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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흐 Sep 07. 2020

김연아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의 뒤늦은 고백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양대 산맥, 동갑내기 친구였던 두 사람

아사다 마오는 며칠 전 발매된 한 잡지를 통해 뒤늦은 고백을 했다.

- 김연아를 이기는 게 인생의 목표였어요.
- 항상 연아를 이기고 싶었고, 동시에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스포츠 전문잡지 '넘버' 1009호 中에서>

친구였던 두 사람

알고 보니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90년생 동갑내기였다. 주니어 시절에는 각 선수의 엄마끼리도 친해서 김연아가 일본 대회에 참여할 때면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다. 시니어에 들어서고부터는 여러 언론들에서 앞다투어 서로를 라이벌로 부각시켰다. 주위 환경이 그렇다 보니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주니어 시절과 시니어 시절

김연아, 아사다 마오의 어린 시절 [온라인 커뮤니티]

과거를 되돌아보면 주니어 시절의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를 압도하는 기량을 발휘하며 세계선수권 무대를 주름잡았다. 하지만 시니어 시절 이후부터는 김연아가 점점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로는 그렇게 선의의 경쟁자로 계속해서 전 세계 무대를 휘어잡았다. 어렸을 때는 순수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친구였지만, 인생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대회에서의 경쟁 경험이 쌓여갈수록 서로에 대한 마음에도 분명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선수 생활을 할 때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나이는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 실력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주위의 관심과 경쟁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다소 버거운 나이가 아니었을까?

- 언론으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 늘 "저는 저 자신만을 이기면 됩니다."라고 답한 적이 많지만, 사실은 대개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어요. <아사다 마오>

두 선수의 리즈시절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경쟁 구도가 극에 닫는 순간은 단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아닐까 싶다. 둘의 나이 21세 때의 일이다. 세계적인 대회인 만큼 서로에게 주는 의미가 상당히 컸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몇 년 동안 이어오던 라이벌 구도에 또 다른 변화를 줄 수도 있는 그런 의미를 가진 대회였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두 선수는 모두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 신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부담감 속에서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두 선수가 대단하기만 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의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면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은메달을 차지한 아사다 마오 역시 대단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 연아의 장점은 높은 퀄리티와 정확함이라고 생각한다. 연아가 없었다면 오랜 시간 열정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

이어폰을 끼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아사다 마오

밴쿠버 올림픽 시절, 아사다 마오와 관련된 영상을 하나 시청했다. 당시의 마오는 큰 대회 앞에서, 그리고 김연아가 계속해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김연아 다음 차례에 무대를 준비할 때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주위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마오는 김연아가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는 순간에도 전광판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함이었다. 개인적으로 과거에는 김연아가 연이어 신기록을 달성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녀의 연기에 깊숙히 빠져들었고, 올림픽에서도 저렇게 평소와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김연아 못지않게 아사다 마오도 분명 대단했다. 올림픽이라는 압박감, 긴장감, 부담감 속에서 자신의 연기를 있는 그대로 펼쳐 결국에 자신의 신기록을 또 한 번 갱신할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 멘탈 김연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연아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다이아몬드 멘탈 김연아, 탈인간급 멘탈러, 천재 노력파, 꾸준함의 상징과 같은 수식어들. 한 매체에 따르면 마오 선수의 경쟁자는 김연아 선수였고, 김연아 선수의 경쟁자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말도 있다. 각 선수가 자라고 연습해온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멘탈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아사다 마오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연아라는 선수만 없었다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것은 물론이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긴장감, 압박감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100% 모두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미 김연아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슈퍼스타였기 때문이다. 그 해 김연아는 미국 타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 <성공의 공식 포뮬러>라는 책을 읽으면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사례가 떠올랐다.

