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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4. 2022

독일의 어머니날엔 어떤 꽃을 선물할까?

나에겐 두 분의 시어머니가 있다


독일의 어머니날이다. 무슨 선물을 할까. 그런 고민은 필요 없다. 어떤 꽃을 살까. 카네이션? 장미? 꽃을 고르는 순간의 즐거움만 있을 뿐.


시어머니들께 드린 꽃다발. 할머니들께 드린 축하 엽서.



독일의 어머니날은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다(올해는 놀랍게도 한국의 어버이날과 같은 날이었다!) 일요일로 못을 박아놓아서 편하불편하다. 올해는 시어머니 두 분 중 카타리나 어머니 댁만 방문했다. 힐더가드 어머니는 여행을 앞두고 계셔서 코로나 예방차 방문을 못했다. 남편 편으로 꽃이라도 보내고 싶었는데 남편의 시간이 여의치 않았. 어머니가 두 분일 때의 어려움은 이럴 때 생긴다. 해마다 어머니날은 내게도 새어머니께도 여러 가지 감정을 동반하는 날이다.


독일의 어머니날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봉투? 상품권? 꽃이다! 독일은 부모님께 현금 봉투를 드리는 일이 없다. 부모님 생신 때나 양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때도 부모님이 자녀들을 식사에 초대하신다. 자녀들은 꽃이나 선물을 들고 손님처럼 가면 . 독일에 살면서 가장 놀랍고도 편한 것 중 하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여행도 자비로 가신다. 심지어 자녀들 초대도 하심. 대학 학비나 의료가 무료라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외국인인 나도 암수술과 항암이 모두 공짜였으니까. 자연치유센터에서 받는 테라피만 자비 부담. 사교육이 드물고, 대학 갈 나이가 되면 자립하는 것도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게 하겠지. 결혼? 무조건 본인이 알아서. 결혼 여부도, 결혼 비용도, 결혼 상대도. 혼수 이런 거 없다.



카타리나 어머니의 정원. 가운데 벚꽃나무만 이웃집.



그러니 어머니날만큼 꽃집이 호황을 누리는 날도 드물겠다. 어떻게 아느냐면 나 역시 전날 토요일에 꽃집 순례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빅투알리엔 마켓으로 가는 것. 빅투알리엔 마켓에는 큰 꽃집이 네 곳이 있다. 꽃집들마다 줄이 길다. 문이 없이 오픈된 형태라서 줄을 안 서고 일단 꽃부터 살핀다. 내가 원하는 꽃이 있나 없나. 어머니들께 선물하기 가장 무난한 꽃은 뭘까? 장미다. 탐스런 장미들. 온갖 색이 다 있다. 구색을 맞춰 작은 꽃들이나 초록 가지를 곁들이면 끝. 옛날에 우리도 무슨 꽃을 사든 안개꽃을 곁들였지. 그날의 미션은 장미와 카네이션이었다. 친어머니이신 카타리나 어머니께는 전통적인 장미를, 새어머니이신 힐더가드 어머니께는 카네이션을 선물하려고. 독일은 카네이션이 어머니날의 상징아니지. 찾아뵙지도 못하면서 꽃은 왜? 그냥. 사진으로 보내드리려고. 일요일 하루가 너무 외롭지 않으시도록.


토요일의 늦은 오후였다. 빅투알리엔 마켓의 꽃집을 다 돌아도 마음에 드는 카네이션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리엔 플라츠에서 오데온 플라츠로 가는 길의 꽃집에도 가보았다. 근사한 꽃집 하나가 있던 게 기억 나서. 카네이션이 있긴 지만 크고 탐스럽고 예쁜 색깔은 다 팔리고 없었다. 다시 빅투알리엔 마켓. 어느 꽃집핑크빛 카네이션이 길래 열 아홉 송이를 다 샀다. 이런 날우 돈을 아끼면 안 된다. 무조건 풍성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장미는 딱 세 송이뿐이라서 다른 꽃을 곁들여 소박하게 준비했다. 카타리나 어머니 댁에 가니 화병은 크고 꽃이 적은 듯해서 어머니의 양해를 구해 어머니 정원에서 만개한 꽃송이를 몇 가지 잘라 다. 정원의 꽃을 자르며 우리 아이가 말했다. 우리 할머니 정원이 젤 예뻐! 그러자 화병의 꽃들마저 훌륭해 보였다.



