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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Feb 18. 2022

소목장이 사포로 이용한 속새

목적木賊

나에겐 어린 시절에 불렀던 이름으로 인한 고정관념 때문에 한동안 제대로 된 이름을 떠올리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식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속새이다. 경북 북부지방의 산골 마을인 내 고향에서는 억새를 ‘속새’나 ‘새강’으로도 불렀다. 속새라고 발음하노라면 그 날 선 잎사귀에 손가락을 순식간에 베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사실 ‘새’라는 이름이 들어간 초본류 식물은 억새 뿐 아니라 새, 기름새, 바랭이새, 솔새, 개솔새 등 꽤 여럿 있는데, 대부분 벼과에 속한다.


억새, 2020.9.20 안동 고향마을 - 나는 어린시절에 이 억새를 속새나 새강으로 불렀다.


내가 속새라는 이름의 양치류 식물을 처음 본 것은 곤지암리조트 안의 정원이었다. 꽤 오래 전 일인데, 아침 일찍 정원을 산책하다가, 습지에서 잎도 없이 푸른 마디 줄기만 곧게 총총히 자라고 있는 식물이 신기해서 푯말을 보았는데 바로 속새였다. ‘오! 이게 속새라니, 속새는 억새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이름이 같은 다른 식물인가? 아니면 푯말이 잘못되었나?’라는 의문을 품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자란 산골 동네에서 속새로 불렀던 억새는 흔했지만, 양치류 속새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식물애호가 모임의 답사지 곳곳에서 속새를 만났지만, 어린 시절에 생긴 고정관념 때문에 속새라는 이름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속새, 2014.11.2 곤지암리조트


키 30~60cm 가량의 상록성 여러해살이 양치류로 우리나라 곳곳의 습지에서 자라는 속새(Equisetum hyemale L.)는 한자로는 목적木賊이라고 한다. 목적木賊은 한약재로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헌에도 일찍부터 기록되어 왔다. <향약집성방>은 목적木賊에 ‘속초束草’라는 이두식 이름을 달면서, “물 가까운 땅에서 난다. 싹은 길이가 한 척 정도이며 무더기로 난다. 뿌리마다 줄기 하나에 꽃과 잎은 없다. 한 치(寸) 마다 마디가 있다. 색은 푸른데 겨우내 시들지 않는다. 사월에 채취하여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


<동의보감>에서도 ‘속새라고 한글 이름을 달았고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處處有之)” 했다.   <광재물보>, <물명고>  거의 모든 문헌에서 한결같이 목적木賊을 ‘속새라고 했다. 그러므로 1937 정태현 등이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우리나라 식물의 학명과 그에 해당하는 향명을 사정할  Equisetum hyemale Linne 목적木賊이라는 한자명과 함께 ‘속새라는 이름을 기재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목적木賊은 속새를 가리킨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목적木賊의 이름 유래에 대해, “이 풀은 마디가 있고, 표면은 까칠까칠하다. 나무 뼈대를 다루는 사람이 이것을 사용하여 갈고 문지르면 광이 나고 매끈해지기 때문에 나무(木)의 적(賊)이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고전에서 속새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한약재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목재를 갈아서 매끈하게 하거나 쇠의 녹 제거 및 양치질 용으로도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례도감의궤> 등에서 소목장小木匠에게 필요한 물품 중 하나로 속새를 들고 있는데, 이는 <본초강목>에서 설명했듯이, 사포처럼 가구용 나무를 매끈하게 다듬는데  속새가 쓰였음을 보여준다. <산림경제>에는 칼을 갈아 광을 내는 방법으로 ‘속새로 문지르면 녹이 저절로 떨어진다”***라고 속새의 용도를 설명했고, <만기요람>에는 속새가 양치養齒 용으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속새는 흉년의 구황식물로 쓰인 흔적도 보인다.


속새 (좌) 2021.10.2 인제 개인산, (우) 2020.10.10 가평 유명산 - 속새의 포자낭 모습
속새 (좌) 2021.10.16 곤지암 화담숲, (우) 2022.1.8 횡성 청태산


이렇듯 쓰임새가 많았던 속새는 나라에서도 중시하는 자원이어서, 각종 지리지의 토산물 항목에서 다루고 있다. 이 중, 유형원柳馨遠(1622~1673)이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는 충청도 황간黃澗, 강원도 강릉江陵, 삼척三陟, 춘천春川, 인제麟蹄, 회양淮陽 등이 속새가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문헌인 <선한약물학>을 보면 속새의 산지로 “조선朝鮮에 재在하야는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 회양淮陽, 홍천洪川, 경북慶北 영양英陽에서 산産하나 기중其中 영양산英陽産이 양호良好하니라”라고 했다.


속새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강원도 속초束草시의 지명 유래와 관련한 논쟁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향약집성방>에서 목적木賊, 즉 속새에 ‘속초束草’라는 이두식 이름을 달고 있어서, 속초의 지명 유래가 속새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속초束草라는 지명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일 가능성이 큰데, 강원도의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지키는 곳 여섯 군데를 나열하면서 “속초포束草浦가 양양襄陽 북쪽에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속초시가 속해있었던 양양襄陽에 속새가 많이 생산된다는 지리지의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한 속초束草는 글자 그대로 ‘풀을 묶은 것’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속새가 등장하는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 실려있는 “높은 고개를 넘으면서 (踰高嶺)”라는 제목의 시 한편을 감상한다.


艱關踰峻嶺       어렵사리 험준한 고개를 넘어

危徑抱巖扃       바위 난간 안으며 위태로운 길 가노라니

樹杪山梨赤       나무 끝엔 산돌배가 붉고

林間木賊靑       수풀 사이 속새가 푸르구나!

浮雲皆石磴       뜬구름은 모두 돌다리 같은데

斜日下郊坰       저문 해는 성 밖 들판에 지는구나

腸斷無人處       애가 끊어지는구나! 인적 없는 곳에서

風泉滿耳聽       바람 소리 샘 소리만 귀에 가득 들리나니.


겨울을 견디고 있는 속새가 있는 풍경, 2022.1.8 청태산


지난 1월 초, 청태산에서 만난 속새 군락은 장관이었다. 엄동설한의 계곡 가 빙설 속에 속새가 무리 지어 꼿꼿이 서 있는데, 그 푸르렀던 줄기가 추위를 견디느라 검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과연 능동부조凌冬不凋, 즉 추운 겨울에 굴하지 않고 시들지 않는 사철 푸른 식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


*木賊 (鄕名)束草. … 出近水地 苗長尺許 叢生 每根一幹 無花葉 寸寸有節 色靑 凌冬不凋 四月採 用之 – 향약집성방

**木賊. 此草有節 面糙澀 治木骨者 用之磋擦則光精 猶云木之賊也 … 叢叢直上 長者二三尺 狀似鳧茈苗 及粽心草 而中空有節 又似麻黃莖而稍粗 無枝葉 - 본초강목

***磨劍[光]方 … 以木賊擦之 銹自落 - 산림경제

****水軍萬戶守禦處六 越松浦在平海東 束草浦在襄陽北 江浦口在高城南 三陟浦在府東 守山浦在蔚珍南 連谷浦在縣東 – 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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