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전말을 보면 남편은 함께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보니 아내가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목격자도 없는 상태에서 실종 지점에서 900m 떨어진 물 속에서 아내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에선 경추골절과 목근육 출혈이 발견됐다
이와 관련, 처음부터 자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한 경찰은 직접적인 증거를 못 찾은 데다 극단적 선택으로 목뼈 손상이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남편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하지만 재수사에 착수한 겸찰은 4년 만에 남편을 상해치사 등으로 기소해 징역 10년을 구형했고, 지난 7월 재판부는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수사 과정에서 직접적인 목격자나 증거가 없었지만 남편의 음성 녹취와 혈흔 등이 간접 증거로 인정됐다. 남편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었고, 거짓 진술을 하기도 했다. 수사를 통해 사건 발생 전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전개 과정은 몇가지 의혹을 남긴 채 사건 종결됐던 이른바 '한강공원 사망 의대생' 고(故) 손정민 씨 사건과 닮은 부분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이에 따라 '포항 사건' 처럼 '한강공원 의대생 사망 사건'도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일말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한강 사건'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포항 사건' 재조명
지난 1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에선 '포항 경추골절 사망사건'을 다뤘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21년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을 다뤘다가 정정사과 및 반론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한 전문의는 극단적 선택으로 '포항 사건'의 피해자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생전에 목뼈가 부러진 채로 본인 의사로 이동할 수 없다는 점, 경추 골절이 물 속에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한 범죄 전문가는 남편의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과 정황 증거 등이 의심할 여지가 많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폭행하는 과정에서 경추골절이 생기는 사례는 드물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법의학자들의 의견도 있었다.
'한강 사망 사건'의 경우 손정민 씨가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는 어떠한 정황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대역까지 써가며, 물에 들어간 장면을 3회 반복 방송해 시청자들에게 실족사라고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비판 받은 바 있다. 또한 실제로는 3단 펜스까지 훌쩍 뛰어넘던 손 씨의 친구 A씨가 만취해 비틀거리는 것처럼 대역을 써서 시각적으로 왜곡한 점 등도 지적 받았다.
◇'포항 사건'이 소환하는 '한강 의대생 사망사건'
사건의 전모를 깊이 들여다보면 2개의 사건은 닮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사망한 손정민씨의 친구 A씨가 술을 마시고 잠들어있는 동안 피해자가 사라졌다고 진술한 점이 그렇다. 사건의 직접 목격자가 없는 데다 CCTV가 없는 상태로 수일만에 물속에서 발견됐다는 점, 각각 후두부와 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는 점도 비슷한 면이 있다.
두 사건에서 경찰은 처음부터 타살 정황을 찾을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수사를 시작했고, 결국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처리했다. 이에 검찰이 사건을 재수사해 기소했거나, 현재 검찰 수사 중이라는 점도 그렇다.
'포항 사건'의 경우 피의자에게서 거짓 진술이 드러났고, 결정적인 단어인 '방파제'와 같은 녹취가 남아 있었다. '한강 사건'에선 '그걸 끌어올리느라', '걸터져 있었다'와 같은 녹취가 남아 있다.
2개의 사건에선 직접 증거 외에 CCTV, 혈흔, 알리바이, 진술번복, 거짓 진술, 목격자에 의해 찍힌 사진 등과 같은 정황 증거들이 존재한다. 사건 관련자가 '술을 많이 마신 점'을 강조한 부분도 유사하다.
'한강 의대생 사건' 당시를 찍은 CCTV를 보면 새벽 2시 18분 손 씨가 쓰러져 있는 앞에서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친구 A씨의 모습, 새벽 3시 31분에 실종 지점의 강비탈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손씨의 형상과 바로 뒤따라 내려가는 피의자의 모습이 나온다. 또한 혼자만 올라와서 강비탈을 살핀 뒤, 집으로 전화하는 A씨의 모습도 찍혀 있다.
잠이 들었다던 A씨는 새벽 4시 30분쯤 사건 현장을 빠져나갔고, 40분만에 부모를 대동하고 사건현장으로 돌아온다. 이 때 주차장이 아닌 도로 한복판에 내린 뒤, 3단 펜스를 뛰어넘은 채 실종 지점으로 직진한다.
A씨는 사건 다음날 옷과 신발을 버렸으며, 사건 다음날까지 시간별로 기억을 진술했다가 추후 참고인으로 변호사 선임을 한 후에는 돌연 7시간 블랙아웃을 주장했다.
'포항 경추 골절 사망사건'을 보면 남편이 아내의 안경을 들고 있었던 것처럼 '한강 사건'의 친구 A씨는 손 씨의 휴대전화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A씨는 거짓말탐지기를 경찰에서 수차례 거부했다.
A씨와 그의 부모는 3단 펜스를 넘어 정확히 찾아갔던 실종장소를, 손정민씨의 부모에겐 알려주지 않았다. A씨가 탔던 택시에는 블랙박스가 없었고, 편의점을 이용하는 동안 줄곧 카드를 사용하던 A씨는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택시비를 지불했다.
'포항 사건'의 유족들은 피해자가 스스로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고히 믿으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 믿음은 검찰에서 증명됐다.
이에 대해 '한강 사건'의 유족들은 "A씨와 가족들이 여행과 학업 등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지만 유족들은 고통 속에서 버티고 있다"며 "포항 사건과 같은 검찰의 전면 재수사, 그리고 진상 규명의 길은 고 손정민 씨 유족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서 조사 중이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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