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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an 03. 2021

13. 한입버섯

남편이 흔쾌히 이틀 연속 텃밭에 발길을 내 준 이유는 순전히 한입버섯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남편이 먼저 내려가 시동을 걸고 기다릴 정도였다. 어제 손바닥만 한 땅이나마 흙 고르기를 하느라 힘이 들 만도 한데 마치 한잠 자고 났더니 거뜬하다는 듯 방금 탈피한 5령 애벌레처럼 기운찬 표정이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힘이 솟을 충분한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일요일 8시 10분. 길이 막힘 없이 흐른다.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작물을 심었을 뿐인데 어떻게 울금을 심다 말고 토란으로 넘어갔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내 행동을 뒤늦게라도 수정을 하게 되어 즐겁다. 깜빡 못 심고 들고 온 울금을 심고 시간이 남으면 삼잎나물이나 연한 것들로 따면 텃밭에서 더는 할 일이 없다. 정오 전에 돌아와 쉴 수 있겠다.


텃밭 입구는 조경용 소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다. 한창 텃밭에 열을 올리던 시절엔 며칠에 걸쳐 소나무 전지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 남편은 소나무 전지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우리 밭 둘레에 있는 몇 그루 안 되는 소나무 전지를 자신이 직접 해 줄 생각에 남편은 부풀었었다. 


조경용 소나무 밭이 조성되기 전에는 잣나무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죽죽 위로만 벋는 잣나무들 가운데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지다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며 미끈한 자태를 자랑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조경용 소나무 밭의 등장과 함께 더 높은 산은 깎아 택지 조성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잣나무들도 사라졌다. 잣나무 사이에 서 있던 소나무 역시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남편이 그 소나무로 보이는 소나무에서 어제 밤톨처럼 생긴 버섯을 땄다고 보여주었다. 모르는 버섯 먹고 사망했다는 뉴스를 며칠 전에도 접했던 터라 빨리 갖다 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편은 검색해서 알아보기를 원했다. 인터넷에서 밤톨처럼 생긴 버섯을 검색했다. 누가 방금 떨어진 잘 생긴 반질반질한 알밤을 장난처럼 붙여 놓은 모습이라는 말과 함께. 한입버섯이라는 이름도 있는 버섯이란다. 항암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맛이 써서 아기들 젖을 뗄 때도 사용했다는 내용도 있었다.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버섯이었다. 





"여기야, 이 소나무."


남편이 어제 밤톨처럼 생긴 버섯을 땄다는 자리를 가리켰다. 텃밭으로 들다 말고 남편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섰다. 죽죽 키만 올리는 잣나무들 사이에서 홀로 굴곡진 몸매를 자랑하던 그 소나무가 쓰러진 채 오래 그런 자세로 지내온 모양이었다. 조경용 소나무 밭 쪽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조경용 소나무들은 모양을 내며 자라는데 늘씬했던 소나무는 쓰러져 시야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허리쯤에서 구부정하게 굽어 누워 있는 소나무에서 버섯을 땄다. 늘씬하다고 몇 번 올려다봐 주었을 뿐인데 잣나무들이 사라지면서 기억의 뒷전으로 밀어 두고 더는 떠올린 적 없던 소나무가 한입버섯으로 우리를 부른 것이다. 



버섯 표면이 마치 설탕시럽을 발라 구운 빵 표면처럼 윤이 난다. 아래쪽으로는 연갈색이 돌면서 흰색을 띄기도 한다. 눕기 시작하면서 버섯이 자라기 시작했는지 하얗게 변색되어 마른 버섯들도 많이 눈에 띈다. 


따낸 자리에는 입 모양의 구멍이 있다. 나무에 붙어 있던 부분의 이물질을 칼로 긁어내고 씻었다. 담금주 5L에 한입버섯 25개를 넣고 밀봉했다. 나머지는 한 김 올려 찐 다음 말리는 중이다. 찌는 동안 열과 수분이 가해져서인지 표면이 끈적거리고 서로 들러붙었다. 작은 포트에 한입버섯 한 개와 감초, 대추를 넣고 끓여 마시면 좋다는 정보에 따라 그대로 해 보았다. 감초 덕분인지 오히려 달큰하다. 점점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는 시기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렸다. 모든 나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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