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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사면 가시화… 노무현과 질긴 악연 청산될까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윤석열 당선인 3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회동에서 MB 사면 건의할 듯
■ 여권 내 찬반 엇갈리는 가운데 “새 정부 출범 계기로 악연 청산하자” 목소리도


▎2019년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만찬 회동을 하기 전본관 현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 두 사람은 잇달아(제16~17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최고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악연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최악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 수사 끝에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금도 수감 중이다.

노·이 전 대통령 두 사람이 처음 충돌한 건 1996년 제15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에는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노무현 통합민주당 후보가 동시에 출격했다. 결과는 이 후보의 승리. ‘정치 1번지’에서 승리를 거둔 이 후보는 일약 전국적 거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이명박 의원은 이듬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항소심에서 400만원 벌금형이 내려지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노무현 후보는 1998년에 실시된 종로 보궐선거에 재출마해 당선됐다.

두 사람이 다시 맞부딪친 건 2003년. 2002년 각각 대통령(노무현)과 서울시장(이명박)에 당선된 둘은 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이 시장은 결사 저지했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10월 행정수도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행정수도 이전에 제동이 걸렸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고, 두 달여 뒤 정권이 교체되면서 두 사람은 전직과 현직의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갔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겪은 뒤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을 향한 MB정부의 수사가 시작됐다.

발화지점은 대통령기록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MB정부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 측이 자료를 복사해 가자 MB정부는 이를 불법적인 기록 반출로 규정했다.


▎2009년 5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헌화한 뒤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중앙포토
백원우 盧 영결식장에서 MB 향해 “사죄하라”

그해 7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고, 이는 곧 ‘박연차 게이트’로 이어졌다. 검찰은 그해 12월 박 회장으로부터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를 구속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듬해 4월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러다 그해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17년. 그해 5월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백원우 전 의원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하며 MB정부 시절 추진된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 감사를 지시했다. 백 비서관은 2009년 5월 29일 경복궁에서 엄수된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려고 하자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라고 외쳤던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살얼음판’을 걷은 이 전 대통령은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의 자금 수백억 원을 횡령하고 삼성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았으며, 현재 수감 중이다. 지난해 연말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5년 11월 22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만난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 중앙포토
장제원·김은혜 “대통령에게 사면 요청할 것”

이런 가운데 3·9 대선 일주일 후인 3월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한다. 이 자리에서 윤 당선인은 MB에 대한 사면을 건의할 예정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15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 당선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견지해왔다. 따라서 이번 만남을 계기로 국민 통합과 화합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도 15일 “윤석열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자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요청과 코로나 추경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당선인의 건의가 수용된다면, 이 전 대통령은 부처님 오신 날(5월 8일) 하루 전날인 5월 7일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5월 9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 10일은 윤석열 정부 출범일이니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고령(81)에 지병(당뇨)까지 있어 수감 생활이 힘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에도 지병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


▎2019년 3월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이 오랜 악연, 국민 분열의 씨앗” 지적도

이 전 대통령 사면 가능성이 높아지자 야권은 일제히 환영하는 반면 여권 내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사면했고, 그래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라면서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 되실 분이 같이 뜻을 맞춰서 하면 좋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당의 채이배 비상대책위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미 대선 과정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선 ‘사면에 대한 부분은 검토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적절하다’는 평가들이 나왔기 때문에 (사면 결정은) 아직은 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잘잘못을 떠나 노무현과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오랜 악연이 국민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됐다고 본다”며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두 분의 악연이 청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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