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빈 Nov 28. 2023

이탈리아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든 주인공을 찾아서

이탈리아, 밀라노

나를 세상에 표현하는 작업을 직업이자 소명으로 삼으세요. 



날짜: 2023년 10월 12일 - 이탈리아, 밀라노

인터뷰인: DIEGO PENACCHIO ARDEMAGNI - 유리공예 장인 (68세)

공예방: Ambrosiana Vetrate d'Arte (홈페이지)




밀라노 대성당을 방문한 이후 유리공예 장인을 만나고 싶었다. 무작정 공예방 위치를 검색해 찾아갔다. 예고 없이 종을 누른 아시아인을 따뜻하게 반겨준 이는 장인 디에고(Diego) 씨였다.



디에고(Diego) 씨의 공방에서





-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을 텐데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음성 번역기가 한 문단씩 번역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문단씩 끊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날 찾아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이름은 디에고이고, 밀라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예술 감독이자 이 예술 스튜디오의 주인입니다.



쉽게 찾을 수 없는 유리공방의 입구


- 유리공예장인이 되기까지 많은 연습을 거치셨을 것 같아요.


원래 그래픽을 공부하다가, 고전 예술 연구와 유리에 대한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유리공예를 조금씩 배우게 되었어요. 제 그림과 유리작품은 이탈리아의 성당과 박물관, 학교에 흩어져 있고 미국 켄터키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건들도 있습니다.



대표 작품들이 소개된 박물관 소개서, 잡지 매거진



- 가르침을 전수받은 스승님이 따로 계셨나요?


파올로 리베타(Paolo Rivetta)는 1958년에 밀라노 대성당* 의 창문을 만든 나의 스승이었으며, 고대 밀라노 학급 연구소의 화가였어요. 우리는 순수 미술(純粹美術)을 연구하는 몇 세대에 걸친 전통 방식이 있어요. 후세에도 이 전통이 지켜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유리 마스터(장인)'이라 부르죠.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 1386년 안토니오 다 살루초 대주교가 이탈리아보다는 프랑스에서 보편적이었던 후기 고딕 양식인 라요낭(rayonnant)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현재 밀라노 대 구의 대성당이다.


- 유리로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짧게만 설명해 주세요.


먼저 수채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이후 그린 그림 위에 유리를 대어 잘라야 하죠. 유리는 공장에서 색을 입힌 것들이 이미 있는데, 직접 색소를 넣어 제조할 수도 있습니다.



(좌) 그림 도안 (우) 스테인드 글라스


맞는 색을 골라 유리를 디자인에 따라 자르고, 그대로 붙입니다. 이후 검은색 소피멘트를 올려놓고 전체 모양이 나올 때까지 모양을 잡습니다. 이후 유리를 자르고 또 색을 제거하는 등 작업을 거치고요. 



유리를 굽는 오븐


유리는 600도의 오븐에 넣어져 반죽 상태로 돌아가며, 꺼내어 한 번 식으면 색소가 영원하게 고정됩니다. 재료와 작업 방식으로 인해 작품이 완성되는 동시에 시간도 멈추는 거죠. (웃음)



여러 색소를 혼합해 입힌 유리



- 유리공예는 이탈리아에서 왜 시작되었나요?


처음 스테인드 글라스는 주로 무지한 농부들의 대다수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데 사용되었어요. 농부들은 글쓰기와 읽기를 할 줄 모르니 일요일에 교회에 모이면 그림으로 교육시킨 거죠. 교육에 영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고 신성했답니다.



중세 시대 성당에 항상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 유리 마스터(장인)를 포함한 예술인들은 주로 이탈리아의 어디서 일하게 되나요?


나처럼 유리를 잘라 묶는 기술자 외에도 많은 부류의 조각가들이 있어요. 예술의 대가들이 넘쳐나죠. 바티칸*에는 많은 교회가 있기에 다양한 종교 단체와 연락이 가능해요. 예술인으로서 대성당, 교회, 예배 장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죠. 


*바티칸: 로마 속 작은 나라로 불리는, 남유럽에 위치한 도시국가이자 이탈리아 로마시에 둘러싸인 내륙국



- 작품 몇 가지를 찾아서 왔는데, 유대인 신전을 하나 복원하셨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우리는 밀라노의 기념비적인 묘지에 있는 유대 신전을 복원했고, 마르크 샤갈에 영감을 받아 이스라엘 12 지파*를 나타내는 열두 개의 큰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매우 정교한 기술로 만들었는데, 밀라노의 가장 중요한 유대 신전으로 손꼽히죠. 근데 이 장소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때문에 인해 잠시 폐쇄되어 있어 제가 데려가 보여드릴 수 없네요.


*이스라엘의 12지파: 십이지파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한 12개의 부족들을 지칭한다.  


- 마르크 샤갈에게서 영감을 자주 받으셨다고요?


마르크 샤갈은 유대인 예술가로서 기독교 교회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몇 년 동안 나는 그의 작품과 창문을 분석해서 그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소개해왔어요.



- 이건 뭔가요? 기다란 삼각형 탑에 그림이 그려져 있네요.


The Tower of Religions라는 작품입니다. 네 개의 면에는 기뻐하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따라 세 개의 중요한 일신적 종교가 담겨 있으며, 마지막 네 번째 면에는 중요한 다신교 종교로 힌두교, 유교, 도교가 모두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이는 종교의 탑, 각자의 문화, 종교, 그리고 기도를 가지고 이주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어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서로에게 굳건한 벽을 세웁니다. 두려움이란 감정을 앞세우는 거죠. 그래서 그들이 종교에 헌신하게 되는 현상은 내게 옳은 결정으로 비쳤습니다. 인간의 이런 노력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 이탈리아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공부하기 쉬운 환경일 거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예술가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요. 경제적 이유로 매우 중요한 경제 위기가 있었고, 그 이후로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가게들은 더 이상 일할 작업이 없었습니다. 


