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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May 23. 2022

잠(蠶)이 들다.

장대비 쏟아내는 소리를 내며 뽕잎을 먹던 누에는

머리를 들어 올리고 생각을 한다.*     


속을 채우던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진 밤을 지나고

또 밤을 지나

껍질이 저를 담기에 좁게 느껴지면

허물을 벗고 새 피부로 갈아입는다.     


벗고 입고 벗고 입고

네 잠을 자고 나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며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채워나가는 밤에,     


별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그가 물었다.

"무엇이 너를 배고프게 해?"     


씹어 넘긴 잎이 흘러가는 것이 투명하게 보이면,

내 안을 가득 채운 것들에 반역을 저지르고 싶다.     


나인 줄 알았던 욕망을 뱉고

또 뱉어내면

고운 광택 매끄러운 고치는

작고 단단해진 나를 담는다.

깊은 잠을 담는다.                         




* 누에가 뽕잎을 먹다가, 뽕잎을 먹지 않고 머리 부분을 들어 올린 상태로 움직이지 않는 시기를 ‘잠’이라고 한다. 누에는 네 번의 잠을 자고, 잠을 잘 때마다 허물을 벗는다. 네 번째 허물 벗은 누에를 5령 누에(큰 누에)라고 한다. 이때에 뽕잎을 가장 많이 먹게 되는데, 누에가 일생 먹는 양의 90% 이상을 먹는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 by LEEROY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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