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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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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속살을 맛보다


‘야외활동 디자이너’ 안종관 울릉도학교 교장과 함께 트레킹 하며 즐긴 홍합밥·따개비칼국수·호박막걸리…
등록 2009-09-23 05:36 수정 2020-05-02 19:25

네이버에서 인물검색을 해보면 세 사람의 ‘안종관’이 나온다. 그중 제일 많이 기사가 올라와 있는 사람이 국가대표여자축구팀 안종관 감독이고, 두 번째가 인터넷신문 에서 운영하는 울릉도학교의 안종관 교장 선생이다.
안종관 선생은 희곡 등을 쓴 극작가이지만, 지난 20년 가까이는 오지 여행과 등산, 트레킹을 전문으로 해오면서 여행지를 찾고, 산행로를 개척하고, 숙소를 물색하고, 운치 있는 술집과 맛있는 식당을 섭외하고, 계절·날짜·시간 등 전체 일정을 분배·조정하는 ‘야외활동 디자이너’로 더 유명하다.

울릉도 ‘산마을식당’의 상차림. 사진 김학민

울릉도 ‘산마을식당’의 상차림. 사진 김학민

그는 일찍이 경기고를 문과 꼴찌로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학과에 간신히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문보다는 벗 사귀기를 좋아해 주야장천 술집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이숭녕 등 보수 엄숙주의 교수들이 엄히 꾸짖으려 했으나, 캠퍼스에서는 그를 찾을 길이 없었다. 이리저리 학점을 구걸해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은 곳이 문학평론가 윤영천, 시인 정희성, 인하대 교수 정학성 등 문리대 국문과 동문들이 국어 교사로 똬리를 틀고 있던 숭문고였는데, 국문과 놀량패들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 덕을 보지 않았을까 심증이 든다.

안종관 선생은 숭문고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20년을 채우고는 바로 퇴직했다.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탁월한 외환 딜러로 상당한 경제적 토대를 구축한 부인 김상경씨에 의탁한 퇴직이 아니었을까라는 심증이 든다. 퇴직 이후 그의 ‘창작 활동’은 별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야외 활동’은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좋다는 곳, 맛있다는 집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의 자리에는 언제나 사람과 술, 노래와 웃음이 넘쳤다. 하여 탈춤 부흥의 중시조이자 부산대 무용과 교수인 채희완은 안종관 선생을 ‘동북아에서 제일 잘 노는 현대놀이 전문가’로 헌정했다.

지난 9월 초 안종관 교장의 울릉도학교에 동참해 울릉도 트레킹을 다녀왔다. 울릉도는 겉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속도 아름답다. 도동에서 성인봉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울릉도가 하나의 거대한 보석임을 확인하게 된다. 나리분지와 추산, 천부, 석포, 와달리 옛길, 내수전을 걸으면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특히 와달리 옛길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로 꼽힐 만하다. 안종관 선생은 울릉도학교가 이 길을 행복하게 걷는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단지 길을 걸을 뿐만 아니라 다른 귀한 옛길들을 더 많이 찾아내어 가꾸고, 인문학적 스토리텔링도 쌓아가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안종관 선생과 나는 무명산악회 멤버로 오랫동안 같이 놀러 다녔다. 목적지만 정하면 술집·맛집은 말 안 하고도 쉽게 합의한다. 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량과 주유가 조조군을 격파할 전략을 세울 때, 서로 의논하지 않았는데도 똑같이 손바닥에 ‘불 화’(火)자를 써 보였듯 말이다.

울릉도의 2박3일 맛집·술집도 마찬가지였다. 점심께 도착하는 배를 타면 도동항에 내려 ‘보배식당’에서 홍합밥을 먹고 서둘러 성인봉을 오른다.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내려가 ‘산마을식당’에서 오리불고기에 씨껍데기막걸리를 마신다. ‘산마을식당’에서 자고 이튿날 구수한 시골 된장국으로 해장을 하고 용출수를 거쳐 천부 ‘신애분식’에서 따개비칼국수로 이른 점심을 때운다. 석포전망대에서 울릉도 옛길을 3시간 정도 걸으면 내수전전망대에 이르는데, 전망대 가는 길 입구 매점에는 호박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둘쨋날 숙박지인 저동에서의 방어·오징어·쥐치에 소주는 그냥 꿀물이다. 마지막날 환상의 저동~도동 해안 산책로가 끝나면 ‘혜솔식당’의 약소불고기에 소주가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런데 이 2박3일 동안 안종관 선생은 며칠 전부터 온 통풍으로 술 한 잔 못하고 홀로 시내버스로만 이동했다. 좋은 곳, 맛있는 집만 밝혀온 자의 말로라고나 할까. 모두들 겉으로는 안됐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고소해하는 것 같았다.

김학민 음식 칼럼니스트 blog.naver.com/hakm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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