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때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의 권유에 의해서.

문방구에서 위에 스프링달리고 줄 안쳐져 있는, 지금의 A4 크기의 작은 스케치북을 사서 가운데 줄을 좍 그어 위에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는 다시 여섯 칸 정도 줄을 그어 거기엔 글을 썼다. 직장생활을 하시던 엄마는 매일 퇴근하시면 내가 쓴 일기를 보고 얘가 오늘 어떻게 지냈구나 하셨으리라.  틀린 글자는 바로 잡아주시고 그림에 성의가 없으면 그것도 지적해주시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되면서부터는 그림을 빼고 그냥 글로만 일기를 써도 좋다고 하셨다. 그림을 잘 못그리던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문방구에서 파는 알록달록 예쁜 일기장을 사서 쓰고 싶은데 아빠께서 누런 종이에 줄이 쳐진 종이를 여러장 인쇄해오셔서는 위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철끈으로 묶어서 일기장이라고 주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거기에 일기를 썼다.

 

중학교 들어가서야 내맘대로 알록달록 일기장을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중학교때부터의 일기장은 지금도 다 가지고 있다. "또록아 안녕? 거기서 잘 지내니?" 이렇게 시작하는 중학교 1학년때 첫 일기장, 첫 페이지는 그 무렵 키우다가 세상을 떠난 어린 고양이에게 쓴것이다.

 

요즘도 일기장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열심히 쓰지 않는다. 아주 드문드문 쓰는 탓에 한해가 다가도록 아직 메꿔지지 않은 흰 공간이 더 많은 채 다음 해 일기장으로 넘어가기 일쑤이다. 대신 틈틈이 찍어놓는 사진들이 지나간 날의 기록을 대신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진이라도 잘 정리를 해놓아야지.

 

 

 

 

 

 

 

 

 

 

요즘 버섯이 한창이다. 이 사진들은 모두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을 넘지 않는 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것이다. 아파트 둘레 화단 한구석에 저런게 있어서 봤더니 버섯이었다. 황금색 버섯. 더 넓적하고 진한 색의 버섯도 있고, 아마 더 가보면 다양한 버섯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2003년 아이 사진 찍어주느라 처음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을 구입해서 아주 잘 써오고 있었다 바로 며칠 전 까지.

아직도 더 쓸 수 있는데 새로 카메라가 생겼다. 새 카메라 손에 익히려고 이렇게 저렇게 마구 찍어보고 있다. 특히 꽃 사진 ^^

 

 

 

 

 

 

 

 

 

이것도 우리집 앞 공사판 한 구석에서 찍었다. 공사판 안 보이게 하늘을 향해서 ^^

물 없는 곳에 있으니 갈대가 아니라 억새. (틀렸으면 서재 친구분들께서 알려주시겠지)

 

 

 

 

지금 내 책상 바로 옆.

 

 

 

 

 

접사 찍어보려고 했는데 아직 서툴다.

 

 

 

 

이웃이 마당에 도토리를 말리고 있었다.

도토리 키재기라더니, 고만고만한 도토리들, 귀엽다.

 

 

 

 

 

 

 

나무 진액의 점도가 얼마나 크기에, 떨어지지 않고 저 상태로 정지해있네.

 

 

틈틈이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담아놓아야겠다.

일기를 대신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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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10-1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사진기로
새롭게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이야기 길어올리시겠군요~

hnine 2014-10-14 10:02   좋아요 0 | URL
즐거운 이야기만 길어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야 않겠지요. 솔직한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새로운 사진기는 아직도 손에 잘 인익어서 이렇게 잡았다 저렇게 잡았다 그러고 있어요 ^^

