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Dec 02. 2022

야나할머니와 버섯 이야기

독버섯은 위험해

어쩌다 눈에 띈 영지버섯

내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저 송이버섯은 추석 때 막내 시외삼촌이 먹으라 주셨으나 잊고 시댁을 나서는 바람에 본디 주인에게로 돌아갔고, 영지버섯은 추석 전 시조부모님 산소에 금초를 하러 갔다가 딴 버섯이다. 남편은 예초기를 돌렸고 나는 톱으로 우후죽순 올라온 아카시아 나무를 자르는 일을 맡았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한 대가였을까? 영지버섯을 만나게 되었다.


"심봤다. 아니 버섯 봤다~~~"


"누가 들음 산삼이라도 캔 줄 알겠어."


"산삼은 있어도 못 알아볼 테고 그나마 영지는 알아봤으니 기적인 거지. 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비두만. 근데 여보 더 크게 둘까 딸까?"


"글쎄. 주변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크게 자라진 못할 거 같은데"


"그럼 나 딴다."


나는 버섯 줄기를 잡고 조심조심 뽑아 내년에도 또 올라오기를 바라는 맘으로 주변을 정리해 주었다.


"하하하 내가 살다 살 영지버섯을 다 따다니! 근데 이거 뭐 해 먹지?"


"영지는 차로 끓여먹지 않나?"


"이거 할머니 쓴맛 난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쓴 지 단지 당신이 먹어보면 알겠네"


"에이~ 어대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자 옵뽜가 먼저 먹어봐 그럼 내가 먹을게"


"아니야 사양할게 오빠는 생식을 좋아하진 않아"




할머니 방 화로에는 항상 보글보글 차가 끓고 있었다. 화롯불을 들여놓지 못하는 더운 계절엔 작은 가스버너 위에서 주전자가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하품을 했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면 할머니는 찬물을 드시지 않으셨다. 식혜나 수정과도 늘 스댕 사발에 담긴 채 화로 위에서 머물다가 할머니 손으로 옮겨졌고 일 년 내내 할머니의 주전자 안에는 삽주 뿌리, 황기, 이름 모를 나무껍질, 대추, 생강, 둥굴레, 파뿌리 등 갖가지 약초들이 머물다 거름 터미로 버려졌는데 나는 단맛을 내거나 좋은 향을 내는 재료들 말고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할머니는 평상시에도 찬물을 절대 드시지 않으셨는데 짐작해보면 이와 잇몸이 성하시지 못해서 그랬던 것도 같고 본디 배앓이를 달고 사셨기에 따뜻한 음식 위주로 드시지 않으셨나 싶다. 그런데 그런 습관도 대물림되는 것일까? 희한하게 나도 찬 것을 잘 먹지 못한다. 여동생은 한겨울에도 '얼죽아'인데 삼복더위에도 꼬박꼬박 '따아'를 마시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노인네'라 부르고 할머니도 나도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공통점에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남편 친구네서 얻은 버섯들

10월의 어느 한가로웠던 주말.

수원에 있는 남편의 죽마고우님 댁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남편의 친구인 강 사장님은 온갖 약재를 넣어 하루 종일 우려낸 육수에 당신이 고향 마을 뒷산에서 따온 능이버섯과 토종닭을 넣고 백숙을 끓여 주셨고, 집에 가서 찌개 한 번 끓여 먹으라며 잡버섯을 한통 싸 주셨는데 염장한 버섯이 아니었다면 사실 나는 가져올지 찌개를 끓일지 말지 엄청 고민했었을 것이다.




"야야 핵교 당기 오다가 보근소에 들리 배 아프다 카고 설사약 좀 받아 온내이"


"할머이 어대 아파?"


"아프긴"


나는 할머니가 챙겨준 의료보험 카드를 들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보건지소에 갔다.


"할머이가 드실 약이고 배가 아프고 설사약 받아오래요"


"할머니가 직접 오시면 좋을 텐데. 어디가 아프신지 정확히 아니?"


"아이요 그냥 약만 받아오라고 하셨는대요"


나는 약봉 다리를 받아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한테 갖다 드렸다.


"어머이 거 보건소서 받아 온 약 있음 한 다리만 줘봐요?"


