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주소년 아톰의 비밀 아시나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3초

우주소년 아톰의 비밀 아시나요
AD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우리 만화 주인공들의 눈이 커진 건 일본만화들 때문이다. 일본에서 눈이 커진 건 데쓰카 오사무(1928-1989)의 아톰 때문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의 눈이 아닌 이 눈은, 월터 디즈니 주인공들의 눈이다.


데쓰카 오사무는 어린 시절부터 디즈니에 매료됐고, 그래서 당시의 일본만화와는 아주 다른 만화를 그리게 됐다. 그는 여러 개의 선이 겹치고 흩어진 실밥처럼 끊어져 있던 선들을 하나로 매끈하게 잇는 ‘디즈니 스타일’을 자기의 그림에 도입했다. 인체의 표현도 단순화해서 만화 고유의 심플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내놓았다.

그런 가운데 아톰의 눈은 옆으로 가늘게 찢어진 동양의 눈이 아니라, 얼굴에서 눈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강조된, 아래위 계란형의 대목(大目)을 만들었다. 순정만화에서 별빛을 담은 수많은 둥근 눈들은 아톰의 눈을 사모한 후배 만화가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아마도 서양에 대한 깊은 콤플렉스가 반영된 눈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일본의 일부를 순식간에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었지만, 공포는 그 열도를 넘어서서 인류 전체에게로 퍼져나갔다. 누군가의 한순간의 판단으로 인류가 언제든지 절멸(絶滅)할 수 있다는 상상은, 그 놀라운 재앙을 통과한 당대의 인간 모두의 가슴 속에 엄습했음에 틀림없다.

철완(鐵腕) 아톰은 그 공포의 진앙지에서 태어났다. ‘아톰’이라는 이름은 바로 원폭의 공포를 담은 이름이다. 원자력은 핵무기가 아니라, 아톰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10만 마력의 핵심장이다.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심장을 뛰게하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우주소년 아톰의 비밀 아시나요

히로시마의 공포는 수많은 인간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몰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로봇 하나를 인간의 상상 속에서 태어나게 한 셈이다. 아톰은 우주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로켓분사기를 가졌고, 또 1km 반경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예민한 귀를 가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며, 따뜻한 마음을 낼 줄도 안다. 아톰 또한 그의 능력 때문에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눈 먼 핵무기와 다른 점은 그 탄두에 ‘마음’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인영웅처럼 거대하지도 않은 겁많고 순박해보이는 키작은 소년은, 12살 그 또래 어린 마음들을 매료시켰다.


1945년 8월6일 투하된 원자폭탄의 이름이 ‘리틀보이’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컬하다. 또다른 리틀보이 아톰은 원폭의 공포를 맛본 시대의 소년들에게 친구같은 눈높이로 다가갔다.


데쓰카는 어린 시절 만화벌레로 학교에서는 왕따였던 고독한 소년이었다. 중학교 시절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학교에는 군인이 상주했다. 만화를 그리고 있던 데쓰카에게 한 군인이 다가와 “온 국민이 단결해야할 시절에 이런 것 따위를 그리다니...”라고 호통치며 원고를 빼앗아 내던졌다. 데쓰카의 머리 속에는 ‘만화 따위’라는 말이 남았다. 전쟁은 인간의 다양한 관심과 고유한 즐거움을 말살하는, 지독한 ‘자해’의 게임임을 그때 그는 간파했을까. 1943년 그는 ‘국민체력훈련소’에 들어가고 거기서 강제노동과 군사훈련을 하다가 패혈증으로 귀가한다. 조금 더 방치했더라면 팔을 잘라야할 뻔한 상처였다. 1945년 공장에서 보초를 서다가 미군 전폭기들의 폭격을 받는다. 용케도 이웃 방공호에 폭탄이 집중되어 그는 살았다. 데쓰카는 이후 집으로 들어가 틀어박힌다.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내내 만화만 그린다. 마침내 천왕이 항복을 선언했을 때 그는 그때까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죽음은 일상이었고 삶은 기적이었던 시절이, 지나간 것이다.


종전 이후 그는 오사카대학 의과대에 입학해 공부한다. 그러나 그는 만화를 놓지 않는다. 그가 세상에 만화를 내미는 것은 마이니치신문의 네컷 짜리 만화이다. 첫 작품은 ‘마아찬의 일기장’이었다. 이후 그는 의사가 되는 일을 포기하고 만화가의 길을 걷는다. ‘정글대제’(우리에게는 ‘밀림의 왕 레오’로 소개됐다)는 도쿄의 아동잡지 ‘만화소년’에 장편만화로 실려 히트를 했다. ‘철완 아톰’의 초기작인 ‘아톰 대사’는 1951년 4월에 ‘소년’지에 실린다. 처음에는 스토리가 복잡해서인지 호응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데쓰카는 아톰에게 감정을 불어넣어 ‘철완 아톰’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인간이 되고싶어하는 이 작은 로봇에게 열광하기 시작한다.


우주소년 아톰의 비밀 아시나요


철완 아톰은 미래만화다. 아톰은 만화 속에서 2003년 4월7일 태어난다. 그러니까 데쓰카는 자신이 죽은 지 14년 뒤에 태어날 로봇을 그려놓고 간 셈이다. 그해 아톰이 태어나게 돼있는 사이타마현에서는 아톰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준다. 이날 요코하마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로봇박람회가 열린다. 아톰의 명성을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이벤트들로도 읽히지만, 만화 속의 시간이 현실의 시간과 접합하는 풍경은 묘한 감회를 불러 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아톰은 불행하게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12살이다. 그를 만든 조물주는 죽었지만 그는 여전히 원자력 하트를 쿵쿵거리며 12살의 리틀보이로 살아가는 셈이다. 핵에 대한 우리의 공포와 신뢰 또한 그쯤에서 별로 변하지 않았다.


한편 이 불변의 나이는, 어쩌면 ‘추억’의 특징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톰에 관한 한 우린 영원히 12살이다. 추억은 성장정지다. 2015년 4월, 그가 진짜 12살이 되었다. 올해는 우리가 마침 제 나이가 된 아톰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불행을 먹고 태어난 이 우주소년은, 인류 전체의 자화상이기도 하리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