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누구나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이 떠오르지.

내 경우에는 눈을 감으면, 소란스런 말매미의 울음소리와 옥수숫대를 스쳐달리는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눈을 뜨면, 난 드넓은 녹빛 옥수수밭의 귀퉁이에 있는 나무그늘에 앉아 그저 껍질만 벗긴 참외를 베어물면서 햇빛에 그을려 갈색이 되어버린 주름진 이마를 닦는 아버지의 땀자국이 거북이 등딱지마냥 넓직한 등판을 바라보는 한 명의 아이가 되어있다.

그 아이의 눈에는 녹빛 옥수수와 땀에 젖은 아버지의 등판이 그렇게나 커보였었지.


말매미가 소란을 피우고, 제비때가 밭을 쏘다니는 한여름의 풍경.

내게는 거북이마냥 땀으로 만든 등딱지를 짊어지고, 개미처럼 옥수수밭을 해치며 옥수수를 따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한여름의 풍경 중 하나였다.

기계도 없이 손으로 옥수숫대를 꺾으며 하나하나 옥수수를 따서 바구니에 넣는 아버지.

바구니가 무거워질수록 아버지의 등딱지도 점점 무거워지고, 아버지의 허리도 개미처럼 굽어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쥐방울만한 몸뚱이로 낑낑대며 바구니를 끌어본 적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그럴때마다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져으며 나를 다시 나무그들로 보내고는 하였다.


그렇게 다시 그늘에 앉아 아버지의 등판을 보고있자면, 아버지는 이따끔씩 얼굴을 찌푸리며 그 귀한 옥수수를 저 뒤로 집어던지곤 하였다.

그 나이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호기심이 많은 나는 풀숲을 해쳐 아버지가 집어 던진 옥수수를 다시 주워들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깜빡하고 놓친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나는 어릴적에 교회를 매우 싫어했다.

주말에 보육원마냥 억지로 끌려가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서워서 그런 것도 있다.

왜 무서웠냐면, 부활절 교회 행사때 했던 공연 때문이었다.

그 연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을 믿지 않고, 교회를 가지 않은 불신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다는 지금보면 코웃음이 나올만큼 허접한 연극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죽어서도 끔찍한 모습을 한 악마가 영원히 고문을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던가?!

연극을 기획한 교회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난 그 연극을 보고난 이후로 교회가 마치 지옥행 티켓을 끊어주는 입장문이라도 된 것마냥 느껴져서 매우 무서웠다.


왜 그 이야기를 하냐면, 아버지가 집어던진 그 옥수수가 마치 지옥의 악마가 먹을 것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비대하게 부푼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옥수수알이 마치 연극속 악마의 뿔처럼 기이하게 뒤틀린 그 모습을 보고도 어찌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끔찍한 모습을 본 나는 옥수수를 집어 던지고는 그 자리에 주저않아 엉엉 울었다.

이유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 악마같은 모습에 내가 지옥에라도 온 것마냥 착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울음을 터트리자,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 귀중한 옥수수 바구니를 집어던지고 달려오더니,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기에 내 추억은 악몽이 아닌 추억이 될 수 있었겠지.


추억에 잠겨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다시 눈을 뜨면 어느세 아버지와 옥수숫대만큼 커버린 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처럼 거뭇한 수염이 난 아저씨의 모습으로.

그런 아버지처럼 거뭇한 수염이 난 아저씨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악마의 옥수수라 생각했던 그 옥수수는 사실 옥수수 깜부기병이라는 일종의 버섯이 피어나는 병에 걸린 옥수수라는 것이고, 아버지가 등에 진 등딱지는 등딱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가장으로써의 책임이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는 악마와 악마의 옥수수가 그리 무서웠는데, 지금은 아버지의 굽은 등과 줄어든 머리숱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물론 옥수수 깜부기병이 옥수수에 나는 버섯이라는 것 빼면 다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옥수수 깜부기 병은 옥수수 낱알에 나는 버섯이라는게 중요한거 아니겠는가?

존나 끔찍하게 생겼고, 실제로 병이라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옥수수를 망치는 병해로 취급받아, 발견되면 그 즉시 멀리 던져버렸다.

이 악마가 쳐먹을 것만 같이 끔찍하게 생긴 버섯에 일말의 쓸모를 찾는 천재가 이 세상에 있을까?


있더라, 그것도 꽤 오래 전부터.

'위틀라코체', 멕시코에서 널리 쓰이는 말로는 '쿠이틀라코체'.

옥수수 깜부기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름에 아즈텍어로 똥을 뜻하는 '코체'가 들어간 이 끔찍한 버섯은 의외로 유럽인이 유입되기 전인 아즈텍 제국 시절부터 식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으며, 심지어 지금도 멕시코 등지에서 널리 사랑받아 지금은 멕시칸 트러플, 옥수수 버섯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이 버섯은 의외로 독이 없고, 영양가가 풍부하며, 은은한 옥수수 냄새와 더불어 버섯과 옥수수가 섞인 독특한 풍미와 아삭한 식감을 갖춘 매우 특별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리에 첨부하면 특유의 진한 감칠맛을 더해주고, 이국적인 검은빛을 내기에 미식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에 이 독특한 버섯은 고기와 옥수수 등의 식재료와 섞어 기름에 볶은 후, 케사디아나 토르티아의 속재료로 쓰거나, 수프를 끓이는 등 많은 요리에 사용된다.


그래도 병걸린 옥수수의 부산물인 것은 변치 않으니, 미국과 유럽에서는 농작물을 해치는 병충해로 취급할 뿐, 식재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멕시코 요리가 유행하고, 고급 식당 등지에서 수요가 급증하자 상황이 급변하였다.

미국 농무성은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펜실베니아와 플로리다에 위틀라코체를 재배하는 것을 허가하였고, 위틀라코체는 고급 식재료로써 일반 옥수수보다 비싼값에 거래되는 효자상품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멕시코 밖에서는 신선한 위틀라코체를 구하기 어려워, 주로 냉동이나 통조림의 형태로 유통되지만 말이다.


근데 존나 궁금하지 않냐?

아니 얼마나 맛있길래 이 끔찍하게 생긴 버섯을 비싼돈들여 쳐먹지? 


그래서 내가 먹어봤다.

이 악마의 열매마냥 기괴하게 뒤틀린 이 끔찍한 버섯은 우리집 뒷뜰에서 따온거다.

여기서 그나마 이쁘장한 버섯을 골라내서 함 먹어보자.

그나마 덜 좆같은 걸로 골라낸 것 치고는 많이 나왔다.

이렇게보니 양파같기도 하네. 물론 지옥에서 올라온 양파겠지만.

어쨌든, 먼저 이렇게 골라낸 옥수수 깜부기를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물로 씻으니 더 더러워진 것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런건 신경쓰지 말자.

자, 이제 식감과 풍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이 뒤틀린 버섯을 기름두른 프라이펜이 볶는다.

노릇노릇해지고 약간 검은색이 감돌때까지 볶아야 한다.

자, 완성이다.

함 먹어보니 의외로 옥수수 향이 진하게 올라오고, 식감은 꼭 죽순처럼 약간 아삭아삭한 느낌이었다.

가장 중요한 맛은 연한 옥수수 맛과 죽순처럼 약간 단맛이 올라오면서도 약간 시큼한 맛이 올라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린 옥수수를 푹 삶아서 연하게 만든 다음, 알은 버리고 그 대만 씹어먹는 느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은데, 돈주고 사먹기는 좀 그런 맛이다.


어쨌든 온갖 위험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안죽고 새로운 경험을 해봤다는게 중요한거 아니겠는가?

그럼 다음에 보자~