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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Oct 10. 2021

버섯 앞에서 누가 감칠맛을 논하랴

[푸드로지] 채식아닌 채식, 육식아닌 육식. 버섯의 세계

울진 ‘천년한우’송이 육회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가을에 제맛인 ‘버섯’


동식물 넘나드는 다세포 생물
향이 좋아 코로 먹는다는 ‘송이’
1000여년 전에도 진상품 인기
식감·향이 고기와 같은 ‘능이’
닭·오리 백숙에 넣으면 보양식
재배종도 감칠맛 으뜸인 ‘표고’
서양에서 귀한 대접받는 ‘송로’


오곡백과 결실의 계절, 풍요로운 땅에 계절의 선물인 버섯 또한 쑥쑥 돋아난다. 산에 고기가 난대서 민초들이 일찌감치 즐겼던 그것, 바로 버섯이다. 보통 ‘우산’ 모양(뽑기 어려운)처럼 커다란 갓을 쓰는데 이곳에서 포자를 내뿜는다. 오 마이 갓! 버섯의 갓은 일종의 생식기관이었다. 특히 나무가 생장을 멈추는 가을에 영양을 축적해 버섯을 돋우고 포자를 틔운다.



자! 정리해보자. 우리가 아는 버섯은 그 실체가 분명하다. 만질 수도 있어 캐고 뜯어 먹는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균류(菌類)가 사방팔방 퍼져 있고 이들 균류가 생식을 위해 실제 인간의 육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자실체(子實體), 즉 버섯이다.




우리가 아는 버섯은 그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서식 환경이야 늘 그렇듯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잘 돋아난다.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경우가 많아 나무 그루터기나 썩은 가지, 기둥에서 버섯 군락을 발견하기 쉽다. 균류는 죽은 나무의 조직을 먹고 산다. 멀쩡히 살아 있는 나무는 버섯과 곤충을 방어하기 위해 독성 물질을 방사한다. 이것이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다.



버섯은 서식하는 곳도 다양하다. 보통 축축하고 어두운 곳이라면 어디든지 돋아난다. 하지만 초목이 있어야 한다. 나무에 붙어야 생겨날 수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버섯은 식물도, 동물도 아니다. 그래서 불가의 스님들이 동물 살생을 피하기 위해 육류는 삼가고 버섯을 섭취한다는 주장은 조금 모순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균류에 속하는 버섯은 동식물 분류의 매우 특별한 경계에 있다. 동식물을 넘나드는 다양한 성질을 가진 다세포 생물이다. 유성과 무성을 가리지 않고 생식한다. 대부분의 식물이 하는 광합성을 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동물이 가진 근육 세포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버섯은 흔히 식용버섯과 독버섯으로 나뉜다. 워낙 종류가 많아 이를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대부분은 독버섯이다. 깊은 산에서 자라는 독버섯은 환각까지 일으킬 수 있으니 이를 잘못 먹었다간 산속에서 쓰러져 조난 당하기 쉽다. 실제 독성보다 더 위험한 이유다.


하지만 버섯은 맛이 좋아 세계적으로 상식되는 식재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버섯을 먹어왔다. 영어의 머시룸(Mushroom), 이탈리아어 풍고(Fungo)는 레스토랑 메뉴에서 봐서 이미 익숙하고, 나무의 자식이란 뜻을 가진 일본어 기노코(きのこ), 프랑스어 샹피뇽(Champignon) 등 세계적으로 버섯을 지칭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생활과 밀접한 식재료가 버섯이다.


수만 종에 이르는 버섯 중 식용은 일부에 불과하다. 엄청난 번식력과 생장의 원리에 따라 식용 외에도 유용한 용도가 있지만 푸드로지에선 식용버섯만 다루기로 한다. 자, 어떤 것이 있을까. 추석이 지난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가을 송이버섯에 관한 것이다. 향이 좋아 코로 먹는다는 값비싼 버섯이다. 특유의 향긋한 송이 향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이가 큰돈을 지불한다. 송이(松茸)니 당연히 은은한 솔향을 낸다. 향이 가장 강해질 때는 국물 요리에 넣거나 굽는 등 열을 가할 때다. 이 중 최고는 일본의 도빙무시(土甁蒸)처럼 국에 넣고 끓여 수증기에 섞인 향이 퍼져나갈 때다. 하지만 식욕과 소유욕이 강한 사람들은 귀한 송이를 그대로 썰어 회로 먹거나 살짝 구워 먹기를 선호한다.


송이의 인기는 이미 옛날부터 대단했다.


