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깜부기

보니별 2008. 10. 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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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부기


                                                                                          강길수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리밭 이랑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책보를 어깨에 둘러맨 채다. 아직 푸른 보리지만 이삭은 제법 여물어 보인다. 깜부기를 찾고 있다. 조금 지난 다음, 보리밭 가에서 아이들이 낄낄대며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두세 명은 도망가는 아이를 따라가기도 하며 장난을 친다. 남은 아이들은 무엇이 그토록 즐거운지 얘기하며 웃고 노래도 부른다. 보리피리 소리도 즐겁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깜부기놀이 한마당이 건너 푸른 골짜기로 흥겹게 메아리친다.

  정오를 한참 지난 늦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아이들은 발걸음도 가볍게 우르르 동네로 몰려든다. 모두 입 언저리가 까맣다. 까만 입술 안에는 보리피리 한 개씩을 물고 있다. 얼굴도 온통 먹투성이 그림이다. 어떤 아이는 사립문 앞에서 윗도리를 벗어 탈탈 털기도 한다. 마을에는 어머니가 웃는 집도 있고, 아이가 혼나는 집도 있으며, 혼자 까만 무쇠밥솥에서 산나물 죽을 꺼내 점심으로 때우는 아이도 있다. 산골 마을 보릿고개의 하루는, 이렇게 아이들의 깜부기 놀이 한마당과 함께 햇살 따가운 한낮을 넘긴다.

  깜부기…. 그 것은 내게는 아릿하고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우리나라가 일본 압제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며 빚어진 찢어지게 가난했던 오륙십 년대까지, ‘보릿고개’를 넘으며 농촌아이들이 즐겨 먹던 간식거리가 깜부기였다. 깜부기를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보리깜부기’가 된다. 하지만, 가장 흔하고 모습이 까매서 찾기 쉬웠고, 또 아이들이 즐겨먹던 깜부기는 보리깜부기였다. 그래서 ‘깜부기’하면 으레 보리깜부기로 통했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의 마음에 아련히 추억으로 살아있는 말은 ‘보리깜부기’라기보다 ‘깜부기’이리라 여긴다.

  깜부기는 보리이삭이 팰 때, 여물지 못하고 까맣게 병든 보리이삭을 말한다. 옥수수, 벼, 밀, 수수, 심지어 양파에 까지 깜부기병이 든다한다.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이랬다. 깜부기는 여러 가지 곰팡이 때문에 생긴다. 깜부기병이 들면 씨, 잎, 줄기, 꽃, 비늘줄기 등의 껍질에 곰팡이 포자가 들어 있는 포자낭이 모여서 검댕처럼 부풀어 오른다. 보리의 깜부기병은 속 깜부기병과 겉 깜부기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속 깜부기병은 보통보리보다 다소 늦게 이삭이 패기도 하지만, 대부분 잎 집에 싸여 패지 못한다. 그래서 확산 피해도 적다. 겉 깜부기병은 이삭이 다 팬 온전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깜부기가 된 것이다. 제거하지 않고 둘 경우 터져 바람에 확산되어 피해가 크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이 겉 깜부기병에 걸린 깜부기다. 

  깜부기는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보리이삭들 사이에 이따금씩 홀로 서있다. 보리 잎과 대궁은 아직 초록인데, 이삭의 낱알과 수염이 녹황색을 띠기 시작할 무렵이면 깜부기를 꺾어 먹기 가장 좋은 때다. 깜부기의 수염은 가늘 때 마르거나 자라지 못해 먹는데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깜부기를 대궁 채 꺾어 밭두렁이나 놀기 좋은 곳으로 갖고 나와 입에 넣고 훑어 먹으면 된다. 그러나 깜부기를 먹을 때는 요령껏 먹어야 한다. 잘못 먹으면 입술이 새까맣게 되고, 코로 가루가 빨려들기도 하며, 눈에 날아 들어가기도 하고, 옷에 까맣게 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부드러운 깜부기의 수염을 떼 내려 해서는 안 된다. 수염을 떼면 깜부기 이삭이 으스러져 먹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옷도 버린다. 그리고 깜부기병을 확산 시킨다. 깜부기 잘 먹는 방법이 있다. 입을 크게 벌린 뒤 숨을 멈추고 깜부기이삭을 입속에 넣는다. 입을 다물고, 이삭에 고르게 침을 혀로 바른다. 가루가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다음 입안에서 쭉 훑어내면 된다. 입 안에는 침과 반죽된 깜부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반죽을 조금씩 삼켜 먹으면 된다.

  깜부기의 맛은 특별하지는 않다. 다른 음식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어떤 약한 맛이다. 어떤 아이는 비릿하다고도 하고, 다른 아이는 고소하다고도 한다. 아마도 깜부기곰팡이의 영향이리라. 나의 경우는 배탈이 갑자기 났을 때, 어머니가 가마솥 밑에서 긁어 주시는 검댕 맛과 비슷한 것도 같았다.  어떤 것은 진한 곰팡이 냄새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잘못 입에 넣었을 경우는 뱉지 않을 수 없다. 깜부기를 자주 먹다 보면, 한 이삭 안에서도 곰팡이가 있는 부분을 혀로 식별하여 골라먹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다.

  ‘궁하면 통한다!’했던가. 아니면, 하늘이 준 지혜였을까. 우리의 농촌 선배 민초들은 그 곤궁하던 보릿고개 어린시절을 깜부기를 간식거리로 먹으며 자라났다. 그래도 깜부기 때문에 배탈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굶주리며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고통의 보릿고개의 시간도 아이들에겐 깜부기가 있어 즐거운 축제 같은 한마당을 만들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깜부기 꺾어 먹는 것을 그리 나무라지 않았다. 생 보리대궁으로 보리피리를 만들라치면 호되게 나무라던 어른들이, 깜부기 보리대궁으로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라는 주문까지 하였다. 지금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깜부기로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본 것 같다. 아이들 간식에, 놀이마당에, 깜부기까지 제거하였으니 말이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농가에서 보리농사를 짓지 않는다. 지자체 등에서 권장하여 대단위로 짓는 곳은 있지만, 그런 곳을 빼고 나면 사는 주위에서 보리밭을 만나기란 어렵다. 설사 가까이 보리밭이 있다 하여도 아이들이 깜부기를 간식삼아 꺾어 먹을 리 없다. 보릿고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깜부기가 더 그립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보리와 깜부기가 나오면, 오랜 소꿉친구를 만난 듯이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의 선인(先人)들은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란 그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어찌하여 깜부기 한마당 놀이를 연출해 낼 수 있었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믿음을 자연 안에서, 자연의 한 가족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숨 쉬면서 면면히 이어온 우리네의 삶 때문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컴퓨터화면에 깜부기영상을 올려놓고 쳐다본다. 까만 깜부기이삭 속에 눈부시던 내 소년이 녹아있다.

 

 

 

      ***   2008. 10. 28.  <보리수필>3호 공통주제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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