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그녀’ 채시라

‘착하지 않은 그녀’ 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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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남편은 가방끈 짧고 괴팍한 아내에게 별 애정이 없고, 청춘을 바쳐 뒷바라지한 딸자식은 엄마를 창피해 한다. 친정에서 빌려온 돈을 주식으로 날려먹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당신이나 자기나 인생 하자”라며 서럽게 운다. 처음이다. 채시라 연기 인생에 이런 막돼먹은 캐릭터라니.

3년 전 그녀는 드라마 ‘다섯 손가락’에서 남편을 죽이고 친아들과 대립하는 팜프파탈 ‘영랑’이었고, 전작 ‘천추태후’에서는 여인의 몸으로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는 전사였으며, ‘해신’에서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신라의 귀족 ‘자미부인’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여명의 눈동자’의 여옥과 ‘서울의 달’의 영숙까지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배우 채시라(48)는 수많은 여자의 일생을 대신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던 그녀가 최근 KBS-2TV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고교 시절 도둑 누명을 쓰고 문제아로 찍혀 퇴학당한 뒤 모진 삶을 사는 주부 김현숙으로 분해 연기 변신에 나섰다.

‘착하지 않은 그녀’ 채시라

‘착하지 않은 그녀’ 채시라

“현숙은 집안의 사고뭉치예요.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열아홉 살에 딸을 낳았고, 주식으로 친정엄마가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날려요. 그걸 만회하겠다고 돈 100만원을 들고 하우스 도박장에 가는 아주 철없는 캐릭터죠(웃음). 그럼에도 씩씩함을 잃지 않고 주어진 환경을 개척해나가는 대견한 인물이기도 해요. 앞으로 현숙이 성장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번 작품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 ‘태양의 여자’를 집필한 김인영 작가와 ‘브레인’, ‘내 딸 서영이’를 제작한 유현기 PD가 만든 드라마다. 잘나가는 요리 선생이지만 남편의 외도로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온 현숙의 엄마 강순옥(김혜자 분)과 국문과 박사 졸업 후 대학 강사 자리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온 모범생 딸 정마리(이하나 분)까지, 3대에 걸친 세 모녀의 사랑과 성공, 행복 찾기가 그려진다. 이외에 도지원, 장미희, 김지석, 송재림 등이 합세해 극을 이끈다.

“대본이 워낙 훌륭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방에서 혼자 울고 웃으며 단숨에 4권을 읽어내려갔죠. 눈이 뻑뻑하고 아플 지경인데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캐릭터도 마음에 쏙 들었어요. 모든 걸 내려놓고 망가져야 하는 역할, 꼭 도전해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이렇게 좋은 선후배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으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죠. 냉큼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웃음).”

김혜자라는 뿌리 깊은 나무
채시라가 주저 없이 캐스팅을 승낙한 또 하나의 이유는 ‘국민 엄마’ 김혜자였다. 2008년 KBS-2TV ‘엄마가 뿔났다’ 이후 오랜만에 지상파 나들이에 나서는 그녀와의 연기 호흡은 후배 배우의 오랜 꿈이었다.

“한 번쯤 김혜자 선생님과 모녀 역할을 맡으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곤 했어요. 선생님과 호흡을 맞춘다는 건 저뿐만 아니라 아마 모든 후배 연기자들의 꿈일 거예요. 함께하는 매 순간이 연기 수업을 받는 느낌이에요. 촬영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스태프나 연기자들이 놓치는 것들이 있는데,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세요. 큰 어른답게 묵직하고 꼼꼼하게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죠. 최근 드라마국에서 극찬을 받은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선생님 주도하에 사전 리허설을 진행한 덕분에 가능했어요.”

김혜자라는 버팀목이 주는 무게감과 든든함 덕분일까. 채시라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 속에서 뛰노는 중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동네 미용실에서 대충 만 듯한 촌스러운 파마머리를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횡무진하는 그녀. 15년간 화장품 모델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당대 최고의 스타는 어느덧 보통의 인생을 연기하는 관록의 여배우가 됐다.

“망가지는 역할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으시는데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곱게 단장하고 예쁜 말만 하는 캐릭터는 이전에 많이 해봤잖아요. 오히려 꾸밈없이 망가진 모습에서 배우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엔 더 못생기게 분장하면 어떨까 하고 감독님과 상의할 정도예요(웃음).”

아무리 그래도 서른이 넘은 딸이 있다는 드라마속 설정은 좀 서운할 법도 한데, 그마저도 괜찮다고 한다. 올해 열다섯 살이 된 첫째 딸과 극 중 딸인 이하나의 키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대답.

“제 딸이 키가 좀 큰 편이라 이하나씨와 비슷해요. 집에서 매일 보던 사이즈라 괴리감이 별로 없어요(웃음). 또 이하나씨가 워낙 동안이잖아요. 이른 나이에 사고를 쳐 딸을 가졌다는 드라마 속 설정상 거부감은 전혀 없었어요.”

8회까지 방송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시청률 13%를 돌파하며 수목드라마의 왕좌를 지키고 있다. 연일 채시라의 연기를 칭찬하는 기사 또한 쏟아지는 중. 배우의 이름값이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작품에 자부심을 가졌고, 자신이 맡은 인물에 애정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겸손했다. 오롯이 여자 주인공들을 극의 중심에 세운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채시라라는 배우가 자리한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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