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김혜수는 '청룡의 품격'이었다…31년의 영화로운 순간들

김지혜 기자 작성 2023.11.25 02:17 수정 2023.11.26 13:23 조회 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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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김혜수의 다른 이름은 '청룡의 여신'이다. 2023년 11월 25일, 31년에 걸쳐 30회의 진행을 마무리한 김혜수에게 이 말을 건네본다.

"당신은 '청룡의 품격'이었습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해피엔딩인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이날의 주인공은 작품상의 영예를 안은 '밀수'도, 남녀주연상을 품에 안은 이병헌, 정유미도 아니었다. '유종의 미'를 예고한 MC 김혜수를 위한 자리였다.

김혜수가 1993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온 청룡의 사회자 자리를 물러났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지만 김혜수의 마지막 진행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늘 그러했듯 또렷한 목소리를 무기로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을 이어갔고, 또 다른 MC 유연석과는 조화롭게 앙상블을 이뤘다.

김혜수
김혜수

영예의 수상자들에겐 영화계 선배이자 동료로서 따스한 격려와 박수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시상식의 카메라의 앵글은 대각선 구도가 많았다. 그 덕분에 MC와 수상자들이 한 화면에 여러 차례 담겼다. 이 앵글은 김혜수가 선배, 후배, 동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기에 최적이었다.

서른 번째 소임을 마무리할 무렵, 마침내 자신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자 김혜수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정우성은 김혜수를 떠나보내는 의미 있는 자리에 깜짝 등장해 "30년이란 시간 동안 청룡영화상을 이끌어 온 김혜수라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김혜수가 영화인들에게 주었던 응원, 영화인들이 김혜수를 통해 얻었던 위로와 지지, 영화인과 영화를 향한 김혜수의 뜨거운 애정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의 청룡영화상이 있을 수 있었다"고 영화인,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을 건넸다.

김혜수 유연석

이어 "그녀가 함께한 청룡영화상의 30년은 청룡영화상이 곧 김혜수이고 김혜수가 곧 청룡영화상인 시간이었다. 영원한 청룡의 여인 김혜수에게 청룡영화상이란 이름이 적힌 트로피를 전한다"고 말하며 청룡이 준비한 감사패를 건넸다. 객석에 자리한 영화인들은 전원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정우성의 말처럼 트로피에는 상의 종류가 아닌 시상식 타이틀인 '청룡영화상'이 쓰여있었다. 청룡의 트로피가 연상되는 황금빛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마이크 앞에 선 김혜수는 지난 31년의 '영화로운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트로피를 바라보며 감동을 머금은 표정을 지은 김혜수는 "언제나 그 순간이 있죠.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아요. 일이건 관계건 떠나보낼 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순간만큼 열정을 다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지난 시간들에 후회 없이 충실했다 자부합니다"라고 말했다.

김혜수

김혜수는 "우리 영화의 동향을 알고 그 지향점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청룡영화상과의 인연이 30회나 됐다"면서 "한편 한편 너무나 소중한 우리 영화,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제게도 이 자리는 배우로서 성장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가 됐다. 우리 영화가 얼마나 독자적이고 소중한지, 진정한 영화인의 연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매년 생생하고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배우들과 영화 관계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배웠다"고 영화인으로서 본 청룡영화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배우 김혜수'의 서사에 청룡 영화상이 함께했음에 감사하고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개인적인 의미도 부여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청룡영화상이 많은 분들과 함께 영화를 나누고 마음껏 사랑하는 시상식으로 존재하길 바란다"고 시상식의 미래를 향한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이날의 진행을 돌이켜 보며 "사실 실수를 했고 놓친 것도 있었다"면서 이른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매년 청룡영화상과 함께 저를 떠올려 주신 모든 분들과 그동안 보내주신 박수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청룡영화상의 진행자가 아닌 저로 여러분을 만나게 될 제가 조금은 낯설더라도 이제는 매년 생방송 진행의 부담을 내려놓고 22세 이후로 시상식 없는 연말을 맞이할 저 김혜수도 따뜻하게 바라봐 달라. 1993년부터 지금까지 저와 늘 함께 했던 청룡영화상,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한 이 모든 순간이 유의미했고 저에겐 큰 영광이었다.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김혜수 유연석

충무로의 젊은 스타였던 배우는 31년이 흘러 대한민국 영화계의 대들보가 돼 동료, 후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됐다. 이병헌도, 조인성도, 정유미도, 강혜정 대표('외유내강')도 상을 받으며 김혜수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전했다.

김혜수의 말대로 '배우 김혜수'의 서사에는 청룡영화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룡영화상의 서사'에도 김혜수가 크게 자리한다.

앞서 시작한 영화 시상식이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 대중과 영화계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후발주자 청룡은 한 뼘, 두 뼘씩 성장해 나갔다. 그 여정에 시상식의 상징적 존재인 김혜수의 역할이 컸다.

자칫 화려한 의상으로 화제몰이에만 신경 쓴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김혜수에게는 어느 전문 진행자도 흉내 낼 수 없는 당당한 에티튜드와 언변, 영화인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너른 품이 있었다. 또한 영화의 가치를 전달하고, 영화인의 품격을 높이는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청룡

코리안 뉴웨이브부터 한국영화 르네상스까지 한국영화의 부흥기에도 김혜수는 청룡의 안방마님이었고, 코로나19 이후 계속된 한국 영화의 위기 속에서도 김혜수는 청룡을 지켰다. 그렇게 44년의 역사가 이어졌다.

자신의 역할을 다한 김혜수는 떠나며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축하무대에 오른 박진영과 디스코를 추며 마지막 진행을 자축했다.

다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만나게 될 김혜수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다. 호스트가 아닌 게스트다. 아쉬움 보단 기대감이 앞선다. 시상자 혹은 수상자로 만나게 될 '배우 김혜수' 역시 좋지 아니한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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