"애비 니도 인자 배가 아프나?"


"야 인자 아프네요"




할머니와 아빠 배를 아프게 했던 범인은 두 분만 섭취하신 버섯이었다.

할머니도 아빠도 버섯 박사셨지만 큰 갓버섯이라고 따오셨던 버섯 속에 비슷하게 생긴 흰 독 큰 갓버섯 하고 독우산 광대버섯이 들어가 있었던걸 알아차리지 못하셨고 염장 단계 없이 찌개를 바로 끓여 드시는 바람에 단디 탈이 나신 두 분은 보건소 약을 여러 날 드시고서야 일상생활로 돌아오실 수 있었는데 그 살아있는 교육 덕분에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버섯을 독버섯으로 간주하는 의심증이 있었고 정확히 검증이 되지 않고 확신이 서지 않는 버섯은 아무리 권해도 먹지 않으려고 하는 고집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에 버섯 요리를 엄청 애정 하진 않았는데 신혼 무렵 송이버섯의 귀함과 맛과 향이 좋다며 쭉쭉 찢은 송이버섯을 기름장에 푹 찍어 먹여주려는 남편에게 새색시인 나는 시댁 가족들 앞에서 체면이고 뭐고 다 잊고 가자미 눈을 보여 주었고 그 머쓱함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는데 하지만 지금까지도 송이버섯을 먹지 않는 희한한 입맛의 고집쟁이 별종이다.




딸네미의 기가 막힌(?) 점심

11월 중순 수능고사 준비 및 방역 준비로 인해 고사장으로 사용되는 학교마다 원격수업이 진행되었고 아이도 원격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아이보다 먼저 집을 나서는 내게 아이의 지각 염려에서 해방되는 한 주기도 했는데 수능 전날 점심시간 전송된 가족 톡에 사진 한 장. 평상시 하사 받는 급식도 거르기가 일쑤인 게으른 언니가 집에서 것도 월남쌈이란 메뉴를 스스로 차려 먹고 오후 수업을 듣겠다는 기별에 마이 꽤 흡족했다. 그리고 톡 창을 닫으려고 하던 순간 문득 든 생각 '얘가 버섯을 데쳤을까?' 부랴부랴 톡을 보냈다.


"슬마 버섯을 생식한 건 아니지?"


"느타리버섯? 그냥 먹었는데"


순간 머리가 띵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언젠가 팽이버섯 때문에 세계적으로 난리 났던 기억이, 지인 중에 덜 익은 표고버섯을 먹고 기도가 부어 응급실에 실려갔던 일도 떠오르고 암만 생각해도 내 생에 느타리버섯의 생식으로 인한 후유증 같은 것은 들은 사례가 없었기에 섭취 안전에 대한 확신도 없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진에 있는 버섯을 다 먹은 거야? 먹음서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엄마가 해줬을 때 보다 향이 세고 좀 뻑뻑하긴 했는데 맛있게 다 먹었지"


"역시 훌륭해. 그런데 혹쒸라도 배가 아픈 거 같으면 참지 말고 빨리 전화해야 해"


"엄마 기분 탓인가? 벌써 배가 아픈 거 같아"


"마한. 아직 위에 다 도착도 못했겠다."


다행히 엄마를 닮지 않은 위장 튼튼 소녀는 배탈 없이 무사히 지나갔고 앞으로 느타리버섯은 생식을 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시댁 장식장에는 내가 따다 놓은 영지버섯이 다소곳하게 올려져 있고 나는 아직까지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김장하러 가서 버섯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가마솥 솥뚜껑 만하게 더 크게 냅두고 올걸 하는 후회와 필요한 누군가가 있으면 기꺼이 나눠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딸네미의 느타리버섯 사건에 놀란 탓인지 영지의 탈을 쓴 비슷한 독버섯이 아닐까? 쪼꼼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지내는 분들의 삶을 텔레비전을 통해 엿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자연인이 대세일 줄 알았으면 할머이한테 좀 더 일찍 약초를 배워두는 건데"


약초꾼이자 버섯 박사였던 할머니께 일찍이 구별 능력과 채취 기술을 전수받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데 지금부터라도 친정아버지께 배워둬야겠다.


이전 09화 야나할머니와 도매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