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웨이 Oct 12. 2016

 빨강머리 앤의  루저아저씨 2

- 시애틀 동네  커피  한 잔 -

. 굿바이.....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루저아저씨


 어린 시절, 읽은 책 속에서  잊히지 않고  강렬한 이미지로 오래 오래 남은 매혹적인 인물이 있었다면  그게 바로 내 진짜 모습이다. 


시애틀 아날로그 커피

어린 시절부터 내 발길은 본능적으로 책 냄새를 따라 이어졌었다. 한때  역리학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내 사주에는  오행 중 木 ,나무가 없었다. 부족하면 절박해지는 것인지 나무를 가공한 책냄새가 너무도 좋았다. 아니다 木은 행동력이다. 木이 없으니 행동보다는 앉아서 상상하는 상상력의 촉수가 더 발달해서 였는 지도 모르겠다. 몸으로 놀기보다 상상 가능한 문자가 땡겼는지 ,,,,  책냄새 따라 시작한 발걸음은 땡이, 독고탁 같은 인물을 만난 동네만화방에서 학교 도서관으로 이어졌다. 아담한 붉은 벽돌 삼층 건물,긴 복도  마지막 끝에 있던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도서실이라는 표현이 적당했던 현재 수준으로 보면 작은 서점쯤 되는 작은 규모였으나 내겐 큰 우주였다. 그곳에서 미운오리새끼 ,타잔 , 빨강머리 앤. 암굴왕 ,소공녀,철가면.......을 만났다.     


어 , 아저씨 . 내 서재에서  연인이었던 비설거지아저씨 .

낡은 청바지에 닥크그린색 티셔츠를 입고 소파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다.    


 가장 오래 연인이었던 비설거지아저씨 .


 빨강머리 앤을 어린 시절에 안 읽은 사람이 있을까 ? 못 생겼으나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한 그런데 빨강머리 앤 하면 내 머리 속에는 뜬금없이 한 아저씨 이미지가 선명하고 또렷하다.미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턱수염 덥수룩한 찢어진 청바지에 빛 바랜 그린색 반팔 스웨터 곱슬곱슬 머리 ,빗물 떨어지는 긴 처마, 양철 다라이에 비설거지 가득, 빗물 튕겨 옷을 더렵혀도 신경도 쓰지않는 .....    

 

물론 빨강머리 앤과의 만남도 좋았다 ,상상력의 촉수가 발달한 매력적인 소녀 . 앤 덕분에 감옥에 절대로 안가는 킬러가 되는 법을 배웠으니까. 상상력 ~나는  그 세계에서 외모도 집안도 별 볼 일없게 태어나게 한 우주의 신도 불러다 놓고 권총으로 협박했으며 신도 내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했다. 상상력은 불가능한 세계가 없는 막강세계이기 때문에. 상상력 놀이에서는 ...    


 그러나 진짜 나를 매혹시킨 인물은  앤의 이웃집 괴팍한 아저씨., 다른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 루저 아저씨였다. 딱 한 씬, 다시 읽어보니 최근 책에서는 나오지도 않는다. 오가는 사람없이 혼자 살며 느리고 게으르게 사는 아저씨. 압권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면 밀린 설거지를 하려고 냄비며 밥그릇을 꺼내서 양철 바케스에 처 박아 두고 우두커니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집중하고 날이 개고 햇빛이 나면 테라스 앞 나무 의자에 앉아서 키타 치는 아저씨. 아 ~ 이런 삶도 있구나!!!!


이 한 씬이 내 영혼을 강타하며 부르르 떨게했다.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파티장 가는 것이 아닌 하루끼가 즐겨입는 모자달린 추리닝에 슬리퍼 질질끌고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이미지. 내가 갈 길이 제도권 아닌 아웃사이더 ,자유, 길 밖, 귀부인이 아닌 다른 모습이라는 ...    


  멋..지..다.    


왠지 익숙하고 친아버지보다 더 친아버지같이 느껴졌던 아저씨 ,소설 속의 상상력만으로는 미흡했던  이미지는 훗날 너바나 의 사진을 보고 ‘올 어폴로지’노래를 들었을  때  완벽하게  정확히 완성되었다.


자유로운 영혼    , 저항하는 영혼


 루저 아저씨는 내 비밀 아지트에 장기투숙객으로 기거하게 되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간섭하여 안주보다는 도전을 부축였다. 몰디브 휴양지 리조트에서의 스파 대신 , 티벳초원 산책길,  히말리야 베이스캠프 오르는 길을 걷게 했으며 , 사십대 초반에 인생2막 시작하려고 교사 사표를 내게 했다.   


내게 맞는 명품 옷은 샤넬도 구찌도 아닌 아디다스와 일본 유명한 디자이너 요지야마모또가 콜레보레이션한 y3 브랜드 ...아니 진짜 내가 가장 편하고 나답다고 느끼는 이미지는 아날로그 느낌의 골목길에서 낡은 츄리닝 옷 차림으로 츄리닝 포켓에 손 넣고 슬리퍼 질질 끌고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결국 더도 덜도 아닌 루저 아저씨  모습 딱 그대로 ,내가 바로 아저씨가 되었다.


그리고 떠나 시게 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아저씨 . 정말 사랑하고 미워했어요. 아저씨가 가라고 조언하셨던 길은  차마고도처럼 외롭고 두렵고 몸이 힘든 길이었어요. 편하게  차를 탈까 ,그만둘까 끝없이 마음은 흔들려가면서 입으론 아저씨 욕하면서 낭떠러지길을 겨우 통과하곤   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끝나고 나니  바닷가호텔 객실의 쇼윈도처럼 큰 창문 앞에서 그냥 인생이란 바다를 구경만 한 게 아니라 인생의 세세한 냄새 얼굴 빛....날숨,들숨 까지 생생하게 체험했댜는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기쁨 .....

어울리지 않는 거북한 정장 옷차림을 버리고 내게 맞는 옷을 걸치고 내 길을 걸었다는 기쁨에 행복합니다   

  사랑에는 꼭 미움이,미움에는 사랑이 포함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도 ...

..........사랑하고 그리고 열렬히 미워했어요.    

 

아저씨가 늘 그리워하셨던 비와 안개가 몽환적인 시애틀, 그 영혼이 자유로운 도시로 아저씨  운명의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시애틀 작은 동네에 수줍게 숨어있는 자기색깔 이 확실한 카페 아날로그 , 저 자리에 앉으셔서 젊은 바리스타가 손수 드립한 커피 한 잔 즐기면서  또 누군가의 또다른 자기가 되어 연인이 되시길 ,,나의 또다른 나인  분  

 

 굿바이 루저 아저씨 !





이전 01화 상처입지 않고 연애하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