경쟁은 바람직하다. 실력을 더 갈고닦고 자기 관리를 더 철저히 하게 만든다. 막강한 경쟁자와 맞붙으면 기량도 더욱 향상된다. 그런데 경쟁자가 슈퍼스타라면 어떨까? 그의 눈부신 지위에서 우리도 득을 보는 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슈퍼스타와 경쟁하면 정반대 효과를 초래하며, 성과가 훨씬 더 떨어진다. 이를 입증한 주인공은 경제학자 제니퍼 브라운이다. 그녀는 슈퍼스타가 평범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10년 치가 넘는 PGA 토너먼트 자료는 슈퍼스타와 경쟁하는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주눅이 드는지를 보여준다. …우즈와 대결해 이기리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은, 순위가 낮은 선수들은 우즈가 경기에 참가해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우즈의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선수들은 우즈가 출전하면 매우 주눅이 드는 듯했다. 이들은 골프 분야의 정규분포곡선 상한선에서 우즈와 어깨를 겨루는 그런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우즈의 스타성이 발산하는 후광은 그 어떤 여인보다도 상위권 선수들의 의식에 침투해 그들이 기량을 발휘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성공의 공식 포뮬러, p154>

아사다 마오가 주눅이 든 이유

각종 세계 대회에서 1등의 자리를 거머쥔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와 함께하는 경쟁에서 유독 주눅이 들어 보였던 이유는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주니어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함께해 온 김연아였지만, 어느새 벌어진 격차에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김연아가 받는 세계적인 관심은 아사다 마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높다. 스포츠는 멘탈 싸움이라는 말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심리적으로 주눅이 든다는 것은 경기력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토너먼트나 주요 토너먼트에서 타이거 우즈 효과는 더 강하게 나타난다. 우즈와 대결하는 선수들의 최종 점수는 0.7~1.3타 높았다(타수가 높을수록 성과가 저조하다). 우승과 차점자를 가르는 점수는 2타가 채 안 되므로 우즈 효과는 사실상 우승자를 결정한다. 결과가 너무나도 놀라워서 '타이거 우즈 효과'라는 명칭까지 얻었다. 슈퍼스타와 경쟁하면 주눅이 들어 얼마나 성과가 저조해지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성공의 공식 포뮬러, p155>

타이거 우즈 효과

경쟁은 피겨스케이팅 외의 어느 분야에서든 존재한다. 골프계에서 타이거 우즈는 제일 가는 슈퍼스타다. 흥미로운 점은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의 참여 여부에 따라서 선수들의 점수에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제니퍼 브라운이 수집한 데이터를 살펴보자. 선수들은 토너먼트 출전 자격을 얻으려면 첫 라운드를 통과해야 한다. 상위권 선수들이 첫 라운드에서 보인 점수는 우즈가 불참했을 때보다 참가했을 때 평균 0.6타 높았다. 상위권 선수들 사이에 첫 라운드 점수는 변동폭이 크지 않으므로 이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결과다. 반대로 우즈가 장기간 활동을 중단한 시기에 토너먼트에 출전한 선수들의 점수를 비교해보자. 똑같은 골프 코스에서 그전에 올린 점수를 비교해보면 상위권 경쟁자들은 약간이 아니라 눈에 띌 정도로 훨씬 좋은 성적을 보였다. 무려 평균 4.6타가 향상된 것이다. 심지어 순위가 낮은 선수와 순위에 들지 못했던 선수들의 기록도 올라갔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타이거 우즈 효과가 선수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다른 인생이 있다면 피겨선수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은퇴를 선언한 아사다 마오

아사다 마오는 2017년 4월 피겨스케이팅 생활의 은퇴를 선언했다. 2016년 12월 전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뒤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도 피겨 스케이팅 선수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피겨 선수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아사다 마오. 그녀의 선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소치 올림픽이 끝난 이후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에게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고, 서로 훌륭한 연기를 했다고 칭찬을 주고받았다. "다시 만난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긴 마오의 말처럼, 이제는 두 선수 모두 경쟁을 떠나서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여유롭고 행복하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상대를 이기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는 본받아야 마땅하다. 선수 시절에 비하면 조금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들의 피겨에 대한 열정과 역사는 오래오래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할 것이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물밑으로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는 김연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한 아사다 마오 모두 행복한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 두 사람이 친구로 만나는 날도 찾아오지 않을까.


참고 도서: 성공의 공식 포뮬러

사진: 2010년 2월26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김연아가 은메달 아사다 마오와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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