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밥중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현 Jan 21. 2021

양송이버섯과 코르크 마개

숲 속 깊은 곳에서 버섯집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파란 난쟁이 스머프(The Smurfs)를 아시는지. 그들 버섯 모양, 돔 형식의 집은 틀림없이 양송이버섯일 거라 생각했다. 양송이버섯은 생김이 유독 귀엽고 앙증맞다. 버섯 특유의 강한 향 대신 은근한 내음이 난다. 양송이버섯이 유독 내게 친근하게 감기는 이유일까보다.

 


양송이버섯과 코르크 마개               


"봐봐. 가운데 심지를 이렇게 톡 따내고 그 바로 옆에서부터 껍질을  살살 발라내는 거야."

양송이버섯은 손질이 쉽고 재미난 구석이 있어서 종종 아이들과 함께 다룬다. 시범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곧잘 따라 한다. 알이 굵고 반듯한 버섯은 심지가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데 반해 모양이 실하지 못한 놈은 종종 그렇지 못하다.



팬에 종이 포일을 깔고 심지가 떨어진 부분이 위로 향하게 버섯을 올린다. 가스불을 최대한 약불로 낮추면 오목하게 파인 중심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또록또록 맺힌다. 그러면서 서서히 물이 고인다. 물이 가득 차면 버섯이 알맞게 구워졌다는 신호다. 몸이 뜨겁게 달구어진 버섯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고인 버섯물이 흐르지 않도록 틀림없이 접시로 옮겨야 한다. 버섯 굽기에서 유일하게 어려운 과정은 오직 그뿐이다.



"엄마, 코르크 마개를 잘 따낸 버섯에만 물이 제대로 고였네?"

구운 버섯을 보더니 아들이 말했다. 한참을 고민했다. 아들이 말하는 '코르크 마개'란 과연 뭘까 하고. 아하, 과연!



코르크 마개를 '퐁' 들어 올리면 신선하고 감미로운 새 포도주가 솟지 않던가. 물과 기체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코르크 마개가 꽉 틀어막고 있던 양송이의 중심, 바로 그곳에 물이 차오른다. 그러고 보니 순결하고 성스러운 물이다.


  


양송이를 편썰어 카레를, 그리고 파스타를 만든다


먹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는 비밀 병기처럼 양송이버섯을 꺼내 든다. 단언컨대 양송이는 고기의 무게감에 버금가는 식재료다. 어떤 날은 육고기 대신 양송이를 듬뿍 넣어 카레를 끓인다. 편 썰은 버섯은 모든 재료가 거의 익어갈 무렵에 넣어 살짝만 익혀주면 된다. 시중 카레 전문점에서도 양송이를 넣은 '버섯 카레'를 주력 메뉴로 다루고 있는 걸 보면 양송이의 존재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송이를 편 썰어 넣은 토마토 스파게티도 꽤 매력적이다. 밀도 높은 토마토소스가 주재료라지만 미트볼이나 고기, 혹은 해산물이 빠진 파스타는 어쩐지 허전하다. 대신 양송이를 넣어 볶으면 식감과 색과 맛, 이 모든 걸 살릴 수 있으니 어찌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양송이스프에 호밀빵을 곁들이는 아침이 새롭다



연중무휴 집밥 먹다 먹다 지친 날, 괜스레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 가고 싶은 날엔 양송이 수프를 끓인다. 우유와 생크림을 반반의 비율로 넣는 것이 레시피의 정석이지만 삶은 감자를 으깨 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요리란 역시 하기 나름이다. 버터에 밀가루를 풀어 볶는 과정(루)이 건강에 썩 이롭지 않다고 생각되 양파를 듬뿍 다져 넣으면 그 모든 게 상쇄된다. 양송이와 양파의 풍미가 온몸에 착실히 베어 들어 오래도록 머문다. 몸이 맑아지면서 동시에 영양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 오묘함이란!



정성껏 끓인 양송이 수프를 호밀빵에 곁들인 아침은 신선하다. 호밀빵은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는, 옛 유럽 서민층이 허기를 때우기 위해 먹던 빵이다. 질감이 다소 퍼석하고 시큼한 맛이 나는, 수프에 적시지 않으면 목 넘김이 어려울 정도로 투박한 빵이기도 하다. 호밀빵을 손으로 뜯어 수프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무척 조화롭다. 그 둘의 조화를 과연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거친 꽁보리밥에 부드럽고 영양 많은 청국장을 끼얹어 슥슥 비벼먹는 기막힌  밥맛쯤 될까.



우리는 만화 속 스머프들처럼 나름의 양송이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다양한 맛의 재미를 누리고 때로는 크나큰 위안을 건네받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코르크 마개를 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식하고 온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