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아데스 Aug 06. 2023

해와 달, 그리고 버섯

이른 아침, 엷게 퍼진 구름 뒤로 보름달이 지고 있다. 밤새도록 차지했던 저 하늘을 해에 넘겨주는 시간이다. 자연은 매 순간 변한다. 바쁘게 제 역할을 하는데도 노자의 이야기처럼 말이 별로 없다. 


무더운 날, 집 근처 연못으로 산책하러 갔다.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후회했다. 산길과는 달리 습해서였다. 다행히 만나는 풀들과 나무들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계속되는 비에 진흙 길도 있었지만,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맨발로 걷는 사람도 간혹 보였다. 음악을 들으며 가던 중, 무심코 언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노랑의 물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버섯이었다. 모습이 매끈할 뿐 아니라 광택까지 났다. 노란색 머리 부분은 흰색 주머니에 싸여 보호받듯이 솟아나 있었다. 신기했다. 최대한 접근해서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다. 색깔이 화려해 분명 독버섯이라 생각했다. 걷다 보니 다른 버섯들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버섯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버섯들을 검색했다. 마귀광대버섯, 냄새무당버섯 등 대부분 독버섯이었다. 그런데 독버섯이라 생각했던 노란색 버섯이 식용버섯이 아닌가. 노란달걀버섯이었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황제가 즐겨 먹었다는 이 버섯, 화려하면 무조건 독버섯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네로황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남편 클라우디스 왕을 독살하는데 이 달걀버섯과 비슷한 독버섯을 이용했다는 일화도 생각났다. 버섯이 독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을 지키기 위함인데 씁쓸하게도 인간은 이를 악용해서 잔혹한 역사를 만든 셈이다.

달걀버섯이 달라졌나 보기 위해 다음날도 갔다. 사람의 손길이 닿았을까 걱정했는데 그대로 있었다. 다만 머리 부분에 검은 얼룩이 생겨 약간 다르게 보였다. 전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버섯들도 많았다. 밤사이 내린 폭우 탓에 산책길 일부가 망가졌지만, 버섯들은 오히려 그들의 세상이 온 것처럼 여러 곳에 퍼져 있었다.

지축을 흔들며 땅에서 솟아나는 것은 봄날의 새싹만이 아니었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주인공이 땅을 딛고 일어서는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생명에의 의지. 버섯도 그런 것 같았다. 낙엽 더미를 뚫고 중력을 거스르며 지면 위로 솟아 나온 모습이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며칠 뒤, 산책길의 버섯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달걀버섯은 없었다. 다른 버섯들도 부서졌거나 시들었고 어떤 버섯은 개미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측은해 보였다. 인간들처럼 늙어가고 병든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갓 부분이 떨어져 나가거나 몸체가 쪼그라든 모습은 보기에도 마음이 짠했다. 검은색을 띤 일부 버섯들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일생은 생각보다 짧았다. 버섯 하나가 태어나고 사라질 때까지 말없이 함께했을 비와 바람, 그리고 흙의 위대함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전원에 사는 지인의 얘기가 생각났다. 수시로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벌레들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는 그들의 영역인데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돈, 명예, 건강 등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우리를 떠올렸다. 자연에 대해 감사하려는 마음은 늘 부족했다. 사실 버섯조차도 식용버섯이니 독버섯이니 분류하고 먹거리로 생각하니 말이다. 물론 인간이기에 욕망을 만족시키며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럴수록 자연을 보호하고 또한 자연의 섭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무의 초록마다 매미 소리가 하나, 둘 묻어가는 계절이다. 

작가의 이전글 ‘라 코메디아(LA COMMEDIA)’를 끌어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