의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환영했고, 햇볕 따뜻한 캘리포니아와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림을 그리고 강의를 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영국의 봄’을 보러 40년만에 요크셔로 귀향

호크니가 요크셔 시골마을을 찾아 돌아온 것은 69세가 되던 해인 2006년. 40여 년 만의 귀향이었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와의 10년간 대화를 수록한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다시, 그림이다』 주 4)에서 그는 영국의 봄을 만나러 요크셔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호크니는 미국에 살 때도 크리스마스 때면 요크셔를 찾아와 가족과 함께 보내곤 했지만, “너무 어둡고 추웠기 때문에 항상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는 2002년 루시안 프로이드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영국의 봄을 처음 경험했다고 털어놓는다. 영국의 봄과 캘리포니아의 봄을 비교하며, 호크니는 영국에서 춥고 긴 겨울 후에 오는 봄은 "거대하고도 극적인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요크셔 시골마을에 빠져서 "파라다이스를 찾았다"고 경탄했다. 화가는 별다를 것 없는 마을길과 나무의 1년을 전부 그리고 싶어 했다. 그는 들판으로 캔버스를 가지고 나가서 스케치하였고, 같은 각도에서 다른 사계절을 보여주는 대형 연작주5)이 탄생했다.

© David Hockney, 사진 Richard Schmidt © Royal Academy of Art

‘다르게 보기’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평생 탐구 대상이었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는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는 호크니의 삶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이고, 또한 그의 가장 큰 두 가지 기쁨’이라고 썼다. 24세에 호크니가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알린 작품, ‘우리 두 소년이 껴안고'주 6), 일약 그를 유명인으로 만든 수영장 그림 ‘큰 첨벙’주 7), 독창적 추상화의 지평을 연 ‘클라크 부부와 고양이 퍼시의 초상’(1970~1)주 8)을 비롯해, 최근작 ‘82점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에 이르기까지 호크니의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을 다시 보게 해준다.

아이폰을 지닌 터너

마틴 게이퍼드는 화가를 ‘아이폰을 지닌 터너’라고 정의한다. 윌리엄 터너는 시시각각 변하는 영국 하늘을 가장 잘 묘사했다고 인정받는 ‘국민화가’주 9)다. 별 다를 것 없는 하늘을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준 터너처럼, 호크니도 나무와 길과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해준다. 터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카메라, 매킨토시, 스마트폰 등 첨단 기기를 즐겨 사용하는 얼리 어답터라는 점이다. 노화가가 아이패드에 능수능란하게 그린 그림은 놀랍다. 주 10) 그는 또한 잘 나가는 패셔니스타이다. 노년에도 『GQ』 잡지를 비롯해 여러 잡지에서 뽑은 ‘영국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자’로 여러 차례 뽑혔다.

© David Hockney, 사진 Richard Schmidt © Royal Academy of Art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보면 따스한 감정이 밀려온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조차 그의 붓질을 거치고 나면 사탕 포장지 색깔처럼 달콤해지는 것 같다. 그는 실제로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 삶의 가장 달콤한 순간을 선물해 준다. 오랜 친구 마틴 게이퍼드에게 ‘오늘 새벽을 당신에게 보내줄게요’라며 아이폰으로 그린 분홍, 자주, 살구색으로 번지는 여름 새벽 하늘 그림을 보내줬다는 화가.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고요한 선, 춤추는 듯 화려한 색채.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삶의 다른 면이 공존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림은 우리에게 세상을 더 잘 보도록 해준다’고 화가는 말한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를까? 일부 비평가의 혹평처럼 호크니는 세상과 인생을 곱게만 포장했을까? 아닌 것 같다. 작가 오르한 파묵이 소설 『순수박물관』에 ‘삶은 희로애락의 실을 섞어 직조한 천이기에 더 아름답다’고 말했듯, 호크니는 삶의 모든 면을 화폭에 담고 싶어했으리라. 나처럼 뒤늦게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면? 당신도 ‘인생은 슬픈 축제’라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호크니 RA: 82점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 전시회

기간: 2016년 7월 2일 - 10월 2일 (종료)

장소: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Royal Academy of Arts)

전시회 웹사이트: https://www.royalacademy.org.uk/exhibition/david-hockney-portraits


주1 루시안 프로이드,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Lucian_Freud

주2 루시안 프로이드 작품, 테이트 모던 http://www.tate.org.uk/art/artists/lucian-freud-1120

주3 루시안 프로이드가 그린 데이비드 호크니 https://www.theguardian.com/uk/2003/jan/16/arts.artsnews

주4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디자인하우스, 2012 http://www.yes24.com/24/goods/7911679?scode=032&OzSrank=1

주5 데이비드 호크니, 풍경 연작 http://www.bbc.co.uk/news/entertainment-arts-16536218

주6 데이비드 호크니, 우리 두 소년이 껴안고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13/oct/11/david-hockney-artist-gay-liverpool-walker-gallery

주7 큰 첨벙 http://www.tate.org.uk/art/artworks/hockney-a-bigger-splash-t03254

주8 클라크 부부와 고양이 퍼시의 초상’(1970~1) http://www.tate.org.uk/art/artworks/hockney-mr-and-mrs-clark-and-percy-t01269

주9 영국의 ‘국민화가’ 윌리엄 터너, 그의 하늘 그림은? http://blog.britishcouncil.or.kr/622

주10 데이비드 호크니, 아이패드 아트 https://www.wired.com/2013/11/hockney


지은이

작가 최은숙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로 일했으며, 영국 런던대학(UCL)에서 전자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마치고 미디어, 홍보 분야에서 일했다. 주한영국문화원 블로그에 ‘영국의 아이콘’, ‘내셔널 갤러리’ 전시 뉴스 등을 연재해왔다. 저서로 《런던에 미치다》, 《여행을 쓰다》, 《세계 1등 인터넷 신문의 블로그와 커뮤니티 전략》 등이 있다.

작가 지니 최

지니 최는 LG 디스플레이에서 일했으며, 한겨레 어린이 청소년 책 번역가 과정을 수료하고, 청소년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해왔다. 영국문학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버지니아 울프와 조셉 콘라드의 작품을 번역하고픈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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