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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Jan 21. 2022

차이코프스키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이제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차이코프스키가 그의 나이 37세 때인 1877년, 자신의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 자신의 형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입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한 달 만에 파경에 이르고 차이코프스키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자살까지 시도하게 됩니다. 그가 말한 ‘완전한 인간’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광산 감독관인 아버지와 프랑스 이민 3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법률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법무성에서 관리로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음악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해 1861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시작합니다. 극도로 내성적이고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성격 탓에 그의 작품들에는 고독과 우수, 절망과 환희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어두운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베토벤과 브람스의 슬픔이 그 본질에 대한 극복과 관조에 노력했다면, 차이코프스키의 슬픔은 오로지 슬픔 그 자체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지요.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6번 <비창>을 발표한 후 9일 뒤인 1893년 11월 6일에 돌연 사망하고 맙니다. 이후 오랫동안 그의 사인은 콜레라 감염으로 알려져 왔죠. 그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호텔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그대로 마신 것이 콜레라 감염의 원인이 되어 사망하였다는 것이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발표였습니다. 하지만 사후 100년이 지난 20세기 후반 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이 발표됩니다.


1940년 박물관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차이코프스키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한 통의 이상한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학자들이 그 편지를 조사하여 밝혀진 내용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권력자였던 스텐복크 훼르모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에 있었고 이를 알게 된 공작이 황제에게 처벌을 진정하게 됩니다. 이에 황제는 검찰에게 이들의 처벌을 명령하죠. 그런데 이 사건을 맡은 검찰의 야코비 부총장은 차이코프스키와는 법률학교 동기생이었고 다른 법대 동기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신을 모독하는 커다란 죄악으로 여겨지고 극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어서 법대 동기생들은 자신들의 동기생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사실로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까지 스캔들이 파급될 것을 우려해 비밀재판을 열어서 차이코프스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강요하였고, 결국 차이코프스키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비소를 마시고 자살했다는 내용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던 사실은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최근까지도 러시아 문화장관인 메딘스키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고 말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동성애자였다고 언급할 정도로 논란이 여전하죠. 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교향곡 6번 <비창>은 다른 교향곡과는 달리 조용하게 사라지며 끝을 맺습니다.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예견하듯이 말이죠. 차이코프스키가 말했던 ‘완전한 인간’이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끝내 가질 수 없었던 슬픔의 극복이 아니었을까요?


말년의 차이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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