2014-10-14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4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4-10-1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중학교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있는데 어쩌다 가끔씩 펼쳐 보면 그땐 참 순진무구했구나, 참 `단순하게`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나중에 대학에 다닐 때뿐 아니라 직장생활 초창기까지도 꽤 열심히 일기를 쓴 듯한데, 그게 어느 순간부턴가 고작 몇 달에 한 번 쓰는 걸로 점차 바뀌면서 어느덧 `일기장`은 도무지 낯을 바꿀 줄 모른 채 십 년 이상이나 옛 모습을 꿋꿋이 지키며 `낡았지만 채워야할` 그런 이상한 일기장으로 남고 말더군요. 나중엔 결국 자꾸만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뭔가를 쓰는 쪽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필기구의 변천에서 비롯되는 온갖 다양한 글꼴을 지닌 나 자신의 육필들도 결국은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고, 가끔씩 뜨거운 눈물로 얼룩지게 했던 참회의 부끄러운 기록들조차 다시 마주칠 기회를 영영 세월 속에 묻어버리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늘 그런 `은밀하고도 생생한` 일기장을 아쉬워 하곤 한답니다.

hnine 님께서 찍은 사진들이 다들 좋지만 오늘만큼은 `반들반들 빛나는 도토리들`이 유난히 인상적이네요. 저 녀석들이 떨어진 제자리에서 썩어 다시 새로운 싹을 내밀 수 있었더라면 나중에 얼마나 거대한 숲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hnine 2014-10-14 17:3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oren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으시며 올리신 글 읽으며 `나도 읽어야하는 책인데...` 자극받고 있었답니다. 아마 학창시절 일기도 열심히 잘 쓰셨을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일기를 예전만큼 자주 안쓰면서도 해가 바뀌면 꼭 잊지 않고 새일기장을 마련한답니다. 오래전부터 써오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가봐요.
빛나는 도토리들 사진, 나중엔 쟤네들이 다 가루로 되어 묵으로 만들어져 식탁위에 오를까, 사진찍으며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좀 짠 했더랍니다 그런데 oren님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네요.
이제 조금 있으면 카메라에 겨울 사진이 담기겠지요.
함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바람 2014-10-1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토리 나무진액 사진 참 멋져요

hnine 2014-10-14 17:38   좋아요 0 | URL
도토리나무 아니고 소나무 진액이랍니다. 꼭 눈물 흘리는것처럼 보이지요? ^^
하늘바람님, 요즘 주위에 버섯이 아주 많아요. 아이들 데리고 산책하시다가 눈여겨 보시면 아마 주위에 어렵지 않게 찾으실 거예요. 아이들이랑 버섯 찾기 놀이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다린이 데리고 했던 기억이...^^

icaru 2014-10-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소름이 돋아요,, 잘 찍은 사진들을 보면,,, 혹은 뭔가를 떠오르게 하는 사진들을 보면 그러하옵죠 ㅎ
버섯사진도 그래요~ 저는 일전에 구우신 빵들 야외로 들고 나가 모아놓고 설정샷 찍으신줄 알았네요 ㅋ

중학교1학년 때부터의 일기장은 잘 간직하고 계신다고요 우아,,, 저도요 ㅎ 집에서 독립해 나오면서,, 중1때부터의 일기장은 목숨처럼 챙겨들고 나왔어요 ㅎ

hnine 2014-10-14 17:31   좋아요 0 | URL
아주 잘 찍은 사진은 아닌걸요. 칭찬해주시니 저는 신나지만요 ^^ 미러리스 카메라라고, 크기는 보통 디카 크기정도인데 성능은 DSLR 수준이라고 선전하는 카메라를 새로 장만했어요. 망원렌즈는 아직 개시도 안해봤고요. 한손에 잘 안잡혀서 아직도 어색하게 들고 어색하게 찍고, 그런답니다.
저도 중1때 일기장부터 목숨처럼 챙겨서 이사 다니고 있지요. 그전 일기장은 엄마께서 이사하시면서 다 버리셨대요 ㅠㅠ 그런데 지금 읽으면 아주 재미지답니다. 중1인데 어쩜 이렇게 애들같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위에 다른 분도 버섯 사진이 일전에 구운 빵과 너무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icaru님도!! 정말 그런가봐요. 버섯아니고 빵이라고 한번 장난쳐볼까 하는 생각이...ㅋㅋ

