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3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의 기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남긴 흔적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게 만든다. 그를 한 명의 인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사에 남긴 발자취가 워낙 강렬하여 한번쯤은 자세히 봐야 하지 않을까?

★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전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아랫글을 참고하세요.

일본사 -1 (처음부터~ 13세기까지)

일본사-2 (10세기 이후~16세기까지)

히데요시

☞ 오사카성 : https://www.osakacastle.net/

 

  1. 오다 노부나가

  2. 도요토미 히데요시

  3. 도쿠가와 이에야스  

 

1.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 지역의 슈고 다이의 가신인 오다 노부히데의 아들이었다. 계속되는 전쟁은 반복되는 형상을 보였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혁명가가 필요했다. 혁명가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해 보이고 기괴해 보이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기에 그리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했겠지. 노부나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쇼군 승계 문제로 발생한 오닌의 난은 무로마치 막부의 중앙 집권 능력을 약화시켰다. 각 지역에서 하극상이 일어났고 1573년 무로마치 막부는 막을 내린다. 노부나가는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대표적인 예로 대량의 총포를 활용하여 1575년에 나가시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전쟁의 양상은 급격히 변해갔으며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구심점이 생겨난다.

노부나가는 이전까지의 시스템을 부정하며 새로운 지배 질서를 창출하려 노력하였으며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상업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또한 무엇보다 세속 권력이 종교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종교 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예상할 수 없는 노부나가의 정책들과 행동들은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 1인 리더에 의해 통제되는 조직의 불안정함을 가지고 있었고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역(혼노지의 변, 1582년)으로 노부나가가 죽고 나서 순식간에 흔들리게 된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와리 지역의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히데요시는 전국 시대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여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사회가 안정적이면 계급,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는 계급을 초월한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분보다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 수많은 인재가 탄생한 것처럼 일본의 전국 시대도 그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를 만나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거침없이 능력을 발휘하였다. 혼노지의 변이 일어날 때 히데요시는 전쟁터에 있었는데 소식을 받고는 바로 움직여 노부나가의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야마자키 전투를 통해 미쓰히데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노부나가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세워 권력을 장악한다.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를 통해 도쿠가와 이에야쓰와 전투를 벌이고 승기를 잡아 권력의 정점에 선다. 1590년 히데요시는 드디어 전국 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이룬다. 노부나가 때부터 이어져 오던 흐름을 히데요시가 마무리 지었다.

히데요시는 한평생 전쟁터에서 살았고 전쟁이 일상이었던 사람이었다. 비단 히데요시뿐만 아니라 당시 무장들이 다 그러했다. 전국이 통일되고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전쟁을 통한 정복과 그 경제적 성취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므로 일본 밖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조선을 침략한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히데요시의 죽음을 통해 끝이 났으며 이 전쟁은 당시 히데요시를 따르던 가신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와 사돈을 맺으며 항상 때를 기다리고 있던 이에야스는 혼노지의 변 이후 권력을 정비한 히데요시와의 싸움에서 밀리게 된다. 하여 원래 지니고 있던 영토에서 벗어나 에도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한다. 히데요시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이에야스는 한걸음 떨어져 에도에서 세력을 양성하였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히데요시를 따르는 가신들과 대규모의 전투(세키가하라)가 1600년에 일어나고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1603년에 쇼군에 취임한다. 동시에 무너졌던 막부 체제가 다시 수립된다. 이에야스는 쇼군에 오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인 히데타다에게 쇼군직을 세습시키고 오고쇼로서 슨푸에서 정치를 주관한다.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성에 있으면서 반 이에야스 세력의 중심이 되었고 결국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을 점령하고 히데요리는 사망하면서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한다. 이후 도쿠가와 가문은 강한 에도 막부를 운영하게 되는데 각 지역 다이묘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들은 제정한다. 또한 조정에 대한 통제도 가하여 쇼군의 위상을 보여주었으며 1612년에는 기독교 신앙 금지령을 내리고 개종을 명하거나 추방한다. 또한 중국선 이외 무역선의 기항을 히라도와 나가사키로 제한하면서 외국 문명에 대한 부분적인 쇄국정책을 시행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 시대부터 함께 살아오면서 전국 시대를 경험했고 노부나가, 히데요시의 정책들을 살펴보면서 한편으로는 정적으로서 한편으로는 통일의 대업을 잇는 동업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익숙한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불같은 노부나가와 병법의 달인이며 수많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정책을 짜내는 히데요시를 이어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고 본인의 역량 안에서 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야스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단절되었던 무역을 복원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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