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초이 Aug 19. 2020

한국적인 것

서도호 작가의 집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나 그 상태 그대로의 것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과거에서 현재로 사라진 것들이 많고 일부만 남아서 전해지는 것도 많은 요즘이라지만 우리는 과거의 것들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과거의 것들이 늘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들만 선택해서 가져오고 싶은 마음은 모든 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과거에서 살아남은 일부는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렵게 살아 나온 전통이지만 현대사회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점점 잊히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 속도가 빨라지고, 유행과 최신의 것만 좇는 상황에서 전통의 일면이 무색하게도 잊히고야 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빠릿빠릿함은 언제나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집니다. 무엇을 더 빨리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나가야 하는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우리는 생선처럼 절여져 갑니다. 

이렇게 급격히 변한 사회에서 진정과 철학과 이념 따위의 소신은 쉽게 의심받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에 관해 고찰한다면 어떤 나라든지 간에 그 자체로서의 문화가 사회적으로 도태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또한, 민족과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모자라게 될 것입니다. 빠른 것과 자극적인 것들에 쫓기다 보면 정작 만나고 느끼고 싶었던 것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세상이 유혹하는 목소리를 조금은 의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옛것이 낯설어지는 요즘, 더 친숙하게 전통을 관찰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나' 다워질 수 있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전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에겐 생활을 꾸려나가는 공간 중에 ‘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집은 영락없는 나만의 휴식처이기도 하지만 내 집 장만 하나 어려운 각박한 세상에선 묵직한 한숨과 포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제각각 삶이 새겨지는 집이라는 공간을 달팽이 집처럼 이고 가는 이가 있습니다. 

아버지 서세욱 화백의 영향으로 전통한옥이라는 집에서 자란 서도호 작가에겐 다른 나라의 집이 누구보다도 이질감 있게 다가왔을 겁니다. 해외에 나가게 되면 우리가 이제껏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낯선 곳을 마주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서도호 작가는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 뉴욕의 생활이 맞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졌고, 다른 문화와 공간의 이질적인 경험이 생생했다고 합니다(ⓐ). 이 고민을 담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Bridging Home>in Liverpool, England, 2010 / 서도호
 <Bridging Home> in Liverpool, England, 2010 / 서도호

사진출처


이제는 리버풀 명물이 되어버린 <Bridging Home> 작품은 낯선 두 아파트 건물 사이에 끼어버린 한옥입니다. 아파트에 한옥이 날아와 박힌 설치 작품이 충격과 놀라움을 주고 있는데요. 이는 새로운 정착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겪는 문화적 구조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서양의 건축이 충돌(서도호 작가는 '충돌'이라는 표현보다는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이라는 표현을 쓴다. - ⓐ)한 덕분에 문화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렇게 비스듬히 끼어버린 작품은 점점 사라져 가는 한옥의 모습 또한 대변하는 것만 같습니다. 


<집 속의 집> 2013-2014 / 서도호

사진출처


나는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집 속의 집>이라는 작품 속 묘한 공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얇은 금속 틀로 집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얇은 은 조사로 지어졌습니다. 외관의 건물은 서도호 작가가 1991년 미국 유학 시절 처음 거주했던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 3층 주택을 실물 크기(높이 12m, 너비 15m)로 재현했고 건물의 중심에는 서도호 작가가 살아왔던 한옥 서울 집을 매달아 놓은 작품입니다. 창문과 미닫이문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계산하여 내가 정말 건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게 했습니다. 


서도호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문화의 정체성을 집이라는 전통 속에서 만들어왔고 이를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업 자체는 삶의 표현, 경험을 담아 공간을 기억하는 방식에 새롭게 다다랐습니다. 서도호 작가에게 한국적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이 작품을 통해 시대의 보편적 주제를 보여주었습니다(ⓑ).



ⓐ 출처 및 참고

ⓑ 참고


이전 17화 진품과 위조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