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츠구 숙청
히데요시가 친아들 츠루마츠가 어린 나이에 죽자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었는데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으로 삽질하는 동안 히데츠구는 전쟁 준비하느라 돈 날린 다이묘들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조정에 지원을 하는 등 나름 안정적으로 내치를 운영한 유능한 인물이었음
그리고 히데츠구 본인의 성품도 좋아서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들과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았음. 그렇게 2년동안 착실히 입지를 쌓아갔고 사람들은 모두 히데츠구가 도요토미를 이어갈 것이라 확신하게 됨.
근데 1593년 요도도노가 아들 히데요리를 낳게되자 히데요시는 뜬금없이 마음이 변해서 히데요리를 후계자로 정하기로 하고 양자들을 다른 집에 보내는 등 정리하기 시작함. 히데츠구는 지위가 있어서 그대로 놔뒀지만 히데츠구도 불안해졌기에 히데요리와 자기 딸을 결혼시키는건 어떻냐는 제안을 냈는게 거절당했다고 함.
결국 1595년 히데요시는 히데츠구에게 모반죄를 뒤집어씌우고 억울함을 호소하러 찾아온 히데츠구를 만나주지도 않고 내쳐버림. 히데츠구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지만 결국 그해 7월 15일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할복자결하면서 생을 마감함.
그리고 여기서부터 히데요시의 노망이 시작되는데 본래 전국시대에선 할복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그대로 놔두는게 보통이었음. 근데 히데요시는 이걸 깨버리고 히데츠구의 처자식들 30여명을 전부 다 처형해버림. 당시 츠지마루라는 자식은 갓난아기에 불과했고 다른 아이들도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었는데도 모두 죽여버렸다고 함.
이때 처형당한 측실 중 한명이 데와의 유력 다이묘인 모가미 요시아키의 딸인 코마히메였는데 이쪽은 나이가 어려서 히데츠구랑 동침조차도 안한 사이였는데도 걸림. 당연히 요시아키는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애걸복걸하지만 히데요시는 "응 조까^^"라고 답하고 요시아키에게 연좌제를 적용해서 강제로 근신처분까지 시킴.
마무리로 히데요시는 이렇게 처형한 히데츠구의 처자식들의 시신을 유족들에게 돌려주지도 않고 커다란 구덩이 안에 파묻어버리고 거기에 '히데츠구 악역총'이라고 이름붙여서 조리돌림거리가 되게 만듬. 이 무덤은 짐승무덤이라는 뜻의 '축생총'이라고도 불렸다는데 한마디로 여기 파묻힌 자들은 개돼지와 다를바 없다는 뜻의 고인능욕.
덤으로 히데츠구와 친분이 있던 가신들도 숙청했는데 문제는 마에노 나가야스를 비롯해서 이때 할복하거나 처형된 가신들은 도요토미 가문을 오랫동안 섬겨왔던 원로 가신들이라서 결과적으로 자기가 죽고 히데요리와 도요토미 가문을 보좌해줄 충신들을 자기 손으로 다 내쳐버린 꼴이 됨.
그리고 모가미 요시아키를 비롯해서 목숨까지는 안 잃었지만 이 사건에 연루되어서 처벌을 받았던 다이묘들은 이때의 원한을 잊지 않고 히데요시가 죽고 난 이후엔 당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됨. 심지어 야마우치 카즈토요 등 사건과 연루되지 않았던 일부 원로 가신들도 히데요시의 노망을 보고 진저리가 났는지 훗날 도요토미가를 손절하고 이에야스쪽에 붙어버림.
마지막으로 히데요시 본인의 인망도 심각하게 떡락하고 자신의 뒤를 이은 요도도노와 히데요리도 백성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리면서 훗날 도요토미 가문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서 몰락하는데 화룡점정을 찍음.
훗날 이에야스가 오사카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천하를 거머쥐고 히데요시의 손자인 쿠니마츠를 처형할때도 당시 백성들은 이걸 보면서 "태합 전하가 죄없는 히데츠구님과 그 가족들을 죽였던 업보다."라면서 조소했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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