비로그인 2014-10-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장만하신 카메라, 정말 축하드려요.
이런 생생한 일기도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페이퍼를 찰칵찰칵 찍어나가시길 바랄게요. 정말 기대만발..^^

hnine 2014-10-15 00:42   좋아요 0 | URL
네, 카메라와 제가 한몸이 되도록 열심히 갖고 다니고 찍고 올리고 그러겠습니다 ^^

서니데이 2014-10-1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참 잘 찍으신다만 생각했었는데, 댓글을 읽다가 다시 분문을 읽고 알았습니다. 사진 무척 선명하고 예뻐요.
(집에서 휴대폰으로 찍는 건 아무래도 이렇게 선명하게 나올 수는 없을 거예요. )

저희집에는 저의 예전 일기장을 엄마가 가지고 계셨는데, 얼마전에 그게 없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시기라서 아마 가지고 계셨던 것 같은데, 많이 아쉬워 하셨어요. 저야 그게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 학교에 들어가서 부터는 제일 싫은게 매일 일기쓰는 거였어요.^^ 그래도 그 때 정성껏 썼다면 지금은 제게는 소중한 것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hnine 2014-10-15 00:47   좋아요 0 | URL
요즘 휴대폰도 사진 잘 나오던데요. 며칠 전 까지 쓰던 제 카메라는 요즘 웬만한 휴대폰보다도 화소수가 낮았거든요.
서니데이님도 그 귀한 일기장을 잃어버리셨군요 ㅠㅠ 쓸때는 귀찮고 쓰기 싫고 도대체 뭘 일기로 써야하나 고민하며 억지로 쓸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마치 예전의 시간들이 형체로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지요. 우리 지금이라도 열심히 기록을 남겨보아요. 나중에 보면 재미있을거예요.

세실 2014-10-1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의 일기를 가지고 계시다고요? 와.....그땐 이렇게 살거라고 상상도 못했겠지요?
저는 카메라 장만하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집에 있는 카메라 잊어버리고, 깨트리고, 고장내고...해서 3개나 헤치웠어요.
제 손은 아마도 도끼손? 그래서 사고 싶은 카메라 다칠까봐 고민만 하고 있답니다.
님 사진 보니 욕심이 납니다. 참 잘 찍으셨네요^^ 특히 마지막 진액 사진....가까이보니 우담바라(?)가 피었어요. 곰팡이라고도 하던데.....

오늘 아침 씽크대에서 가위 만지다가 떨어뜨렸는데 아끼는 접시에 떨어뜨려 접시가 반토막 났어요. 아깝긴 했지만 그냥 주문처럼 `오늘 아침 액땜했네.....`이런 초긍정의 자세가 되네요. 제가 대견했어요. ㅎ
그나저나 접시 세트인데 ㅜㅜㅜ


hnine 2014-10-15 20:22   좋아요 0 | URL
저도 둘째 가라면 서러운 ˝도끼손˝이랍니다. 접시깨는건 일도 아니고요, 프라이팬 부엌 바닥에 떨어뜨려 바닥이 다 패일 정도고요 ㅋㅋ 제가 성질이 급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거 하면서 다음꺼 생각하다보니 지금 하고 있는것에 집중 못해서 오히려 떨어뜨리고 놓치고... 그래도 가위 떨어뜨려 어디 다치지 않으셨으니 천만 다행이네요.
사진 잘 찍었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잘 찍었다기보다 카메라가 잘 찍은거죠 ^^ 지금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찍는데 앞으로 저만의 주제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중학교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공부, 시험, 그런거 없이 먹고, 뒹굴고, TV보고, 놀고, 어른은 그래도 되는줄 알았지요. 참 철 없지요 ^^

백화산 2014-10-1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늦게나마 사진일기를 써보렵니다, 잘보고 갑니다.

hnine 2014-10-19 15:19   좋아요 0 | URL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것 같아요. 사진만큼 사실적인 기록도 없을테니 일기로서 제격이기도 하고요. 백화산님, 잘 써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