1000년 전 삼국사기에 진상품으로 송이가 등장하고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품목이 빠지지 않았다. 소식하기로 소문난 영조도 별미로 꼽았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선물감이었다. 고려 문신 이인로는 선물로 받은 송이를 예찬하는 글을 파한집에 썼고, 목은 이색 역시 송이 선물을 받고 이를 시로 남길 정도로 즐거워했다. 조선의 서거정과 유몽인 또한 송이를 예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송이는 인공재배가 어렵고 생식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던 까닭이다. 당시에도 귀하디귀한 존재였다. 강원 산간지방과 경북, 전북 등 산간 지방에서 많이 나는데 해풍이 닿는 지역의 것을 최고로 친다. 양양과 봉화, 울진 등에서 가을이면 저마다 송이 축제를 연다.


역시 지금이 제철인 능이버섯도 진한 향과 씹는 맛으로 인기가 높은 버섯이다.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최고는 능이, 두 번째는 표고, 세 번째가 송이)’란 말이 돌 정도다. 송이를 저만치 밀어낼 정도라니. 능이 향과 식감이 마치 고기를 먹는 듯해 이처럼 황송한 칭찬을 듣는다. 능이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도 많이 먹는다. 송이와 마찬가지로 재배할 수 없어 고급으로 친다. 맛과 향을 더하기 위해 닭이나 오리 백숙에 주로 넣는다. 그래서 ‘능이’ 하면 보양식의 이미지가 있다.





가을 표고버섯도 빼놓을 수 없다. 특유의 감칠맛으로 진상품에 들 정도로 고급 버섯이었다. 인공재배에 성공하면서 그 지위가 격하됐다. 재배가 용이해 흔하게 볼 수 있대도 그 맛은 어디 가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도 재배에 도전했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말려서 가루를 내면 조미료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감칠맛이 강하다. 국물이나 요리의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구아닐산을 많이 함유했다. 씹는 맛도 좋아 채식 식단에서 고기 맛을 대신하는 식재료로 빠지지 않는다. 채를 썰어 잡채에 넣고 고기를 다져 갓에 채워 넣어 표고전을 부치기도 한다. 신라면에도 들어 있다.


송로버섯은 트뤼프라 불리는 서양 최고의 버섯이다. 개체 수도 적고 캐기도 어렵다. 떡갈나무 아래 땅속에서 자란다. 돼지를 훈련시켜 송로를 찾는 데 쓴다. 값비싼 탓에 생트뤼프를 많이 쓰지 못해 요리의 풍미를 좋게 하기 위한 고명으로 조금 얹거나 트뤼프 오일을 내서 쓴다. 화이트 트뤼프가 조금 더 비싸다.
석이버섯은 생소하다. 바위에 붙어산다. 맛과 식감은 목이버섯과 비슷해 전골에 넣거나 볶아먹기도 한다. 하지만 석이는 버섯 중에서 가장 특이한 종류다. 지의류(地衣類)에 속하는 석이는 생장도 느리고 귀해 송로버섯만큼 비싼 값을 받는다. 깊은 산골짝 절벽에 기어 올라가 뜯어낸다. 채취하기도 어려운 데다 한 번 뜯고 나면 다시 자라는 데 20여 년이나 걸리는 까닭이다.


조선 중기 발간된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 석이떡이 나온다. 그 석이가 요즘 석이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석이를 굉장히 많이 써서(1말) 만든다고 기록돼 있다.

소혀버섯은 정말 소 혓바닥처럼 생긴 버섯이다. 특이하게도 소고기 육회의 식감이 나는 덕에 회로 즐긴다. 소 생간과 닮은 소간 버섯도 있다. 노루궁뎅이 버섯은 북실북실한 생김새가 새하얀 털 뭉치를 꼭 빼닮았다. 주로 약용으로 쓰는데 최근엔 인공재배에 성공해 식자재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전골에 넣어 데쳐서 그대로 먹거나 살짝 볶아먹는다. 서양에선 노루궁뎅이 대신 사자 갈기 버섯이라 부른다. 망태버섯은 늘어진 그물 같은 생김새가 마치 하얀 면사포를 닮았대서 숲속의 귀부인이라 불린다. 고급 약재나 식재료로 두루 쓰인다.


송이를 대신해 나온 새송이, 양송이는 찬거리 채소처럼 일상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식감이 좋은 팽이버섯은 요즘 음식에 감초처럼 두루 쓰이는 식자재다. 이 버섯들은 꼭 가을이 아니라더라도 사철 맛볼 수 있다. 이외에도 특정 질환에 약재로 많이 쓰는 차가버섯, 영지버섯, 상황버섯 등이 우리가 먹는 대표적 식용버섯이다. 대부분의 식용버섯은 면역에 좋고 항산화 효과도 뛰어나다고 한다. 열량대비 단백질 함량도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맛이 좋은 것이 최대 장점이다.


