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mma Han Jan 28. 2021

오늘 루저를 내일로 미루기


서점에 간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을 집어 들고 팔랑팔랑 넘겨 본다.


이때 떠오르는 생각은 다음 중 하나일 것이다.


1. 잘 썼다. 최고다. 이 정도는 써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구나.

2.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는데 왜 베스트셀러가 된 거지?

3. 나도 예전에 이런 주제 생각해 본 적 있는데 헐.


© kennyluoping, 출처 Unsplash


나의 경우,

일이 술술 잘 풀리고 건강 상태가 좋을 때, 그리고 뱃속이 든든한 상태라면 다음과 같이 생각이 꼬리를 문다.


1. 잘 썼다. 최고다. 이 정도는 써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구나.

 → 이렇게 잘 쓰는 사람들 덕에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이 작가 책은 꼭 봐야지.

2.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는데 왜 베스트셀러가 된 거지?

 → 나도 한번 차분히 앉아서 써볼까?

3. 나도 예전에 이런 주제 생각해 본 적 있는데 헐.

 → 크으 나란 인간... 이렇게까지 트렌드에 촉이 좋을 일인가..?



반면,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방향성을 상실해 버렸을 때, 그리고 배가 고플 때 (중요하다)라면,

고작 책 한 권 넘겨보았을 뿐인데 이렇게 비꼬아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1. 잘 썼다. 최고다. 이 정도는 써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구나.

 → 나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

2.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는데 왜 베스트셀러가 된 거지?

 → 더러운 세상이다. 마케팅의 노예 아님?

3. 나도 예전에 이런 주제 생각해 본 적 있는데 헐.

 → 또 놓쳤다. 내가 늘 그렇지 뭐.





우리는 늘 상황에 대한 해석을 선택할 수 있다.

나에게 유리하게 할 수도 있고, 나에게 불리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기분이나 건강 상태, 그리고 최근에 마음속에 난 자잘한 상처는 나를 궁지로 내몰기 일쑤다.

상황을 해석하는 장면에서 내 기분이 점점 루저 쪽으로 향한다면, 잠깐 생각을 멈춰 보자.


그리고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다.

1. 배가 고픈가

2. 마셔야 할 커피를 아직 안 마셨나

3. 잠을 못 잤나

4. 10분 전쯤 다른 사람 인스타 같은 걸 봤었나


'예'가 1개 이상이라면 일단은 상황이나 내 생각에 대한 해석을 유예해보자.

때 묻고 꼬질한 자아상을 만들어 스스로를 맹렬히 공격하기 전에 얼른 다른 생각을 해 보자.

(나는 이럴 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스탑!)

할 일은 미루면 안 되지만 루저 기분은 내일로 미룰 수 있다.


© twistlemon, 출처 Unsplash

며칠 전 아이와 소꿉놀이를 하다가

'아이스크림 하나만 주세요'라고 부탁을 하니 '그건 식은 죽 먹기입니다'란다. (이제 속담도 말할 줄 아는 생후 66개월)


아이의 말을 듣고 식은 죽을 먹는 상황을 가만 상상해 보았더니 정말 너무나 쉽다.


부정적인 감정은 힘이 들지 않는다. 그저 어서옵쇼 하며 휑덩그레 놓여있는 깊은 구멍 속으로 나를 쓱 밀어 넣으면 그만이다. 식은 죽 먹기다.

반면 긍정적인 감정은 에너지가 든다. 긍정은 기대와 희망을 업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쉽게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가 없는 날마저 긍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그저 부정적인 마음을 유예해보자는 것이다.

야. 내일 다시 얘기하자,라고.



어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우리 몸은 하루에 평균 약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몸 전체 세포의 1%를 약간 웃도는 규모다.

1초당 380만 개꼴로 세포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질량 기준으로는 하루 80g이다.



80일만에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교체된다면 과연 이 몸은 부모님에게 받은 '내 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테세우스의 배 일화가 떠오른다)

아니, 그것보다 1초마다 새롭게 생겨나는 380만 개의 세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하나의 결심은 선다.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있는 380만 개 (상상도 안 간다)의 세포들에게 이 몸이 그래도 살아갈만한 몸이라는 것이라는 확신은 주기로.


그 방법 중 하나로, 루저 기분이 들 때는 얼른 스탑. 하기로.




사실 요 며칠, 낮이밤져의 기분으로 살았다.

낮에는 맹렬하게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개선장군처럼 살다가, 밤이 되면 손에 잡히는 성과가 보이지 않아 꼬질한 루저의 기분으로 하루를 맺곤 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 기분이 개운 할리가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 세포들이 모두 뾰족뾰족 날카로운 모습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를 성장하게도 한다.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게 하고 해결책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루저 기분은 그런 '건강한 부정적인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이 기준이 어찌 나뉘는가.

아래의 리트머스 종이에 내 상태를 넣어 보자.


건강: 개선책을 내고자 뇌가 바쁘게 움직인다



조금 건강: 일단 맛있는 걸 몸에 넣어준다


        ⇩


조금 위험: 울적하니 일단 쿠팡에 들어간다



위험: 남과 나를 비교하며 루저만의 자괴감에 몸부림친다



판단 유예, 해석 유예, 기분도 유예.

하루에도 몇 번씩 슬금슬금 꼬질한 생각이 머리를 디밀고 들어올 때는 얼른 다른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이런 작은 전환이야말로 1초마다 새로 들어오는 세포들에게 환영의 축포를 쏘아주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 maximebhm, 출처 Unsplash


관련 기사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80558.html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라는 세계에 잠깐 얹혀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