또한 지금은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이 다른 직업, 다른 전문 직업을 원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떠납니다. 아마도 아카데미에서 나온 학생들은 주로 디지털 아트, 미술, 소수의 손수레 공예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하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방의 작품들



- 이탈리아에서 예술가들을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나요?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지구상의 예술 유산의 70%를 수호하고 있죠. 잘 활용하면 수억 달러의 가치가 있지만 이걸 국가적 재산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탈리아인에게는 그냥 이미 주어진 익숙한 것들입니다. 


교육 측면에서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좀 더 깊은 가치를 매기고 이런 것들을 학생들에게 교육시킬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러시아, 미국, 캐나다, 호주, 남아메리카에서 온 나의 동료들은 다른 나라에서 나의 작품을 발표하면 더욱 높게 평가될 것이라고 얘기하더군요.



- 예술이 문화보다는 비즈니스가 된 현상이군요.


맞아요. 우리는 예술과 비즈니스를 더 이상 강조하지 않습니다. 예술 장인들에 대한 중요성 또한 전반적으로 그 가치보다 덜 주목받고 있죠.





- 디에고 님은 다시 태어나도 유리 마스터가 되실 건가요?


당연하죠. 난 다음 인생에도 이 일을 할 거예요. 난 1955년생이고, 이제 70대 노인이 다돼 갑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충분히 좋은 인생을 살았어요. 요즘은 고요한 자연을 찾아다니는데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전보다 더욱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젊을 때 디에고 씨와, 지금의 디에고 씨 (그리고 필자)



- 직업을 선택하실 때 주변 사람들의 반대는 없었어요?


아버지가 반대했죠. 안정적인 직장을 원했으니까요. 근데 때때로 인생에선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힘을 써야 할 타이밍이 있더라고요. 


난 내 인생과 노동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어요. 소중한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었고 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어요.





- 디에고 님이 예술작품을 만드실 때 가장 자주 강조하고 싶은 키워드가 있었을까요?


환경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좀 더 큰 규모로 생각해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와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을 많이 그렸죠. 십자가 아래 땅에 박힌 코카콜라 캔을 그린 그림이 그 대표고요. 내 손자들이 살아갈 땅이 가끔 무섭습니다. 



-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UN이 강조하며 기업이 ESG 경영을 내세우고 있잖아요. 환경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자연스럽게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게 앞으로 사업을 꿈꾸는 저에게는 참 새로웠어요.


젊은이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좀 더 알았으면 합니다. 어느 나라에 사는지는 상관없어요. 어느 나라든 아름다운 자연이 있습니다. 그럼 환경의 중요성도 저절로 알게 되거든요. 


세상이 얼마나 예쁜지 눈을 떠주게 하는 곳에서 일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복잡한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일하고 살아보는 경험도 좋을 거예요. 내 삶에서 자연 속에서 단순하게 살았던 경험들이 가장 평화롭고 소중했던 기억이 납니다. 




- 저도 20대 청년이다 보니,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게 참 많습니다.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고 계속 찾아가는 것이 인생인 거 같아요. 


내가 일하는 장소는 내가 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곳입니다. 난 내가 일하는 환경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즐겁고 건강한 사람들과 일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 산에 농장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과 어떠한 목표 없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어울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어울리고 감사함을 찾는 것, 그게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입니다. 



새벽 고요한 바다에서 낚시하는 자신의 스토리를 소설로 적는 그리는 것이 취미인 디에고 씨


내가 이미 가진 작은 것들을 눈여겨보고,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충분하다'는 걸 깨달을 때 사람은 평화롭거든요.



- 지금 출판하는 매거진의 주제는 '노동'입니다. 디에고 님에게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살 날이 점점 짧아지는 노인입니다. 1955년이니까 곧 70대가 되네. 나이가 들며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돈과 시간이 아니라는 걸 매년 깊게 깨달아가고 있어요. 


우린 사피엔스입니다. 다른 동물에겐 없는 지식으로 발전하고 진화하는 매우 똑똑한 영장류 동물이란 말이죠. 발전하기에 아름답고 멋진 동물이죠. 


계속 달라져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에 계속 주변을 돌아보고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 말아야 하죠. 중요한 가치들만 가지고 달려야 제대로 세상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 한국과 이탈리아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젊은이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우리 자아와 영혼, 두뇌를 돕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면 그림을 그리고, 칠하고, 도구로 놀고, 쓰고, 자주 말하고, 노래하고, 소통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또 직업을 구한다면 1) 돈을 벌 수 있고 2)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3)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세요. 돈은 생활에 필요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은 자아에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인생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과 뇌와 손이 그 일에 열정적일 수 있어야 해요.





- 예술장인뿐만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진리이군요.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웠습니다. 내 인생을 여러분과 공유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진실된 부는 돈이 아닌 시간입니다. 돈은 돌아오지만 시간은 돌아오지 못하거든요. 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니 제발 즐겁게 인생을 살아주세요. 그럼 후회없이 풍요로운 인생이 될 겁니다.









이전 05화 한국 음식이 좋아 종업원이 된 브라질과 포르투갈 소녀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