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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ector JI Feb 10. 2022

춘잠春蠶_봄에 치는 누에

악기장_고흥곤 현이야기 첫 번째 

전주에서 상주로 세 시간 가까운 시간을 달려 듣게 된 비보는 내일 추잠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촬영을 밀어 붙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우선 촬영팀의 스케줄을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장님께 다음 수확시기를 여쭤보았다.

"이번 추잠이 지나면 내년 봄에 춘잠에 오시면 되겠네요~"

안타깝지만 한해를 흘려 내년 봄에나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농장을 둘러보았다. 수만 마리의 누에가 뽕잎을 먹고 있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가 마치 농장 안에 부슬비가 내리는 듯했다. 손에 누에를 올려보았다. 아기 피부처럼 부드러운 누에의 피부가 느껴졌다.  늦은 저녁 서울로 다시 향했다.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내년 봄을 기약했다. 

고치를 짓기 전인 5령 누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촬영과 준비를 하니 금세 봄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 하는 생각으로 봄소식과 함께 상주의 농장 사장님께 종종 연락을 드렸다. "아마 다음 주 정도면 촬영할 수 있을 거예요" 

촬영 전날까지 서울에서 촬영이 있는 촬영팀 대신 내가 먼저 상주로 내려와 촬영 컨디션을 체크했다. 촬영팀은 새벽이 다 되어서 상주로 내려왔다. 우리는 간단히 소주한 잔을 걸쳤다. 언제나 바쁜 상황에서도 아무 말 없이 현장으로 와주는 촬영감독님과 촬영팀 식구들이 고마웠다. 


누에는 태어나 네 번의 허물을 벗고 마지막 5령 누에가 된다. 이 5령 누에가 되면 일생에 먹는 양의 80퍼센트의 뽕잎을 먹는다. 사장님의 하루 일과는 이 뽕잎을 수확해서 주는 것으로 채워진다. 아침에 뽕잎을 주고 점심이 되면 뽕잎의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누에의 몸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곳이 기문으로 숨을 쉬면서 쉬지 않고 뽕잎을 먹을 수 있다. 정말 쉬지 않고 먹는다. 누에가 자신의 몸을 뽕잎으로 가득 채우면 마지막 남은 오줌과 똥을 배설한다. 그리고 고치를 짓기 위해서 고개를 든다. 사장님은 때에 맞춰 섭이라고 하는 고치 집을 내려주었다. 고치를 지을 준비가 된 누에는 네모난 섭에 올라가 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주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한 저녁이 되었다. 농장의 직원들도 퇴근을 하고 사장님 식구분들은 남은 잔업을 했다. 우리는 누에가 고치를 짓는 과정을 찍었다. 어떤 것은 이미 고치를 거의 다 짓고 움직임이 둔한 누에도 있었고 어떤 것은 이제 막 모양을 짓기 시작해 안이 투명하게 비췄다. 봄 저녁을 채우는 풀벌레 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주 낮은 부분을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는 마이크로 누에의 먹방 ASMR을 담기 시작했다. 


누에고치 하나에서 나오는 실의 길이는 1500미터에 가깝다고 한다. 인간은 이 실을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들어 옷을 해 입기도 했고 악기의 현으로 쓰기도 했다. 역사로 따지면 4천 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늦은 밤 누에가 고치를 다 지을 무렵. 우리의 촬영도 끝이 났다. 

악기장 현이야기 대단원의 마무리가 끝이 났다. 


악기장 현이야기 첫 번째 <춘잠, 봄에 치는 누에> 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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