바바라의 애플 쿠헨. 가운데 하트 초콜렛은 어머니가 내게 주신 선물.



그날 시누이 바바라는 60세가 되도록 첫 쿠헨을 구웠다. 싱글인 데다 요리나 베이킹에 관심 없이 살다가 중년 이후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유기농을 먹더니 최근 들어 요리에도 흥미를 갖는 것 같았다. 좋은 일 아닌가. 이번 어머니날을 계기로 인생 첫 쿠헨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제목은 애플 쿠헨. 가장 반긴 건 나! 멋지다, 너무 좋은 생각이야! 일요일 아침 우르르 달려가 바바라를 도왔다. 남편이 먼저 가서 사과 껍질을 벗기고 속을 잘라 재료 준비. 바바라는 카타리나 어머니께 레시피를 받아 반죽을 하다가 잘못됐는지 두번째 시도. 아이는 할머니와 애플 쿠헨을 만든 적이 있어 틀에 속 채우는 것을 도왔다. 나? 옆에서 나올 각인데! 감탄사와 추임새를 번갈아 넣으며 사진을 찍고 폭탄 맞은 키친의 뒷정리를 책임졌다. 어머니의 반응? 인생 최고의 쿠헨이었다로 훈훈하게 마무리. 우리의 반응? 비주얼 괜찮았고, 빵 냄새 최고였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독일에 아버지 날은 없나? 있다. 5/26일. (평일인 줄 알았는데 공휴일이었다!) 어린이날이나 스승의 날? 그런 건 없다. 개인적으로 없어서 너무 좋다. 한국은 이런 날이 너무 많지 않나? 부담이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런 건 없을수록 좋은 거 같다. 여담인데, 한글학교도 올해부터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줄여주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스승의 날이면 각반에서 학부모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담임 선생님께 꽃과 작은 선물을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하지 말라는 공문이 왔다. 그럼 어쩐다? 그래도 스승의 날인데. 아이들이 각자 손카드를 써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올해 학부모 반장을 맡은 내가 총대를 매기로 했다. 아이에게 단체 카드를 준비해 가서 친구들과 마무리해서 선생님께 드리라고 하고 학부모들에게도 내용을 알렸다. 봉투에는 어머니날을 맞아 자축하는 의미로 산 부겐빌리아 화분에서 꽃가지 하나를 잘라 꽃다발을 대신했다.



뮌헨의 한글학교와 스승의 날.



올해 어머니날엔 유난히 힐더가드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토요일 날 한글학교를 마치고 레겐스부르크로 가서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하룻밤 묵는다. 다음날 어머니날을 축하드리고 아침 먹고 출발하는 것. 카타리나 어머니께는 오후에 가면 되니까. 남편이 시간이 안 된다 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내가 일요일 아침 일찍 기차로 가서 역에서 어머니를 만나 꽃을 안겨드리고 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것. 둘 다 못했다. 왓츠앱으로 긴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아이는 할머니께 카드를 썼다. 한국 단지에 카네이션을 꽃 속에 카드를 놓고 인증샷을 찍었다. 카드는 다음날 우편으로 보내 드림. 카네이션의 의미도  알려드렸다. 어머니가 기뻐하셨다.


그동안 어머니날에 새어머니를 챙기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남편의 삼남매가 다 그랬다. 전화도 드리고 카드도 안 쓰고 축하의 말도 없었다. 아니, 그래도 되는 거야? 새어머니께 축하의 말은 서로에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새어머니는 어머니도 아니란 말인가.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지 않나. 그 공은 다 어쩌고. 형 누나는 그렇다쳐남편은 그래서는 안 된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그날 저녁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사진 속의 풍성한 꽃도, 아이의 엽서도 고맙다고. 남편에게 처음 건네시는 말씀도 들었다. 우리가 함께 한 지 사십 년이 넘는구나! 함께 산 곳들도 추억하셨다. 남편도 네, 기억하죠, 한 마디. 내년은 어머니날을 함께 보내자는 약속 잊지 않게 폰 달력에 기록해 두었다. 오월은 푸르고, 어머니의 핑크빛 카네이션은 1주일째 잘 버텨주고 있다. 오월의 초록 비도 맞아가면서!



나에게 준 선물 부겐빌리아 화분들와 1주일째 선방 중인 카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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