계절의 선물, 버섯을 통해 비로소 땅과 소통한다. 영양 많고 맛좋은 버섯 덕에 무르익은 가을을 몸에 차곡차곡 담아둔다. 만추로 흐르는 세월이 공허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 어디서 어떻게 먹을까


◇ 맹버칼 = 버섯칼국수를 내세우며 직장인들의 허기를 책임지는 종로 1번지의 맛집. 제철 버섯을 한가득 넣고 칼칼하게 끓여낸 칼국수가 맛있어 늘 기나긴 줄을 드리운다. 육수는 차치하고 버섯과 국수밖에 눈에 띄지 않지만 국물과 면발의 조화가 심상치 않다. 매콤하고 시원 담백하다. 버섯 특유의 감칠맛으로만 해결한 국물 맛이 좋아 남녀노소 모두 즐겨 찾는다. 깻잎을 갈아 넣어 녹색을 띠는 면발은 탱글탱글한 것이 씹는 맛이 좋다. 서울 종로구 종로5길 58 석탄회관 지하 1층. 7500원.


◇ 대나무집 = 일산 한복판 주택가에서 조용히 능이백숙을 하는 곳이지만 어찌들 알고 찾아와 좌석을 가득 메우는 집이다. 우직하니 튼실한 토종닭을 솥에 넣고 능이버섯과 함께 오랜 시간을 팔팔 끓여내니 어찌 맛이 없으랴. 감칠맛이 잔뜩 밴 국물에 투실한 닭고기까지. 서너 명이 코를 박고 소주잔을 기울인대도 끄떡없다. 능이 맛이 좋다는 것을 실감하려면 진한 양념보다 이처럼 구수한 백숙이 낫다. 고양 일산동구 강송로

113번길 54-11 1층. 7만 원.

◇ 옥수동화덕피자 = 맛집이 수두룩한 옥수동에서 입소문으로만 그 명성을 지켜오는 집. 이탈리아어로 버섯을 뜻하는 풍기(funghi) 피자를 판다. 고소한 유단백 치즈와 감칠맛 덩어리 버섯을 올려 구워냈다. 화덕을 거치고 나면 버섯과 치즈의 진한 풍미가 차진 식감의 도 위에서 활짝 피어난다. 버섯은 진한 맛을 내는 표고와 식감이 좋은 새송이, 양송이를 섞어 쓰고 치즈는 모차렐라를 얹는다. 불이 가시고 나면 여운이 오래가는 트뤼프 오일을 둘러 용의 눈에 점을 찍는다. 서울 성동구 한림말3길27-1 1, 2층. 1만8000원.

◇ 장흥 불금탕 = 국물 요리를 워낙 좋아하는 한국인, 그래서 별의별 탕이 다 있다. 혜천탕, 회춘탕, 해천탕. 장흥엔 불금탕을 파는 집이 있다. 날이 쌀쌀할수록 맛이 드는 음식이다. 산과 들, 바다의 영양을 담뿍 담은 뜨끈한 국물을 보글보글 끓여낸다. 토요시장 ‘불금탕 1번지’에선 소문난 장흥한우나 닭, 오리 등 육류에다 문어, 전복, 키조개, 소라 등 해산물, 그리고 황금팽이, 백목이, 느타리, 만가닥버섯 등 갖은 제철 버섯과 황칠까지 넣고 끓여낸 ‘불금탕’이 명물이다. 이 안에 모든 산해진미가 들었으니 불에 얹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인공은 의외로 버섯이다. 빼곡히 채워낸 버섯은 고기에 씹는 재미를 더하고 담백한 국물에는 감칠맛을 입힌다. 장흥 장흥읍 토요시장 육교 2층. 5만 원(소).


◇ 울진 천년한우 = 대게뿐 아니라 좋은 소나무도 많은 울진군은 당연히(?) 가을 송이의 보고다. 울진읍 천년한우는 신선하고 고소한 한우 쇠고기를 울진 송이와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부탁하면 구해서 주지만 송이 시장에서 미리 구입해 가도 된다. 육즙 가득한 소고기와 진한 향을 품은 송이가 그리도 잘 어울린다. 갓 채취한 송이를 썰어 숯불을 쬐고 나면 더욱 진하게 피어나는 향에 감동한다. 울진 울진읍 울진중앙로 71. 고기는 등심 기준 1인분 2만2000원. 송이 가격은 시가.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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